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가 ‘축복’이 되려면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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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가 ‘축복’이 되려면

2016.05.23 · HEYDAY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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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에서는 지난 4월 11일 ‘효도조례’라는 게 정해졌단다. 내용인즉 자식이 찾아오지 않아 외롭다고 느끼는 부모는 자기 자식을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판사는 사정을 파악해 자식에게 부모 방문을 명령할 수 있다. 법원 명령을 받고도 부모를 찾지 않는 자식은 금융거래상 문제가 없어도 신용 등급이 떨어지게 된단다. 간단히 말해서 정기적으로 부모를 찾지 않는 자식은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옛날, 우리 할머니 말씀처럼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보는” 세상이 되었다. ‘국가가 아무려면 자식들이 부모 찾아뵙는 문제까지 강제할 일이란 말인가? 지극히 사적인 부모 자식 간 왕래에 국가권력이 개입하다니’라고 생각했다가 ‘오죽하면…’ 하는 씁쓰레한 생각에 이르고 만다. 자식들이, 지네들 맘이 내켜서, 아니면, 적어도 이제쯤은 찾아뵈어야지 하는 의무감이 깃든 마음으로 찾아오는 것도 맘이 썩 편치는 않다.

그런 판국에 국가권력이 개입해 억지로 찾아오는 자식들이라…. 그런 식으로라도 자식을 만나지 않고 못 배기겠다는 노부모 맘을 헤아려본다. 나도 노부모이지만 아직은 설늙어서 그런가? 국가권력에 밀려서 마지못해 찾아오는 자식들과의 만남은 지레 자존심이 걸려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먼 훗날, 그때 왜 그런 배부른 소리를 했던가 하고 후회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근저에는 ‘장수’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자식들은 어느 만큼은 찾아오지 말래도 부모들에게 엉기려든다. 하지만 부모가 폭삭 늙고 저들도 늙어가는 마당이 되면, 부모를 향한 애틋한 심정이 빛바래어간다.

자연의 현상이다. 다시 말해, 내가 주장하는 효심의 총량이 고갈돼가기 때문이리라. 자식들의 효심? 혹은 부모를 향한 정이 몽땅 휘발될 때까지 세상 부모들이 오래 살기 때문에 이 모든 사달이 일어나는 게 아니던가.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들의 1.6%는 100세를 넘길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1천 명 중 16명은 100세 인생을 사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뿐 아니라 노년들도 아직 이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정서나 사회 시스템은 잘 봐서 산업화 시대쯤에 머물러 있다. 100세 장수를 실감하지 못하는 현실은 100세 시대를 실제로 살고 있는 우리 노년들에게는 마치 사방에 유리 벽이 쳐져 있는 형국 같다.

이를테면, 걸핏하면 나이를 들먹이면서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거나 산업화 초기에 제정된 은퇴 제도가 아직도 시행되는 것 등이다. 이 모든 게 우리 노년에게는 마치 사방으로 쳐진 유리 벽과 같다는 말이다. 이 벽을 걷어내 소소하게나마 행복을 누리는 100세라야 즐거운 장수이지 그렇지 못한 장수는 재앙이다.

우리 집안 내력이나 내 건강 상태를 볼 때에 나도 1천 명 중 16명에 끼일 확률이 높을 거 같은 찐한 예감이 밀려온다. 마냥 좋아만 할 일은 아니다. 목숨 줄만 간당간당 달려서 겨우 숨이나 쉬는 그런 삶을 원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적어도 자기 몸은 간수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삶이 ‘사는가 싶은 삶’이렷다.

<행복의 기원>을 쓴 서은국 교수에 의하면 행복이란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함께 얘기하는 소소하고 소박한 일이라고 한다. 하긴 그 옛날, 그리스의 에피쿠로스란 철학자도, 요즘식으로 말해 모임이나 서클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소박한 음식을 함께 먹고 즐거움을 논하면서 행복을 누렸단다.

오래 살기보다는 자존감과 품위, 그리고 최소한의 교류가 있는 그런 삶이 참삶이다. 그러니까 설사 영생이 이루어진다 해도 내가 소통이 되고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의 영생은 영 불행해서 나는 사절하고 말겠다.

우리 몸의 세포가 더 이상 분열도 그치고 재생이 불가능해진 그 시점에서 행여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 목숨 줄만 붙이고 사는 삶은 절대 사양하고 말 일이다. 존재의 권태감까지 느껴가며 존속하는 장수가 의미가 있을까?

인류는 불멸을 꿈꾸는 족속이다. 사람들의 수명이 폭발적으로 길어질 시점이 임박했단다. 그런 중에 사람들은 목숨이 없어진 다음, 즉 두 번째 삶의 열매를 추구할 방법을 찾고 있다. 다름 아닌 부활(resurrection) 이야기다. 이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뿐 아니라 신보다 과학과 기술을 신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내고 자신의 몸을 인체 냉동 보존술로 두었다가 부활을 꿈꾼다든지, 심지어는 디지털 아바타 기술 이용을 꾀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정통적인 영생의 방법으로서 영혼(soul)으로 살아남거나 유산(legacy)으로 자식이나 유전자 계승을 얘기한다. 이처럼 지금 세상에서는 문명사적인 변환기가 진행되고 있다. 무릇 생명은 세포가 죽고 이어서 새로운 세포가 생기므로 생명이 이어지듯이 세상은 자꾸만 변하고 새로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글을 쓴 고광애는 쉰 살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해 79세인 현재 관련 책을 다섯 권이나 낸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최근 를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글을 쓴 고광애는 쉰 살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해 79세인 현재 관련 책을 다섯 권이나 낸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최근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를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획 장혜정 고광애 사진 셔터스톡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4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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