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토론은 과연 대선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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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토론은 과연 대선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62대 27’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통령 선거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간 1차 TV 토론이 끝나자마자 우리 언론은 CNN·ORC 된 여론조사를 인용해 일제히 ‘힐러리가 이겼다’고 썼다. 미국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라고 판정을 내렸다. 심지어 국내언론 중에는 ‘1차 TV 토론 직전 여론조사에서 1% 포인트 차로 트럼프에 뒤졌던 클린턴이 TV 토론에서의 선전을 계기로 판세를 뒤집었다’고 쓴 곳도 있다.

미 TV 토론을 지켜보는 기자들.
미국의 1차 TV 대선 토론이 끝난 후 우리 언론은 일제히 ‘힐러리가 이겼다’고 썼다. 왜 언론은 TV 토론이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는 걸까? ⓒJoseph Sohm/Shutterstock

지난 9일 열린 2차 토론회도 비슷하다. 국내 언론은 CNN·ORC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57대 34’로 썼다. 직전 터진 트럼프의 ‘음담패설’이라는 메가톤급 악재로 인해 토론이 가려졌지만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왜 모든 언론은 대통령 선거에서 TV 토론이 선거판과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까.

 

역사적인 TV 토론, 케네디와 닉슨

먼저 TV 토론의 영향을 알아보기 전에 후보자 간 토론의 역사를 살펴보자. 후보자 간 토론의 역사는 160년 정도 된다. 1858년 에이브러햄 링컨과 스티븐 더글러스가 연방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일리노이 주에서 순회토론을 벌인 것이 처음이다. 후보자 간 토론이 시작된 이유는 후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보고 들어 유권자들이 제대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다. 대의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토론이 나온 것이다. 이런 정신은 이후 매체의 발달에 따라 형식은 바뀌었지만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언론매체를 통한 대선후보 간 토론은 1948년 공화당 오리건주 예비선거가 시초다. 뉴욕주지사였던 토머스 듀이와 전 미네소타 주지사였던 헤럴드 스태선이 라디오를 통해 ‘공산당 불법화’에 대해 1시간여 동안 설전을 벌였다. 당시 추산된 청취자 수는 4000만~8000만 명에 달한다. 지금 TV 토론과 비교해도 엄청난 규모다. 올해 1차 TV 토론 시청자 수는 8400만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TV 토론이 등장한 것은 1956년 민주당 플로리다주 예비선거에서였다. 대통령 후보 간 토론은 4년 후인 1960년 처음 벌어졌다. 민주당 후보였던 존 F. 케네디 상원의원과 현직 부통령이었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는 TV 화면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케네디가 닉슨에 사실상 TKO 승을 거두었다. 패기만만한 젊은 케네디 후보에 비해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가 갓 퇴원한 병색이 짙은 닉슨 후보 모습은 매력적이지 못했다. 더욱이 케네디는 TV 토론을 위해 유세를 중단하고 호텔에서 예행 토론 연습을 한 반면 닉슨은 병원을 퇴원하고도 쉬지 못하고 전국 유세를 다녔다. 당시 케네디 캠프는 컬러 TV가 대중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인식한 데 반해 닉슨 캠프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 모습.
가장 격정적인 TV 토론은 존 F. 케네디와 닉슨의 토론이었다. 케네디는 TV 토론을 통해 승기를 잡았다. ⓒBokehStock/Shutterstock

TV 토론의 신화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재미있는 것은 라디오로 토론을 청취한 사람들은 열정적인 케네디보다 논리적인 닉슨에게 더 점수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득표수는 케네디가 49.7%, 닉슨이 49.5%였다.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TV 토론의 영향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케네디가 승리한 이유를 토론 영향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선거인단수는 케네디가 303명, 닉슨이 219명으로 많은 차이가 났다.

 

TV 토론, 정말 판세를 뒤집을까?

TV 토론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직들의 기피와 공평한 시간배분을 규정한 미연방통신법(FCC) 때문에 한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군소후보를 배제한 채 1976년 지미 카터-제럴드 포드 선거 때 부활했다. 그래도 선거 때마다 갈등은 계속됐다. 지금 같은 TV 방송규칙이 확립된 것은 1987년 대통령후보토론회(CPD)가 구성되면서부터다. CPD는 토론참석 자격으로 피선거권과 함께 이론상 전국적으로 당선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지역 구수 등)과 주요 여론조사기관 조사에서 15% 이상의 지지를 규정했다. 이에 따라 군소후보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지만 규칙이 바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요즘 나오는 분석들은 그 영향력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다. 영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판세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친니가 분석한 TV 토론의 효과.
미국 언론인 친니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토론을 계기로 역전한 사례는 없었다. ⓒ이승철

미국 언론인인 단테 친니도 그중 한 사람이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를 집중적으로 취재해온 친니는 공화당의 조지 H 부시와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맞붙었던 1992년부터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 밋 롬니가 대결했던 2012년까지 6차례 TV 토론과 선거결과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토론을 계기로 역전한 사례는 없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앨 고어가 나섰던 2000년 선거의 경우 부시가 토론 전에는 고어에 3%포인트 뒤져 있었는데 차이를 크게 좁히긴 했으나 따라잡지는 못했다. 부시는 총득표수에서는 졌지만 선거인단수에서 이겨 대통령에 당선됐다.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의 2008년 선거에서는 토론 전 격차가 2% 포인트에 불과했으나 결과적으로 7% 포인트 차이까지 벌어졌다. 한 마디로 대부분의 TV 토론과 대선 결과가 사실상 평행선을 그었다고 친니는 결론짓고 있다.

그 이유로는 미국 유권자들의 양극화 현상이 꼽힌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무리 잘못해도 넘어가지만 상대 후보가 잘 할 경우는 인정을 하긴 하지만 지지자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토론회가 개인의 사생활을 꼬집는 저질 말싸움 공간으로 변질하거나 거짓말 잔치 공간으로 전락하면서 스스로 영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
눌변이었던 조지 부시 후보와 달리 엘고어는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두 사람의 TV 토론의 승자는 눌변인 조지 부시였다. ⓒChristopher Halloran/Shutterstock

2000년 선거 때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TV 화면을 지켜보았다. 고어는 달변이었지만 부시는 눌변이었다. ‘바보 부시’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토론 이후 부시가 이겼다는 얘기가 많이 나돌았다. 부시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고어는 오랜 정치생활을 통해 똑똑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굳어져 있어 그가 부시의 발언에 자주 한숨 짓는 모습이 유권자들에게 오만하게 비쳐졌다는 평가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그런 점에서 TV 토론은 좋은 의미에서 판세를 뒤엎을 정도의 위력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후보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TV 토론이라는 공간이 후보자에겐 기회의 장이 아니라 잘 해야 본전인 투전판인 셈이다.

우리도 내년이 대통령 선거다. 곳곳에서 대통령 후보자 간 토론을 벌이려 기획하고 있다. TV 토론에 열광하기 이전에 그 영향을 한 번 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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