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卒婚) 시대, 각자 사는 부부이야기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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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卒婚) 시대, 각자 사는 부부이야기

2016.08.10 · HEYDAY 작성

한국어로 졸혼(卒婚), 즉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혼은 아니다. 혼인 관계는 유지하면서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다. 이혼도 별거도 아닌 이 새로운 형태의 결혼 생활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이런 생활을 하는 부부가 느는 추세. 100세 시대, 달라진 결혼 생활 방식을 들여다보자.


 

졸혼이야기 1 _ 도시에서 ‘각거’하는 문화 평론가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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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대흥동의 한 연립주택 지하에 있는 ‘줄라이홀’. 수만여 장의 음반, 명품 오디오, 진공관 스피커들, 에스프레소 머신 등 수집가인 김갑수가 평생을 모은 것들이 전시된 이 공간은 그의 놀이터이자 집이다. 결혼 21년 차인 그는 아내와 따로 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아내와 합의된 별거로, 김갑수는 자신의 결혼 생활 방식을 ‘각거(各居)’라고 설명했다.

 

누가 먼저 각거를 제안했죠?

저희도 3, 4년 정도 남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결혼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생활 리듬이 서로 너무 다른 겁니다. 나는 밤을 꼴딱 새우는 스타일이고 아내는 의사이다 보니 일찍 자고 새벽에 나가야 되지요. 또 나는 음악을 듣기에 소리를 내야 하는 사람이고, 아내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집에서 조용해야 되고요. 일상을 함께 보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이런저런 궁리 끝에, 아내가 ‘형(당시는 그를 형으로 불렀다), 작업실이 있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내가 집에서 가까운 혜화동 근처에 작업실을 얻어줬지요. 처음엔 집과 작업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자연스럽게 각거에 들어갔어요. 여기가 네 번째 작업실인데, 이곳에서만 12년 됐고요.

 

굳이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 따로 사는 이유는 뭔가요?

결혼은 사랑, 일상의 공유, 경제적 통합, 성의 독점성 크게 4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고 봐요. 사람들은 이 4가지가 완전히 채워진, 이상향의 결혼 상태를 자꾸만 떠올려요. 그런데 현실은 우리 머릿속의 생각과 어긋나요. 즉 이 4가지 중 몇 가지가 빠져도 결혼이라는 겁니다. 사랑이 식은 부부, 섹스리스 부부, 돈을 각각 쓰는 부부, 하나씩은 빠졌잖아요. 결혼의 일관된 법칙은 없어요. 결혼의 구성 요소 중에 한 가지라도 존재해, 부부가 ‘우리는 한 가정이야’라고 인정하면 어떤 형태든 결혼일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저는 일상을 부대끼는 부분을 포기했어요. 이렇게 인식을 바꾸면 맘이 훨씬 편해질 수 있지요. 또 뭔가 결핍이 있어도 이혼보다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편이 훨씬 나은 점이 많고요.

 

일반적인 별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죠?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부부냐’고 나를 놀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예컨대 이혼하지 않은 이혼 가정이 있어요. 남편은 수원에 살고 아내는 부산에 살아. 그렇지만 생전 연락을 안 해요. 법적으론 부부고요. 이런 부부들 실제로 많이 봤어요. 그건 부부라고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중구 무학동과 마포구 대흥동에서 떨어져 살지만, 완벽한 부부라고 생각해요. 항상 연결돼 있고 항상 의논해요. 다만 어떤 편의에 의해서 밤에 잠을 따로 잘 뿐이지요.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부부가 정한 기준이 있을 것 같은데요.

원래 토요일, 일요일은 한집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정했어요. 그런데 제가 방송 때문에 주말에 못 가는 경우가 생겨 지금은 이곳에서 아예 살아요. 그 대신 아내와 아들이 오는 날을 정한 거지요. 가족이 방문객이 돼버렸어요(웃음).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가족 모임을 합니다. 아들이 걸음마를 뗄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왔죠. 일주일에 한 번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이 모임은 반드시 지키지요. 그리고 내가 번 돈을 아내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함께 살 때와 비교한다면 어떤 점이 다릅니까?

