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일을 보내는 완벽한 방법!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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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기념일을 보내는 완벽한 방법!

2016.05.12 · 이영란(전 매일경제 기자) 작성

결혼 날짜를 5월 5일로 한 것은 딱 하나의 이유였다. 택일한 것도 아니고 남편과 내가 정했으니 어떤 날짜를 해도 좋았겠으나 세월이 지나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어린이날로 정했다. 막상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보니 정말 딱 한 가지만 생각한 결혼기념일이 됐다. 날짜는 기억하지만 어린이날이라 어디를 가도 북적거렸다. 소소한 여행을 하기도 하고 밥집에서 그럴싸한 저녁을 먹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결혼기념일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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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5일은 결혼 29주년이다.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보니 그나마 아무런 ‘이벤트’도 준비 못한 결혼기념일이 되게 생겼다. 그 때 남편이 제안을 꺼냈다. ⓒPressmaster/Shutterstock

결혼 29주년, 29km 한강 달리기

올해 5월 5일은 결혼 29주년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보니 그나마 아무런 ‘이벤트’도 준비 못한 결혼기념일이 되게 생겼다. ‘이벤트’가 남편이 아내에게 해주는것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준비하는 특별한 ‘어떤 것’이다. 주제와 약간 빗나가지만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다. 평등론자여서가 아니라 ‘남편도 아내와 사느라고 고생 많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결혼기념일 하루 전까지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최근 잦은 술자리로 달리기를 자주 하지 못했던 남편이 제안을 꺼냈다.

“30km LSD(Long Slow Distance : 천천히 오래 달리기) 하는 건 어때?”

두 사람이 10년 넘게 마라톤을 취미로 해왔지만 결혼기념일에 달리기를 해본 적은 당연히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결혼기념일까지 달리기라니. “안돼”하려다가 다시 생각하니 그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29주년이니 29km를 뛰어야지!”

이렇게 대답하고 보니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결혼기념일 이벤트는 ‘저녁에’

달리기 시간은 오후 6시 반, 장소는 ‘한강’으로 정했다. 요즘 같은 초여름 날씨에는 햇볕이 무척 따갑다. 대회에 참석한다면 몰라도 둘이서 뛰는데 굳이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뛸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도 결혼기념일 이벤트는 저녁에해야 제 맛이 아닌가. 아침과 점심을 집에서 간단히 먹고 저녁 6시가 넘어서 ‘한강’으로 나갔다. 달림이들이 말하는 한강은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따라 조성된 달리기 코스다. 1km마다 표지판이 있어 장거리 달리기에 적합하다.

출발지점인 성산대교 하단에 주차하려 했지만 그쪽으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엄청나게 줄을 서 있다. 하는 수 없이 양화대교 바로 옆에 주차했다. 시간은 벌써 저녁 6시 40분. 평소라면 일몰이 기가 막힌데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온다고 했었지’ 그때서야 일기예보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성산대교 방향으로 달려간다. 잔디밭에는 초여름 밤처럼 텐트를 친 사람들과 한강의 저녁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우리는 그들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달려간다.

 

우중주(雨中走) 속의 색다른 경험

1km를 채 못가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와도 고(Go)하는 거야, 오케이?”

이렇게 말하자 남편도 고개를 끄덕인다. 비를 맞으면서 뛰는 것을 달림이들은 우중주(雨中走)라고 부른다. 우중주를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도 이하에서 비를 맞으면서 뛰다가는 자칫 감기에 걸리기 쉽다. 오늘 같이 25도 내외일 때는 우중주도 색다른 경험이다.

