‘이랬다 저랬다’ 변덕쟁이 아버지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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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다 저랬다’ 변덕쟁이 아버지

2016.05.17 · HEYDAY 작성

Q. 일흔이 넘은 아버지의 기분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2년 전 어머니와 사별한 이후 변덕이 더 죽 끓듯 합니다. 감정 기복도 심한 편이지요.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가 적적하실까 봐 찾아뵈려고 아침에 전화하니 “약속이 있으니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그런데 한두 시간 뒤에 전화해서는 “오고 있냐?”고 묻습니다. 부랴부랴 아버지 댁에 갔더니, 이번엔 또 “왜 왔냐”고 나무랐죠. 손주들 재롱에 겨우 기분이 풀렸나 싶었는데, 아이들 목소리가 커지자 이제는 “시끄럽다며 얼른 집에 가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아버지의 변덕 때문에 아버지 기분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한 가지 일관된 마음만 갖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이 속마음과 일치해야 할 것 같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감정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항상 섞여 있기 마련.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음이 모두 진심인 경우도 많다. ‘혼자서 당당히 잘 살아가겠다’고 하면서도 자녀가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 서운하고, ‘손자의 재롱이 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손자가 시끄럽게 떠들면 역정을 내는 아버지 모습 중에 무엇이 진심이냐고 따져 물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 전부가 아버지의 솔직한 진심이니까.

 

변덕은 관심을 가져 달라는 메시지

우리 마음속에는 모순된 생각과 욕망이 뒤섞여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어떤 선택에 대해, 혹은 외부의 대상에 대해 두 가지 이상의 모순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이상하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것을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고 한다. 그런데 불안하고 우울해지면, 우리는 양가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게 된다. 사연 속 아버지가 부인과 사별한 뒤부터 변덕이 심해졌다면 그것은 사별 이후에 생긴 부정적 감정이 해소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배우자와의 사별은 누구에게나 큰 충격이다. 단기적으로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심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된다. 배우자와 사별한 뒤 혼자 사는 남성은, 혼자 사는 여성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심장병과 같은 신체 질환이 발생할 공산도 더 크다. 나이 들어 혼자 사는 남성은 기대 수명도 짧고 자살률도 월등히 높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녀를 배려하는 마음이 변덕스러움으로 나타나기도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원하는 것이 있어도 ‘괜히 말했다가 자녀들을 번거롭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이 한 말을 거두어버리는 식이다. ‘아들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얼버무리기도 할 테고.

그런 생각이 겉으로 표현될 때는 변덕으로 비치기 쉽다. 그러니 표현이야 어떻든 나이 든 부모님의 변덕은 “나를 도와줘. 내 곁에 있어 줘” 하는 비명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을 조정하려는 욕망이 변덕스러움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변덕을 부리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의견을 바꾸면 ‘왜 그럴까?’ 하고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변덕을 진정시키려고, 그 사람의 주장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즉, 변덕이 다른 사람의 관심과 행동을 조정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변덕은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라는 신호나 다름없다. 타인을 조정하려는 마음 이면에는 소중한 사람을 가까이 두려는 욕망이 언제나 숨어 있는 법이다.

 

+ 처방전 <향수(Homesickness)>

향수,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의 이 작품을 보자. 다리 위 난간에 팔을 걸치고 서 있는 남자가 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등에는 검은색 날개가 있다. 그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비록 날개가 있어도, 멀리 날아오를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몸과 마음도 검게 그을려버려서 날 수 없게 된 것만 같다. 어쩌면 날 수 있어도, 날아갈 곳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뚜렷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림 속 풍경처럼.

어쩌면 사연 속 아버지도 이 작품 속 남자와 같은 심경이지 않을까? 외롭고 쓸쓸하지만 의지할 곳이 사라져버린 상황, 비록 날개 같은 자식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훨훨 날아다닐 수 없게 된 상황 말이다. 남자 뒤로 수사자 한 마리가 보인다. 그림 속 남자의 또 다른 자아일 것이다. 사자는 혼자 있지만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불안하거나 우울해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홀로 있지만 사자는 혼자 힘으로도 늠름하게 잘 살아나갈 것 같다.

아버지의 내면에도 사자 한 마리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아내를 잃고 홀로 남겨졌지만 사자처럼 살아가고 싶은, ‘아들이 나를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먹이를 구하며 초원을 누비는 사자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다시 말해 혼자라도 당당한 사자의 마음과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쓸쓸한 남자의 마음. 이 두 마음이 아버지 내면에서 엎치락뒤치락 요동치는 것이다. 비록 이것이 겉으로는 변덕으로 비칠지라도.

 

말 속에 숨은 감정을 읽자

아버지의 겉말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말 뒤에 녹아 있는 욕구와 정서에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어느 한 가지를 만족시키겠다’가 아니라 ‘지금 아버지의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전체를 헤아리려고 노력하고 아버지의 걱정과 두려움뿐만 아니라 기대와 욕심에 골고루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마음에서 불안이 보인다면 “제가 확인하고 처리할 테니 안심하세요”라고 말하고, 아버지의 슬픔이 보인다면 말없이 손을 잡아드리고, 아버지가 허무함에 휩싸여 있다면 “아버지가 저희 곁에 계셔서, 저희들은 항상 든든해요. 고맙습니다” 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혼란스러워한다면 “언제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라고 가족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건강 상태도 꼭 확인하자. 갑자기 변덕이 심해졌다면 심리적 원인뿐 아니라 신체 건강 상태도 반드시 점검해봐야 한다. 예컨대 간이나 신장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은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획 이인철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부교수)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4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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