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홀로 30년, 어느 일본 징용병의 늦은 귀향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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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홀로 30년, 어느 일본 징용병의 늦은 귀향

오노도시오 씨의 사진.
1975년 추자군도의 사수도에 영어됐다가 뭍으로 나와 일본으로 돌아가는 오노도시오 씨(가운데 노인, 당시 52세)와 세 명의 조카(노인 왼쪽의 젊은 청년, 노인 오른쪽 청년, 그 옆 안경을 쓰고 앞장서 걷는 사람). ⓒ문인수

풀뿌리, 새알, 물고기로 연명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모두가 퇴근한 텅 빈 사무실이라 벨 소리가 더 요란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문인수 기자 계신가요?” 바로 나를 찾는 전화가 아닌가. 봄 인사 철 추자초등학교에 부임한 문영구 교사였다. 1975년 5월, 그때 나는 KBS의 2년 차 새내기 기자였다. 문 교사의 전화 한 통이 세계적 특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제보는 이랬다. “무인도에 일본 패잔병이 30년째 살고 있대요.” 귀가 번쩍했다. 필리핀 정글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29년이나 홀로 버티다 상관의 명령에 투항한 마지막 황군 오노다 히로 중위가 머리를 스쳤다. 그는 1942년 20세 때 일본군에 입대했다. 그리고는 1944년 필리핀 루방섬에 정보장교로 배치됐다. 미군의 공격으로 그의 부대원들이 모두 포로로 잡히거나 죽었어도 그는 살아 남았다. 그 후 그는 일본의 패망도 모르고 게리라 전을 벌이며 1974년 2월까지 29년이나 정글에서 홀로 버텼다.

오노다 히로 중위 사진.
일본이 패망한 줄 모르고 정글에서 혼자 살아 남아 게릴라 전을 벌이며 수십년을 견딘 마지막 황군 오노다 히로 중위. 위키백과 중에서. ⓒ문인수

오노다 히로 중위의 소식은 그때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는 문 교사의 무인도 패잔병 제보도 대단한 뉴스거리라고 믿었다. 1975년 5월 18일 나는 추자도로 떠났다. 그곳에서 고장규 씨 댁에 임시 거처하는 오노도시오(大野敏夫) 씨를 만났다. 그는 어렸을 때 열병을 앓아 말이 어눌했다. 그러나 문자(漢字)는 해독했다. 하여 필담취재를 했다.

취재 결과는 무인도인 사수도에서 30년을 버티다 8개월 전에 그 섬에서 나왔다는 것, 낚시꾼인 고 씨의 옷을 훔치다 들켜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는 문 교사의 제보와는 달리 패잔병이 아니라 벌목공으로 징발된 징용병이었다. 오노 씨의 무인도 생활은 지옥생활이나 다름없었다. 풀뿌리, 새알, 물고기로 굶주림을 달래고 낙엽을 긁어모아 추위를 가렸다. 들쥐와 벌레들이 그의 친구가 됐고,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음악이 되어 그의 영혼을 위로했다.

 

무인도를 그리워하며 죽음

나는 취재과정에서 그의 인내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무인도에서 그의 연명은 면벽수행을 하는 고승의 평정심이나 오체투지의 순례자 같은 인내심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취재는 결국 세계적인 특종이 됐고, 그는 고향인 히로시마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귀국 후 그는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환속의 자유보다 오히려 무인도의 자유가 더 편하다’는 내용이었다. 동떨어진 관습과 규범, 이질적인 감정과 뭇시선, 얽히고설킨 사회적 그물망이 그에겐 너무 버거운 장벽이 아니었을까. 통제도, 명령도, 규제도 없는 곳에 체질화된 그의 야성이 문명의 벽 앞에서 절망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무인도에 대한 향수가 고개를 들 때마다 그는 죽음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 그의 부음이 들려왔다. 그는 문명의 세상으로 나왔지만 문명의 장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인도 30년이란 야성의 벽이 너무 높았던 게 아니었을까.

사수도 전경.
오노도시오 씨는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도 무인도인 사수도를 그리워 하며 죽었다. ⓒ문인수
고문서의 사수도 지도.
고문서에 나타난 사수도 지도, 사서도(斜鼠島)라 표시돼 있다. ⓒ문인수

그가 30년이나 버텼던 사수도는 추자군도에 속한 무인도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만 요란한 절해고도다. 지금은 해녀들의 어로작업을 위한 사수도 지킴이 집이 있지만 오노 씨가 버틸 당시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제주도와 전라남도 완도군의 치열한 영유권 다툼 끝에 제주도의 부속도서로 판정이 난 후에 지어진 것이다. 사수도의 지번은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 산121 번지다. 예초리에서 서북쪽으로 27km 떨어져 있고 면적은 13만 8700여㎡다.

이 섬은 후박나무 숲으로 덮여 있으며 슴새와 흑비둘기의 낙원이기도 하다. 관찰된 조류(해양수산부의 무인도서 정보지 참조)는 18종으로 천연기념물 제323-7호인 매와 천연기념물 제215호인 흑비둘기, 천연기념물 제323-4호인 새매, 멸종위기야생동물Ⅱ급인 말똥가리가 관찰 됐으며 긴가위뿔노린재 등 6종의 곤충이 관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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