나쁜 점부터 말하죠. 결혼이 주는 안정감은 많이 훼손되지요. 아내와 아들이 많이 그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요. 반대로 좋은 측면은 적어도 서로를 지겨워하지는 않게 돼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배회하다 늦게 들어가는 남자들 많잖아요. 우리는 서로를 굉장히 보고 싶어 해요.

 

아내도 만족합니까?

만약 이런 방식을 내가 강요했으면 오히려 유지가 안 됐을 겁니다. 각거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사람과 함께 있는 걸 너무 힘들어하는 사람이고, 혼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저보다 훨씬 좋아하지요.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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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판과 오디오의 세계에 빠져 살아온 그에게 ‘각거’는 어쩌면 가장 적합한 결혼 생활 방식이었다.

사생활에 대해 전혀 개입하지 않나요?

부부라도 일정 정도 사생활을 지켜줘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눈앞에 안 보인다고 해서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어요. 매일 연락하며 서로가 뭐 하고 사는지 아니까요. 지금도 아내가 조언을 구해와 답변해줘야 할 것이 있어요. 아내가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이지요. 저 역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 아내와 아들이에요.

 

떨어져 산 지 오래인데, 부부 관계의 위기는 없었습니까?

내가 번 것을 집에 다 보내게 된 계기가 있어요. 우리가 왜 부부지? 어느 날 위기감이 느껴지는 겁니다. 그때,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어떤 자세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죠. 적어도 경제 통합은 하자고 결심했지요. 그래서 올해도 두 번에 걸쳐서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아내에게 보냈어요. 물론 내 수입이 집 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저와의 약속이지요.

 

계속 이렇게 결혼 생활을 유지할 계획인가요?

50대가 되니 이미 이 생활이 몸에 익숙해졌죠. 그래서 나는 일상을 공유하며 사는 결혼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게 됐어요. 지금처럼 사는 것이 우리 부부 삶의 코드로 자리 잡은 거지요. 졸혼, 각거와 같은 결혼 생활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주세요.

모두 이렇게 살라고 요구할 순 없지요. 예컨대 아내가 전업주부야. 그런데 따로 살자고 하면 뒤집힐 일이지요. 저처럼 무사할 수 있는 조건은 여자에게 자기 일이 있는 거예요. 서로에게 신뢰도 있어야 하고요. 구체적으로는 딱 차로 20분 거리 정도에서 따로 살라는 겁니다. 너무 가까우면 이도 저도 아니더라고요. 그렇다고 너무 멀면 남 같고요. 그러니까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서 각거를 하되, 부부만의 원칙을 정확히 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졸혼 이야기 2_귀농 아내와 도시 남편 임지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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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삶을 동경해온 아내는 십 년 전, ‘광화문 커리어우먼’ 생활을 접고, 남편에게 시골행을 통보한 뒤 혼자 전북 장수로 떠났다.

 

부부가 떨어져 살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각자 ‘살고자 하는 방향’이 달랐어요. 나는 늘 자연을 동경해왔지만 남편은 이런 시골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죠. 이미 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더군다나 성격적으로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한의사인 남편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내 소소한 생각엔 별로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증을 앓기도 했거든요. ‘우리가 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이 고민은 제가 마흔여섯이 됐을 무렵 더 깊어졌어요. 당시 전 광화문에 있는 한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퇴직이 몇 년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이제 나는 남편 뒷바라지나 하며 조용히 늙어가야 하는 걸까? 그럼 내 인생은? 나는 아직도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데? 긴 고민 끝에 ‘내 생각대로 살아보자’는 쪽으로 결심이 섰고 그 길로 사표를 냈어요.

 

집안 식구들의 반대는 어떻게 설득했죠?

처음엔 그냥 해보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제가 직접 땅을 알아보고 다니니까 애 아빠가 많이 황당해하더라고요. 당연히 말렸지만 굳이 설득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밀어붙였죠(웃음). 그만큼 지금은 좀 힘들어도 언젠간 이 결심이 모두에게 해피 엔딩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엄마에 대한 신뢰가 워낙 두터운 우리 아들딸은 제 결정을 존중해줬고요. 물론 아이들이 이미 성인인 데다, 남편이 혼자 생활해도 될 만큼 똑소리 나는 ‘살림 실력’을 갖췄다는 점도 이미 고려했죠.

