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깃든 ‘인간소외’를 보듬다 [터치의 심리학]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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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깃든 ‘인간소외’를 보듬다 [터치의 심리학]

오랫동안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어린 아이는 성격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받으며, 마치 유년기의 비타민 결핍처럼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존 보울비, WHO 연구논문 《어머니의 보살핌과 정신건강Maternal care and mental health》중에서

위험한 가정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취약성

생애 초기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던 시절, 말을 익히기 전이라 기억 속에 생생하게 저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몸에 깃들어 있는’ 방치되었던 체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내면에 그대로 남아 이어진다. 내가 돌봄을 필요로 할 때 누군가 옆에서 즉각 접촉으로 응답해주지 않고 제대로 돌보아주지 않았던 경험(무시하거나 집착하는 부모 때문에 안식처이자 공포의 근원이 되었던)은 안정되지 않은 애착관계로 남는다.

안정된 애착관계 형성은 집으로 말하자면 잘 배합되어 단단해진 콘크리트로 기초공사가 된 것과 같다. 구조적으로 토대가 단단한 집처럼 개인의 삶과 성격도 오랜 시간 균열이 생기지 않고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 가정은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토대를 만들어준다.

어린 시절 열악한 양육 환경, 즉 혼란과 방치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안정된 유년기의 돌봄을 받은 사람들보다 우울증을 앓거나 만성 질환을 포함한 여러 가지 질병과 중독행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자살 시도도 많다. 개인이 타고난 취약성은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따뜻한 가정환경에서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사랑이 담긴 따뜻한 보살핌의 접촉이 없거나 일관되지 않은 ‘위험한 가정’에서는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생애 초기, ‘자기’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 결정적인 시점에 가장 가까운 양육자의 접촉이 결핍된 상태에서 성장한 사람은 적절한 ‘자기감(自己感)’을 발달시킬 수 없다. 자아(自我)라고도 하는 자기감이란 인식의 경험이 아니라 경험적 통합이며, 자신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희망의 느낌이 생김으로써 촉진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간적인 유대가 없으면, ‘나’라는 개념이 자기 안에 없으므로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어린 시절 혼란과 방치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거나 여러 가지 질병과 중독행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Philip Steury Photography/Shutterstock
어린 시절 혼란과 방치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거나 여러 가지 질병과 중독행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Philip Steury Photography/Shutterstock

밖으로 향한 창, 내 안에서 닫히다

“네댓 살이니까,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어리니까 저를 친척집에 잠깐 맡기신 거예요.(으음) 제 기억은 그 전 기억은 솔직히 별로 없어요.(목소리가 떨림) 엄마와 같이 있었던 장면이 몇 장면 있기는 한데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친척집에 맡겨졌을 때, 내가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했다거나 아니면 주말에 엄마가 오시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 안와가지고……안 올 것 같다……안 올지도 모른다 이런 불안했는데 온 기억은 없고 거기서 끝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부모의 외동딸. 내담자의 부모는 모두 많은 형제들을 두었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배경적인 상황은 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삶(사랑을 친밀하게 나누고 가족관계가 화목한 가정)이 아니라 어머니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삶(하나 뿐인 딸이 여유로움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재정적인 풍요)을 위해 경제력이 부족한 나이 많은 남편을 대신해서 삶의 현장에서 온 몸으로 뛰며 밤낮없이 일해 살림을 늘려나갔다.

일하는 엄마에게 취학 전인 딸아이의 양육은 가장 큰 문제. 내담자인 딸은 그래서 엄마 품속에서 엄마의 체온과 사랑을 느끼며 지내야 할 그 어린 시절의 긴 시간을 타인에 의해서 양육되어졌다. 아빠는 말렸지만 엄마는 아이의 풍요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 내담자인 딸이 기억하는 것은 흙빛 바람에 굴러다니던 음료수 봉지를 남몰래 숨어서 짜먹어보던 수치스런 호기심, 그리고 버림받았다는 좌절감, 소외감이었다.

사랑을 그렇게 갈구하던 아이는 그 뒤 엄마에게 돌아가선 거리두기를 하고, 어린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주지 않았던 엄마에게 원망을 가득담은 마음으로 계속 투쟁한다. 아니 지금도 투쟁중이다. 사랑과 증오가 계속 교차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자책감에 스스로 자기를 돌보며 살아남기 위해 ‘자기애(自己愛)’에 빠진다. 타인을 자기 안에 들여놓을 수가 없었던 내담자가 유일하게 창을 열고 바라본 것은 영화. 영화 속 주인공이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고, 거울을 보며 영화 속 주인공의 행위, 대사를 따라 해보는 것이 유일한 삶의 연습이었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성인 되어서도 그 억울함, 화를 참지 못하고 그러한 공격성을 밖이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게 한다. 죽을 정도로 다이어트를 하면서 거식하다가 미친 듯이 폭식을 하고 토하고, 자살시도를 하기도 하고, 자기 안에 자기를 가두고 타인과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했다. 이제 세상 속으로 조심스럽게 나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엄마는 여전히 분리되지 않고, 세상에서의 낯선 관계들은 당당하게 나의 소리를 내며 함께하기에는 두렵기만 하다. 남의 눈치를 보면서 타인에게 비춰진 내 모습을 생각하며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다. 누군가 잡아주는 손길, 어린 시절 체험해보지 못했던 엄마의 따뜻한 품과 같은 안전기지가 필요했다. 그 작업을 엄마가 아닌 신체심리치료의 장에서 함께하고 있다.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

