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탄생지에서 길을 묻다, 네팔 ‘룸비니’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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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탄생지에서 길을 묻다, 네팔 ‘룸비니’

붓다의 탄생지를 향한 여정

조계사 부근에 점심 약속이 있어 갔다가 잠시 들렀더니 다양한 색깔의 화려한 연등이 하늘을 가렸다. 나뭇가지에도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숲을 이뤘다. 석가모니탄신일을 맞아 무명의 세상을 밝히려는 지혜의 등불이다.

부처님 오신날,조계사 대웅전, 연등
부처님 오신날을 기리는 조계사 대웅전 앞 연등. Ⓒ이규섭

붓다는 네팔 룸비니에서 태어났다.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첫 설법을 했던 사르나트, 열반한 쿠시나가르 등 불교 4대 성지 가운데 태어난 곳만 네팔이다. 룸비니에서 “나는 어디쯤 와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자문해 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길은 늘 아득하다.

영혼의 도시 바라나시에서 첫 설법을 했던 사르나트를 둘러 본 뒤 네팔로 향했다. 바라나시에서 국경도시 고라크푸르(380㎞)까지 12시간 넘게 걸렸다. 노면상태가 좋지 않아 버스가 털털거리는 데다 물갈이로 배탈이 나 여행 내내 고행이었다.

고라크푸르에서 국경 검문소 소나울리까지는 90㎞ 더 가야 한다. 국경지대는 사람과 차량이 뒤엉켜 어수선하다. 가이드가 안전사고를 우려하여 버스에서 내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입국 수속을 하는 동안 후덥지근한 버스 안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렸다. 소나울리에서 룸비니까지는 약 22㎞. 어둠을 헤치고 룸비니에 도착하니 녹초가 됐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곤하게 잠에 빠졌다.

네팔 룸비니의 ‘아소카 석주’ 발견으로 룸비니는 전설의 땅에서 부처의 탄생지로 세상에 알려졌다.   뒤쪽 흰색 건물은 마야데비사원. Ⓒ이규섭
네팔 룸비니의 ‘아소카 석주’ 발견으로 룸비니는 전설의 땅에서 부처의 탄생지로 세상에 알려졌다. 뒤쪽 흰색 건물은 마야데비사원. Ⓒ이규섭

길 위에서 남긴 붓다의 가르침

다음 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밤새 진주해온 적군 같은 안개’가 자욱하다.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안개 숲을 헤치고 도착한 붓다의 탄생지 ‘성원지구(Sacred Garden Zone)’에도 안개가 짙게 깔렸다. 성인의 탄생지답게 신비스러움이 감돈다. 붓다가 태어난 날도 안개비가 내렸다는 기록도 있지만 신비감을 더하려는 설화가 아닌가 싶다.

붓다의 탄생지는 1896년 독일 고고학자 휘러 박사가 밀림에서 폐허가 된 사원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기간 정비를 했어도 허허벌판에 허물어진 사원 터는 허허롭고 쓸쓸하다. 카필라 왕국의 마야데비 왕비는 카필라성에서 150리쯤 떨어진 콜리성(지금의 데비다하) 친정에서 몸을 풀려고 길을 나섰다. 친정으로 가는 길목 룸비니에서 마야 부인은 산통이 왔다. 가마에서 내려 나뭇가지를 잡고 출산했다.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났다. 그는 훗날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다.

탄생지에는 마야 부인이 출산 후 목욕을 했다는 연못이 있고, 거대한 보리수나무가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야데비사원 옆에 아소카 왕이 세웠다는 빛바랜 석주가 역사를 증언하며 묵묵히 서있다. 석주에는 ‘아쇼카 대왕은 이곳을 친히 참배하여 석주를 세웠으며, 룸비니 마을은 일반 세금을 면제해 주고 생산세도 8분의 1만 내게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비문이 룸비니를 전설의 땅에서 부처의 탄생지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아쇼카는 기원전 3세기 불교를 크게 부흥시킨 인도 첫 통일제국의 건국자다.

마야데미사원은 마야부인상을 모시는 사원이다. 원래의 사원은 11세기에 세워졌고 현재의 사원은 1943년에 재건 된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옛 사원의 흔적들이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마야 부인이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고 연화대 위에 서서 갓 태어난 어린 석가모니를 지탱하고 있는 탄생 장면을 묘사한 석조 부조 앞엔 관광객들이 붐벼 어깨 너머로 보았다. 사원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을 못하게 한다. 유리 칸막이 안에는 갓 태어난 붓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돌이 안치되었다.

(왼쪽)룸비니 마야데비사원에 있는 부처의 발자국(안내책자 복사).  (오른쪽)안개가 짙게 드리운 룸비니. 마야데비 왕비가 싯다르타를 낳은 뒤 목욕을 했다는 연못에 거대한 보리수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규섭
(왼쪽)룸비니 마야데비사원에 있는 부처의 발자국(안내책자 복사). (오른쪽)안개가 짙게 드리운 룸비니. 마야데비 왕비가 싯다르타를 낳은 뒤 목욕을 했다는 연못에 거대한 보리수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규섭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오른 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사방으로 일곱 발짝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라는 의미다. 이 우주에서 인간 보다 더 존엄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태국과 미얀마, 스리랑카에서 온 불자들이 흙벽에 금박을 붙이며 간절하게 기도한다.

붓다는 길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고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펴다가 길에서 육신의 탈을 벗었다. 중생들이 길 위에서 붓다에게 길을 묻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