 

연고도 없는 시골에 내려가 혼자 농사짓기 시작했는데, 남편과 따로 살아보니 어떤 점이 달라지던가요?

자립심이 강해지더라고요(웃음). 야산을 매입해 한쪽에 컨테이너 박스를 놓고 자그마치 6년간이나 서울, 장수를 오가며 산을 개척했어요. 이곳에 본격적으로 눌러앉은 건 4년 전 일이죠. 그 과정이 정말 고됐지만 낮에는 열심히 농사짓고, 밤에는 에릭 클랩턴의 음악을 배경 삼아 혼자 그림 그릴 수 있는 생활이 행복했어요. 아침에 향긋한 풀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내 결정이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죠. 땅이 어느 정도 일궈진 뒤에는 사과 농사도 짓고, 느티나무나 소나무도 키웠는데 그것들을 팔아 차츰 시설을 확충하고, 또 거기서 발생한 수익으로 새로운 작물을 심는 선순환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농사의 기본기를 차차 익혔던 게 큰 도움이 됐죠.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농법에 관한 책을 읽고 주말농장을 일궜거든요. 조경원을 찾아다니며 전지하는 법도 배웠는데, 뒷산을 오를 때도 주머니에 전지가위를 넣고 다니며 반복해서 연습했어요. 물론 주말마다 테니스다 골프다 치러 나가기 바빴던 남편은 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예행연습을 했다는 것조차 몰랐겠지만요(웃음). 여하튼 계속해서 일의 진화가 일어난 셈인데 이만큼 아름다운 정원을 가꾼 것도, 비록 1800만원짜리이긴 하지만 한옥을 구입해 개조한 것도 모두 제 힘에서 비롯된 성과라는 게 무척 뿌듯하고 기뻐요.

 

이런 생활에 대해 남편의 반응은 어땠나요?

저렇게 한 1~2년 있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하겠지 싶었는데 의외로 제가 너무 적응을 잘하더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아내가 정말 저런 삶을 갈망했구나’ 하고 그 진정성을 이해하기 시작했죠. 떨어져 사는 삶도 이제 익숙해졌어요. 남편에겐 이곳이, 저한텐 ‘남편 집’이 세컨드하우스나 마찬가지인데 제가 가끔 놀러 가면 “여보, 나는 집에 있고 싶은데 사람들이 자꾸 테니스를 치러 나오라네” 하면서 은근히 신경 쓰여 하더라고요(웃음). 그럼 얼른 가라고 등 떠밀죠. 반대로 남편이 찾아오면 저도 신경 쓰여요. 제가 일하고 있어도 한번 도와주는 법이 없어요. 뒷짐 지고 구경하다 간다는 말도 없이 가버리죠(웃음). 그러면서도 혼자 있는 내가 걱정돼서 집에 CCTV를 달아주더라고요. 우리 부부는 이렇게 때론 이기적이고, 때론 다정하게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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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있어도 사람들이 나를 찾아줄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했다던 그녀는 그동안 수집한 찻잔을 한데 모아 누구와든 티타임을 가질 수 있는 예쁜 공간을 마련했다.

만일 그때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극단적으로는 이혼까지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내 생활에 불만이 많으니 분명 좋은 표정, 온화한 말투가 나올 리 없잖아요. 부부가 꼭 한집에서 살라는 법도 없거니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서로 ‘수’를 내야 할 순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내가 행복해야 같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거든요.

 

계속 귀농 아내와 도시 남편으로 지낼 건가요?

우리 부부는 행복해지기 위해 서로 떨어져 살았지만, 또 행복해지려고 합칠 수도 있을 거예요. 남편은 이미 제 농장이 우리 가족의 큰 문화적 자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곳을 중심으로 식구들이 모이고 흩어지리라는 걸 잘 알죠. 그래서 언젠가 더 나이가 들면 이곳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는 말도 하더라고요. 그러나 꼭 본인 의지가 아니더라도 혹시 남편이 쇠약해지면 제가 챙기고 보살펴야지 어쩌겠어요. 그런 정, 애정을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우린 각자 자리에서 노력 중이에요, 지금(웃음).

 

기획 이인철, 장혜정 사진 박충열, 이대원, 이근수(스튜디오 텐) 일러스트 셔터스톡
※ 이 기사는 <헤이데이> 2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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