터치의 심리학,접촉
어린 시절, 신체 접촉이 주는 위로와 정서적 효과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KonstantinChristian/Shutterstock

지난 회에 언급된 원숭이 실험으로 돌아가 보자. 원숭이 새끼를 어미로부터 강제로 떼어놓은 후 두 인형이 있는 방에 가둬두었다. 하나는 몸에 젖병이 매달려있는 철망 원숭이였고, 다른 하나는 부드러운 천을 감아 만든 헝겊 원숭이 인형이었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만 하더라도 당연히 젖을 주는 철망 인형에게 원숭이가 애착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새끼 원숭이는 처음에는 어미와 떨어져 공포에 울부짖고 사방에 대소변을 뿌리고 고함을 질렀지만 어떠한 노력으로도 어미에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인형 원숭이에게 매달렸다. 그런데 그 매달린 대상은 젖을 주는 철망 인형이 아닌 부드러운 헝겊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이 실험의 결과는 명확하다. 어린 원숭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먹이의 ‘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험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접촉’에 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심리학자 해리 할로(Harry Harlow)의 실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1950년대 이전만 해도,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생애 첫해를 ‘구순기(the oral stage)’로 규정한 것을 바탕으로 발달 심리학에서는 아동이 가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배고픔, 갈증, 통증의 완화를 어머니가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존 보울비에 의해 ‘찬장이론(cupboard theory)’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이론은 엄마는 먹이창고와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져서, 필요에 의해 엄마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조건반사와 같이 보상이론이 배경이 된 것이다. 즉, 부모가 아이를 보살피면 그 아이는 부모의 보상 때문에 사랑의 마음이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바른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적당히 조절하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해리 할로의 이 원숭이 실험을 통해 뒤집어진다.

할로는 먹이가 아닌 ‘접촉위안(contact comfort)’이 어린 원숭이가 어미로부터 형성하는 애착에 더 중요한 변수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실험을 통해 할로는 ‘접촉이 애착의 형성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가’를 알게 되었고 곧 학술지에 발표하게 된다. 그 이후, 신체 접촉이 주는 위로와 정서적 효과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개념인 ‘접촉위안’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이러한 동물실험 결과를 통해 인간의 애착 시스템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접촉에 굶주린 아이는 잘 먹지 않고, 두뇌와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된다. 또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 이성 관계에 적응을 못하고 우울증과 불감증에 시달리게 될 확률이 높다.

동물보다 더 오랫동안 양육자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인간의 경우,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따뜻한 접촉의 보살핌을 적절하게 받았는지, 또 아이의 요구에 잘 응답하며 반응해주는 엄마가 옆에 있어주었는지가 아기의 성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생애 초기에 있었던 방치된 자기로서의 ‘소외’ 경험은 이처럼 근원적이고 관계의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신체심리치료를 비롯한 애착 중심 치료의 초점에는 당연히 몸이라는 ‘신체적인 자기’도 포함해야 한다.

 

아플수록 다가가고 싶은 애착 대상

애착 행동을 이끄는 시스템에서 정해진 목표는, 양육자와 가까이 하려는 거리의 조절이 아니라 자신이 ‘안전한가 하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따르는 지극히 주관적인 상태이다. 아이의 ‘안전함’에 대한 느낌은 양육자의 행동뿐만 아니라 아이 자신의 기분과 신체적인 상태 및 상상을 포함해서 아이의 내적인 경험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우리나라 세월호의 침몰 순간에, 대구 지하철 대참사 때 불이 나서 죽어가는 상황에서, 미국에선 9.11 사태와 같은 위협의 순간에서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가까운 사람들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 이렇게 위협이 극심할수록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는 더 강해진다. 천둥소리가 요란하고 번개가 번쩍일 때 아이들은 엄마 품으로 뛰어든다. 긴급할수록, 공포가 클수록, 많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할 때도 애착의 대상인 엄마에게 피부가 닿도록 가까이 다가가서 강하고 넓은 접촉으로 연결되기를 원한다. 이처럼 우리 생활 속에서도 애착행동은 드물지 않다. 신체적으로 친밀함을 체험하고 확인하는 행동은 유아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이것은 더 나이가 들었어도, 또 어른이 되었어도 감정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점은 분명하다.

토대가 약하고 골조가 성긴 채로 지어진 집은 스스로 허물어진다. 그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은, 취약한 부분을 보수하고 보강해서 새롭게 하는 일이다. 집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생명을 갖는다. 그리고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잦을수록 집은 빛이 나고 오래간다. 가족 안에서 건강한 접촉의 체험으로 위험한 가정, 위험한 가족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틀을 재구성할 수 있다. 그것이 나와 당신, 우리, 그리고 우리의 가정과 가족을 치유와 성장의 길로 안내하는 내면으로부터의 힘, 생명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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