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도시, 도쿄 – 시니어의 나라 일본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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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도시, 도쿄 – 시니어의 나라 일본

2016.06.07 · HEYDAY 작성

어른,도쿄,놀이터,중장년도쿄의 중·장년들은 어떤 곳에서 시간을 보낼까. 작가 코맥 매카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을 사용했지만 어른을 위한  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도쿄가 보여준다. 독자 여러분의 다음 도쿄행에 참고가 되길 바란다.


 

어른이 책 읽는 곳  다이칸야마 (代官山) 티사이트(T-SITE)

다이칸야마티사이트,장년,도쿄,어른,책독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이지만 언젠가부터 50대 이상의 중·장년이 책을 읽는 모습은 상당히 낯선 것이 돼버렸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일본 도쿄의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모습은 우리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장면이다. 그럼에도 일본 역시 중·장년층으로 올라갈수록 독서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요즘 추세다. 일본 문화청의 조사(2009년)에 의하면,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응답자 수가 20대는 40.5%인 것에 반해 60대로 올라가면 47.8%, 70세 이상은 59.6%나 된다고 한다.

일본 역시 어른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자리 잡다 보니 젊은 층에게 좋은 본이 되기 어려운 상황. 그런 가운데 오히려 중·장년들이 책을 읽고 문화를 향유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다이칸야마의 티사이트다.

티사이트를 연 것은 쓰타야서점이다. 1983년 오사카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서점 겸 음반 숍으로 ‘라이프스타일 내비게이션(Lifestyle Navigation)’ 즉, 삶의 방향을 안내해준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판매와 대여를 겸하는 형태의 이 매장은 30여 년이 지나면서 일본 전국에만 1400여 곳을 넘어섰고 이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티사이트는 ‘숲속의 서점’을 콘셉트로 삼아 커다란 나무와 각종 식물이 있는 산책로 중간에 서점과 레스토랑, 숍 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공간을 구성했다. 정문은 있되 담은 없다. 3동으로 구성된 서점은 여러 방향에서 출입이 가능하다.

다이칸야마 티사이트,쓰타야서점

젊은 세대보다는 그 위 세대, 이른바 어른들을 위한 문화공간을 지향하며 서점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중·장년층을 보면서 젊은 세대도 그런 삶을 희망하고 꿈꾸도록 설계했다. 젊은 층이 주로 1층에 위치한 스타벅스를 애용한다면 중·장년들은 2동 2층에 있는 카페 겸 바인 안진(Anjin)에서 책을 즐긴다. 1층에서 책을 고르고 2층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시면서 책을 보는 식이다.

너른 주차장에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취향을 보여주는 방문자들의 자동차들이 주차돼 있고, 때에 따라서는 빈티지 마켓이나 벼룩시장이 열려서 티사이트를 찾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반드시 책이나 음반을 사지 않아도 녹음에 둘러싸인 멋진 공간에서 커피와 산책을 즐기고 원하는 음반을 찾아서 청음하는 것.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젊어서부터 습관처럼 몸에 익지 않으면 쉽게 실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티사이트는 20~30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마주치는 중·장년 ‘선배’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노후,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고 설계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도쿄 한국문화원 관계자가 본 일본의 중년들 무언가를 사기보다 무언가를 경험한다

‘무언가를 사기보다는 무언가를 경험한다.’ 일본 생활 10년, 내가 본 일본 중년들의 라이프는 이 말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요즘 일본의 시니어들은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무엇인가를 해보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옛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도전하고 체험한다. 지인 중에 대기업 은퇴 후 도심 외곽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중소기업으로 주 3회 출근,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 중인 사카이 아케오 씨(68세)가 있다. 그는 한국어를 공부하면서도 화상 통화로 또 다른 외국어를 배운다. 또 좋아하는 스포츠를 꾸준히 즐기며 건강을 관리한다.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가 청춘 18(홋카이도부터 규슈까지 저렴한 가격에 JR과 쾌속 열차를 하루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 학생들의 방학 기간만 한정 판매, 나이 제한 없음)이라는 철도 할인권이 20~30대보다 60대 사이에게 더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할 일을 끝냈으니, 이제는 나를 위한 시간에 집중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은 자녀의 경제생활이나 육아를 지원하는 이들이 많지만, 일본은 자녀가 장성해 독립하고 나면 서로 크게 간섭도 도움도 주고받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손자를 봐주는 경우도 극소수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남의 시선이나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다. 단출한 짐만 오토바이에 싣고 캠핑을 즐기는 부자, 작은 화단을 사시사철 정성껏 가꾸는 부부, 캐릭터 도시락을 정성껏 싸는 것을 취미로 삼는 남성 등 내 주변에서 만나는 일본 시니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깊이 심취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코스프레를 즐기거나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서 약속된 구호와 율동을 따라 하는 중년,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같은 차종을 구입해 타고 스타의 생일을 차 번호로 정하며 자기 생활에 즐거움을 불어넣는 모습도 자주 본다. 우리 같으면 “나이 들어서 뭔 짓이냐” 하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곳에선 누구도 힐난하거나 희한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열정을 인정해준다.
_방송작가 우유미


 

어른이 쇼핑하는 곳  스가모(巣鴨)와 우에노(上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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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칸야마나 미드타운 인근이 여전히 세련된 취향의 중·장년들이 이는 곳이라면 스가모와 우에노 인근은 마치 우리나라의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옛 모습을 간직한 시장 거리다.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이기도 하지만 외지인에게는 수십 년 전부터 변치 않은 도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통 입구에 있는 반찬 가게에서는 반찬값 흥정을 하기도 하고 마음 맞는 주인은 덤을 더 주고 손님과 덕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3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철물점 주인은 자신이 파는 물건 중에서 ‘일본제’가 아닌 것은 없다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스가모 시장 거리는 일본인들에게는 ‘시니어의 하라주쿠’라고 불린다. 스가모 역 근처에는 우리로 치면 ‘다방’이 여전히 성업 중으로 아침이면 뜨거운 커피 한 잔과 두툼하게 썰어 낸 식빵 토스트에 삶은 달걀을 하나 먹으며 신문과 담배를 즐기는 시니어들을 만날 수 있다. 과거 우리의 다방 문화와는 다른 다방 문화를 볼 수 있다.

