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넘어 어린이들과 관계 맺는 법을 터득하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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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넘어 어린이들과 관계 맺는 법을 터득하다

멋쟁이 할아버지 되기(크기변환)
초등학생 또래 어린이들과의 관계 설정이 고민스럽다. 예쁘고 귀엽다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다간 자칫 이상한 할아버지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민준

60 고개를 넘으면서 가장 불편하고 어색한 게 30대 이하의 젊은이와의 관계 설정인 것 같다. 아래위 10년 정도 차이는 서로에게 쌓인 연륜 덕분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바탕이 되어 부드러운 톱니바퀴처럼 잘 물려 돌아가는데, 그 밑으로 내려가면 누적된 세대 차이 때문인지 이가 잘 맞지 않는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를 대할 땐 아들 같기도 하고, 손자 같은 느낌이 들어 말투부터 어정쩡해진다. 습관적으로는 반말이 튀어나오려 하지만 젊은이에게 반말을 했다가 봉변당한 경험담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어설픈 존댓말을 하게 되는데, 이게 되레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것 같다.

눈에 거슬리는 젊은이의 행동을 보고 자식처럼 대했다가 화를 당했다는 얘기가 자주 들리기도 하는데, 어쩌면 어정쩡한 말투와 자세가 화를 자초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든 이에 대한 공경심이야 기대할 수 없는 시대지만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연배의 어른이 단호하고 근엄하게 타이르면 젊은이들이 순간적으로 눈을 치떴다가도 대개는 다소곳해지는 게 보통인데 어정쩡한 자세로 타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눈을 부라리며 아예 반말 비슷하게 웬 참견이냐며 격한 말을 내뱉는다. 운이 나쁘면 “영감탱이가 명 재촉하려고 환장했나”라는 폭언까지 들을 수 있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동물적인 본성의 발로이겠지만 세태인 걸 어찌하랴.

나의 경우는 젊은이들과의 관계보다 초등학생 또래의 어린이들과의 관계 설정이 더 고민스럽다. 예쁘고 귀엽다고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다간 자칫 이상한 할아버지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드러운 말투라 해도 잘못을 지적하고 타이르는 것 역시 고리타분한 할아버지란 누명을 쓰기 쉽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얼굴이 부딪힐 때마다 내가 상대방 아이에게 ‘이상한 할아버지’나 ‘고리타분한 할아버지’로 보인다면 나나 그 어린이나 여간 불편한 게 아닐 것이다.

 


 

최근 아파트 단지 안 어린이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놀이터 옆 약수터에서 생수병에 물을 담고 있는데 초등학교 4~5학년생으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 두 명이 미끄럼틀에서 까르르대며 놀고 있었다.

그 나이에 으레 그렇듯 둘은 연신 꽃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미끄럼틀 터널 안을 들락거렸다. 무엇을 하든 둘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약수를 받으며 두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질 정도였다.

‘얼마나 귀중한 순간인가! 지금은 모를 테지만 지나고 나면 이때가 얼마나 그리워질 시간일까.’ 순간 내 어릴 적 즐거웠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발길이 놀이터 미끄럼틀로 옮겨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미끄럼틀 아래로 아이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기다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 정말 서로 좋아하는 것 같구나.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멋져 보였어.”
두 아이는 갑작스런 나의 등장과 말에 놀라는 듯했다.
“지나고 나면 귀중한 추억이 될 것 같아. 둘이서 즐겁게 지내는 순간을 휴대전화로 찍어주고 싶은데…?”
두 아이는 순간 긴장을 풀었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고맙긴, 내가 기분 좋지.”
나는 한 아이가 건네주는 휴대전화로 두 아이가 미끄럼틀을 오르내리고 터널 안에서 깔깔거리는 모습을 여러 장 찍은 뒤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나중에 아름다운 추억이 될 거야!”
두 아이는 휴대전화에 찍힌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한 뒤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멋쟁이세요!”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접근해 말을 걸 수 있는가를 어렴풋이 알아낸 것 같았다.

 


 

두 번째 아이들과의 대화는 아파트 단지 내로 흐르는 개울에서다. 관악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자연천이 그대로 아파트 단지 안을 흐르는데, 비가 오면 물소리가 요란해 심산유곡을 방불케 할 정도다.

비가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개울은 물이 가득했고 손가락만한 송사리 떼가 몰려 다녔다. 아이들이 개울 속으로 들어가 잠자리채와 병을 들고 송사리를 잡느라 야단이었다. 개울 옆에는 ‘이곳에서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들은 아랑곳없이 아이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며 송사리 잡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한 아이 옆에 걸음을 멈추었다.

“송사리 잡는 거니?”
“네.”
“재미있어 보이는구나.”
“네.”
물가에 앉아 있던 아이 엄마의 시선이 내게 꽂히는 게 느껴졌다.
“만약에 말이야, 네가 송사리라면 어떻겠니?”
아이와 아이 엄마의 시선의 동시에 내게 쏠렸다.
“네가 물속에서 신나게 노는데 덩치 큰 무엇이 너를 꽉 잡아서 좁은 곳에 가두면 기분이 어떻겠어?”
“안 좋지요. 나쁘지요.”
“그렇지! 너는 재미로 송사리를 잡지만 송사리는 지금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고 있어.”
그러자 아이 엄마가 나섰다.
“잡아서 죽일 게 아니고 체험으로 잡는 거예요.”
“아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리곤 아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송사리들이 행운이구나. 네가 송사리여도 같은 느낌일 거야. 잡아서 만져보고 자세히 관찰한 뒤 놓아주면 송사리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니. 그럴 거지?”
“그럼요. 죽이지 않고 놓아줄 거예요.”
“너 참 가슴이 따뜻한 아이 같구나. 즐겁게 놀다 가렴.”
“네, 할아버지.”
아이 엄마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드님은 지금 생명존중이란 귀중한 것을 가슴으로 느꼈을 겁니다.”

나는 걸음을 떼어놓으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칫 아이 엄마가 “할아버지가 뭔데 아이더러 송사리를 잡아라 마라 간섭하는 거예요?” 하고 대들면 말다툼밖에 더 되겠는가.

그러고 한참 후 약수터에서 한 무리의 어린이들과 마주쳤다. 물을 받고 있는데 약수터 주변에 아이스크림 껍질이며 과자 봉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마침 근처에는 초등학생 상급반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 셋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냥 놔둘까 무어라 할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버린 것 같지는 않은데 약수터 주변이 어지럽구나. 나하고 같이 잠깐 치우면 어떻겠니?”
그리곤 내가 먼저 버려진 종이 조각과 아이스크림 껍질을 줍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도 나를 따라 약수터 주변의 휴지 조각들을 주웠다. 아이들은 약수터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데 그치지 않고 어린이 놀이터 전체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아이고, 이렇게 같이 쓰레기 치워줘서 너무 고맙다!”
이때 돌아온 아이들의 대답.
“할아버지가 더 고마우세요.”
나는 흐뭇한 가슴으로 약수터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