2km를 뛰어 성산대교에 도착했다. 대교 아래 편의점에서 초콜릿 바 하나를 사서 둘이 나눠먹고 가양대교 방향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잠깐이지만 비가 내린 덕분(?)에 라이더들이 철수했고 길은 더욱 호젓해졌다. 난지캠프장 옆을 지나가는데 고기 굽는 냄새와 라면 냄새가 한창이다. 연휴를 맞아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상큼한 공기와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를 동시에 즐기면서 시속 10km 정도로 달려간다. 출발점에서 5km 정도를 달렸을까.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우중주도 좋지만 비를 맞는 어깨가 아플 정도라면 문제가 다르다. 발걸음을 빠르게 해 본다. 달리기를 중단하고 싶어도 어차피 차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야 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서울시 경계지점에서 턴해서 다시 성산대교 방향으로 돌아온다. 다행히 소나기가 따라오지는 않는 건지, 어느 새 비가 그쳤다. 주위는 어둑해지고 라이더들이 모두 가버린 도로는 한적하다. 소나기에 젖은 옷에서는 어느 새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다시 성산대교 도착. 잔디밭에서 놀던 사람들이 모두 성산대교 다리 밑으로 이사 온 것 같다.

 

한강의 수돗물 그리고 편의점 초콜릿 바

편의점에서 초콜릿 바를 사서 또 다시 둘이 나눠먹고 수돗물을 마신다. 일반적으로 10km마다 간단한 먹거리를 보충해주는 것이 뛰기에 편하다. 다행히 요즘 한강에는 곳곳에 편의점이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돗물 대신 생수가 좋지 않으냐고 할지 모르지만 달림이들에게 한강의 수돗물은 생명수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물은 5km 마다 마시는 게 좋은데 한강 달리기 코스에는 적당한 거리마다 수돗물이 있어서 이 역시 아주 편하다. 초콜릿 바와 수돗물을 마시고 다시 뛰기 시작. 어느새 8시를 넘어섰다. 양화대교를 거쳐 서강대교, 마포대교 순으로 뛰어간다. 한강에서 달리기를 한지 10년이 넘고 보니 한강 다리의 순서는 물론, 다리 사이의 거리까지도 훤하게 꿰고 있다.

어느 새 비는 멎고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땀도 나지 않고 적당하다. 빨리 달릴 필요도 없으니 익숙한 주변 풍경을 즐긴다. 편안한 기분으로 동작대교를 통과해 500m를 더 가서 턴 한다. 여기서 턴해야만 29km를 맞출 수 있다. 동작대교 아래 편의점에서 이번에는 초콜릿 바와 이온음료를 사서 다시 둘이 나눠 먹는다.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주변 풍경을 즐기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한강대교 부근에서 커다란 보리밭이 보인다. 작년에 코스모스가 여름 내내 피어 달림이들을 즐겁게 해준 바로 그 곳이다. 남편이 보리냐, 밀이냐 묻는데 도회지 출신인 내가 알 턱이 없다. 가까이 다가간 남편이 자세히 읽어보더니, 서울시와 고창군이 합작으로 심은 청보리라고 한다. 고창의 청보리밭을 테마로 한 보리밭이다. 사진으로만 봤던 청보리밭을 한강에서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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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km를 일 년에 몇 번 뛰는 우리에게 29km가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다. 거리보다는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나만의 이벤트를 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두기로 한다. 가장 기억에 남을 둘만의 기념일을 보내고 나니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Rawpixel.com/Shutterstock

결혼 기념일, 남편과 나만의 이벤트

29km 목표에서 남은 거리는 5km. 오락가락 하던 빗방울이 다시 거세지기 시작한다. 또 다시 소나기를 뚫고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달려 차가 주차돼 있는 양화대교에 도착한다. 사실 마라톤대회 풀코스 42km를 일 년에 몇 번 뛰는 우리에게 29km가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다. 거리보다는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나만의 이벤트를 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둬야 한다. 시간은 벌써 밤 10시가 다 됐다.

완주 기념으로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밤늦게 문 여는 식당을 찾으려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왠지 마무리는 집에서 해야 할 것 같아서다. 간단한 저녁과 소주 한잔으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고 났더니 밤 12시다. 저녁 시간을 온전히 결혼 29주년 이벤트로 보낸 셈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결혼기념일이지만 이번 29주년 이벤트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년에는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봐야겠다.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이벤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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