스가모와 함께 시니어들이 많이 찾는 곳이 있으니 우에노의 아메요코초(アメ横丁)라는 상가 거리다. 과연 이곳이 일본인가 싶을 정도로 활기와 소란함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길거리에 놓인 의자에 앉아 맥주를 한 잔 기울이기도 하고 어른과 젊은이가 뒤섞여 앉아서 라멘을 먹고 저렴한 쇼핑을 즐기는 곳이다. 일본에서는 도심 외곽의 비교적 낡고 오래된 동네들을 일컬어 시타마치(下町)라고 부른다. 도쿄 곳곳에는 시타마치로 불리는 동네들이 있어서 이처럼 아직 남아 있는 옛 정서를 느끼고 향수를 달래고자 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다.


 

어른이 문화를 향유하는 곳  국립신미술관(国立新美術館)

국립신미술관,일본,시니어,문화국립신미술관에 가면 이곳이 우리가 알던 미술관인가 싶어진다. 미래적 디자인의 건물 안으로 들어선 순간 오히려 개방감을 선사하는데 미술관 안을 채운 사람들의 대부분은 40대 이상의 중년층이다. 일본 중년들의 문화 예술 아지트로 불리는 곳이다. 창가 쪽으로 배치해놓은 한스 베그네르의 셸체어나 야콥센의 세븐 체어 같은 명작 디자인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해마다 열리는 ‘국전’ 전시를 보기도 한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어렵고 무거운 것이 아닌 듯하다. 미술관 역시 위엄을 내세우는 공간이기보다는 오래된 친구들과 가볍게 산책하는 공간의 느낌이다.

도쿄 한국문화원 관계자가 본 일본의 중년들 체면보다 개인 만족이 우선

30년 동안 일본에 살며 이곳 중년들에게서 발견한 것이 두 가지 있다. 먼저 체면이다. 일본에서 체면 따위는 내가 어떤 일을 하든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70~80세가 곳곳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풍경은 익숙하다. 전철역에 가면 구두닦이를 하는 이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새파랗게 어린 직장인도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구두를 들이민다. 양쪽 모두 자연스러운 노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 사회를 좀 더 경험하면 알게 될 거”라며 예정대로 취직했다. 임금은 시쳇말로 껌값 정도이며 직장 환경은 열악했다. 그러나 퇴직하고 정상적인 삶을 잃어야 맛보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그만둔 동료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본인 체면 때문에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은퇴자들은 체면을 중시하지 않는다. 고위직 출신도 낮추어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은퇴 후 소일하며 자기만의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이렇게 일본의 은퇴자들은 개인의 만족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다.

또 하나, 흥미로운 발견은 모임이다. ‘가네노기레메가 엔노키레메’, 돈이 끊어지면 인연도 끊어진다는 일본의 유명한 속담이다. 그만큼 인간의 인연을 중요시하는 곳이 일본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많은 벤쿄가이(勉强會, 학습모임)를 꾸려 인맥 관리를 하고 지식을 넓히며 은퇴 후에도 이런 모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살찌운다. 벤쿄가이는 근무처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주제 발표를 하고 회원 간의 우의를 돈독히 다지는 모임이다. 보통 20~40명 규모로 2~3개월에 한 번 호텔 등에서 모임을 하며 회비는 대략 7천~8천 엔, 우리 돈으로 8만~9만원이다. 회원들은 40~60대가 중심이며 현역과 은퇴한 사람이 조화를 이룬다. 올해 21년째인 ‘일·중 문제 연구회’라는 벤쿄가이는 중국에서 근무하거나 앞으로 근무할 사람, 중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 모임이다. 회원들은 전·현직 외교관, 관련 부서 공무원, 언론인, 교수, 상사 직원 등 다양하며 대사급만 7~8명이 참석한다. 은퇴한 70~80세의 전직 대사들이 여전히 공부하기 위해 모임에 나오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이 모임은 저녁 6시 30분에 모여 7시까지 식사와 잡담을 나누고 1시간 30분 정도 강연을 듣는다. 그 후 친한 사람끼리 잔을 기울이는 교류가 이어진다.

교수, 공무원, 회사원 등의 정보 교환과 사교의 장인 ‘이쟈 카마쿠라’라는 벤쿄가이에는 여성이 많은 편이다. 특히 은퇴한 사람들은 이런 벤쿄가이를 위해 한 달 전, 모임 안내가 나가면 이번 강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도서관에 가서 강의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는 일로 소일한다. 이렇듯 일본 사람들은 단숨에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는다. 기름진 인생을 위해 인간관계를 무척 중시하고 지적인 저축을 열심히 하는 그들이다.
_ 한일 친선 한마당 협회 사무국장 권용대

 

기획 이인철, 이은석 사진 KIM JU(도쿄, 인터뷰) 이은석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