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 하리② 알몸의 댄서, 고급 창녀 그리고 스파이까지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마타 하리② 알몸의 댄서, 고급 창녀 그리고 스파이까지

마타 하리에게 퇴짜를 당한 고객도 있었다. 미국의 군수품 업자가 엄청난 돈을 가지고 마타 하리를 만났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퇴짜 놓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식탁에서의 예절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마타 하리도 그만큼 거물이 되었다는 증거다.

 

마타하리
출처: en.wikipedia.org

 

수 십 명의 남자 애인 가운데 그녀가 가장 신경을 썼던 애인은 독일 기병대 소속이며 지주의 아들이었던 알프레드 케페르트 중위였다.

 

당시 케페르트 중위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으나 두 사람 다 그런 것엔 상관이 없었다. 두 사람은 아파트를 얻어 놓고 관계를 이어 나갔다. 중위의 부인이 마타 하리가 자신의 남편을 파멸 시켰다고 난리를 쳤지만 두 사람은 까딱하지 않았다. 결국 1년이 지나서여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 뒤에 나타난 애인이 하비에르 루소였다. 루소는 증권 중매인으로 엄청 돈이 많은 사나이었다. 루소는 파리 교외에 별장을 마련하고 주말이면 마타 하리를 만났다. 두 사람이 얼마나 호화판 생활을 했는지 2년 만에 루소의 재산은 거들나고 말았다.

 

애인은 다시 바뀌었다. 루소 다음의 연인은 에드와르 빌렌 반 데아 카펠렌이었다. 그런데 카펠렌 역시 군인이었다. 상당한 재력가이며 네델란드의 기병대 대령이었다. 유부남이었던 이 대령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카펠렌 대령의 뒤를 이은 애인도 역시 군인으로 이번엔 러시아의 육군 장교인 비딤 데 마슬로프 대위였다. 그런데 이때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그리고 그 때 마타 하리는 이미 독일군의 스파이가 된 뒤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러시아의 마슬로프 대위의 애인이 된 것은 일종의 스파이 행위였는지 모를 일이다.

 

스파이로 포섭되다

 

마타 하리가 어떤 이유와 과정으로 스파이가 되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마타 하리의 스파이 활동은 그녀의 나이 38세부터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직후였다.

 

어떤 때 그녀는 독일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베를린 시가지를 질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독일군에게서 비밀 잉크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독일군 암호 번호는 H21이었다.

 

스파이가 된 뒤부터 그녀는 자신의 매력 있는 육체를 미끼로 스파이 활동을 해나갔다. 그런데 또 다른 주장으로는 그녀는 그 때 이미 프랑스의 스파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타 하리는 교묘하게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쨋든 독일 지령에 따라서 그녀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접근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남성을 유혹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접촉했던 인물들은 대부분이 장성급 군인들이었다. 그러나 이 밖에도 국방과 관련이 되는 각국의 귀족들과 국방부 문관들이었다. 특히 프랑스 국방장관의 정부 노릇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3년만에 체포

 

nbt
출처 네이버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1년 앞두고 그녀의 스파이 활동은 막이 내렸다. 스파이가 된 지 3년만이었다. 그녀를 끈질기게 추적했던 프랑스의 첩보 요원에 의해 체포 당한 것이다. 그녀는 호텔 방에서 체포 되었다. 체포 당할 당시 그녀는 발가벗은 알몸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군 장성들의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재판이 진행 됐지만 대부분의 스파이 사건이 그러했듯이 마타 하리에게도 결정적으로 뚜렸한 증거는 없었다. 그녀에 대한 자료의 두께가 18Cm나 됐지만, 증거로서는 애매한 것들 뿐이었다.

 

그녀가 몰래 갖고 있었다는 비밀 잉크라는 것도 사실은 다른 용도의 것이었다. 섹스를 한 뒤 피임용으로 사용했던 수은의 옥시시안니드였던 것으로 판명이 됐다.

 

그녀의 재판엔 평소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고위층 인사들이 나와 그녀를 옹호하는 증언을 했다. 그 가운데는 프랑스 외무장관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했음에도 불구하고 마타 하리의 형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었다. 마타 하리에겐 무서운 형이 선고됐다. 그것은 총살형이었다.

 

사형이 집행 되던 날 형무소의 관계자들 앞에서 다리를 지나치게 노출 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 있었던 수녀에게서 야단을 맞기도 했다. 마타 하리는 결국 온몸의 피부가 하나도 노출되지 않도록 옷이 입혀졌다.

 

애인들의 구명 운동

 

감옥에서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 마타 하리는 임신 여부를 질문 받았다. 당시 프랑스에선 임신부는 형의 집행을 면죄 받을 수 있다는 법 조항이 있었다. 애인인 크뤼네가 마타 하리를 살리기 위해 마타 하리가 임신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났고 그녀는 사형장을 향했다.

 

마타 하리는 스스로 원해서 눈가리개도 하지 않은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41세의 파란만장했던 한 여성은 이렇게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주인공답게 그녀는 죽은 뒤에도 화제는 이어졌다. 그녀가 사형장에서 코트가 벗겨졌을 때 그녀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알몸이었다는 것도 그 가운데의 하나다. 또 그녀의 공군 조종사 애인이 사형을 저지하게 위해 비행기를 몰고 사형장에 나타나 기총소사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밖에 또 다른 애인은 오페라 ‘토스카’처럼 총살 집행 군인을 매수해 다른 방향으로 총을 쏘게 하고 그녀를 구멍이 뚫린 관에 넣어 묻게 한 뒤 나중에 끄집어 내 살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가 지어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의 죽음은 비참했다. 시체를 인수해 갈 사람 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마타 하리의 시신은 의과 대학의 실습용으로 기증이 됐다.



전성기뉴스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지난 2015년 9월 첫 문을 열었던 <전성기뉴스>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보다 가까이에서 소통하기위해 SNS 채널을 개설, 50+를 위한 유익한 콘텐츠를 지속 제공합니다.

전성기뉴스는 2017년 12월까지 운영되며, 기존 콘텐츠는 라이나전성기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콘텐츠 보러가기

그동안 <전성기뉴스>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SNS 채널에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