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삶, 김안제 서울대 명예교수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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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삶, 김안제 서울대 명예교수

2017.01.12 · HEYDAY 작성

김안제 교수는 우리나라 신행정수도 건립을 총괄한 지방자치 행정학의 대부다. 그에겐 특별한 취미가 있으니 바로 기록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여든인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을 기록했다. 60세 때는 <한 한국인의 삶과 발자취>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고 70세 때는 무려 2700페이지에 이르는 <김안제 인생백서>를 출간했다. 그리고 2016년, 여든을 맞이해 정리한 그간의 기록을 올 1월 <안제백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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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을 맞아 10년 만에 새로운 책이 나옵니다.
여든을 산수라 그러고 금혼은 결혼 50주년을 뜻하거든. 그래서 이번 책 제목을 산수 및 금혼 기념 자서전 <안제백서>라 붙였어. 부제는 사람들이 나를 전설이라 부르길래 ‘전설과 실사의 생애 기록집’이라고 붙였지. 이전 책들은 두껍고 한문이 많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읽기 힘들다고 해서 이번엔 다 한글로 바꾸고 내용도 줄였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을 해오셨는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내가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면서 만화, 동화, 소설 이런 거를 3년간 한없이 읽었어. 4학년 어느 날 역시나 책을 읽고 있는데 알고 보니까 내가 2학년 때 읽었던 거야. 너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거지. 그때부터 읽은 책 이름을 적어놓기 시작했어. 또 5학년 때 처음으로 영화를 본 거야. <효녀 심청>이었거든. 앞으로 살면서 많은 영화를 볼 테니 영화도 기록하기 시작했지. 이게 점차 늘어나면서 지금은 항목이 700개가 넘어. 

 


기록을 통해 생활이 달라지셨나요?
계획적인 생활을 하게 돼. 아침에 일어나서 친구들 만나고 노래방 가는 생활을 계속 적는다고 생각해봐. 이렇게 살아서 되겠나, 이렇게 비생산적이게 살아갈 수 있나 싶지. 시간이 낭비되는 걸 직접 보면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게 돼. 내가 교수이기도 했고 정부에서 일했으니까 힘 있는 자리에 있었을 거 아니야. 식사 대접하겠다고 하고 돈을 주겠다는 사람도 찾아와. 그런데 그걸 또 적지 않으면 거짓말이잖아? 내가 부탁을 받고 돈을 받았다고 적으면 이건 완전 도둑놈이고. 누가 나한테 청탁하러 왔으나 거절했다고 쓰면 그리 기분이 좋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싶으니까.

 

1960년 4·19혁명 당시 현장에서 다치셨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이처럼 교수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지나고 보니 역사적 순간인 때가 참 많으셨죠?
많지. 국가적 역사와 내 생활이 맞아떨어질 때가 있어. 4·19혁명이 일어나서 정부가 바뀐 것도 그렇고 내가 김대중 정부 때 지방분권위원장을 맡았고 노무현 정부에서 신행정수도를 추진했고. 개인적으로 그 일에 참여함과 동시에 행정수도가 만들어지는 역사를 함께 쓴 거지.


지금부터 기록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게 있다면요?
한번은 포천에서 전화가 온 거야. 자기 나이가 육십이나 되는데 기록을 시작해도 되겠냐고. 그래서 얘기했어. 당신 나이가 어때서? 기록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웃음). 지금 당장 시작해. 그리고 자기가 살아온 업, 이를테면 농사꾼이나 공무원이거나 장사꾼 등 자기에게 역점인 분야를 기준으로 항목을 만들어. 내가 만든 게 총 700개거든. 그거 다 할 필요 없이 20~30개를 골라. 그리고 공통 항목이 학력, 직장인데 같은 직장이라도 직급에 맞춰서 다 기록해놔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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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기록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만약 오늘 일정이 대담, 강의, 저녁 식사 약속 세 가지가 있으면 각 일정대로 표를 만들어. 그 표에는 월, 일, 시간, 소속, 성명, 목적, 행사 등 하루 일과가 다 들어가. 또 내가 물건을 하나 샀어. 그러면 언제 샀는지 당시 거주지는 어디였는지 어떤 제품이고 형태였는지 일일이 다 기입하는 거야. 이런 내용들이 하루하루 모여 한 달이 될 때 노트에 옮겨 적고 한 달 통계를 내. 그렇게 해서 1년이 되면 또 1년 통계를 내는 거지.


교수님께 기록은 어떤 의미인가요?
인생이란 건 한번 왔다가 가거든. 또 오겠어? 그런 삶에서 지구상에 무언가를 남겼다는 게 뿌듯하고 지구를 떠나도 미련이 덜 남지 않을까 하는 자부심도 있고.


<김안제 인생백서> 중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중략) 나도 그 말을 믿고 제2의 새 인생을 설계하여 다시 한번 시작해봐야겠다. 나는 이제 열 살이다”라는 문구가 있는데요.
우리가 스무 살을 성년의 나이라고 하잖아. 성숙한 하나의 독립된 인간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활발하게 활동해야지. 내 희망은 90세 때 그동안 써왔던 수필을 골라서 수필집을 내고, 100세 때 ‘100세 인생’이란 노래도 있는 것처럼 <인생 백년사>라는 책을 집필하는 거야. 벌써 이름도 다 정해놨어.


이제 막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60세가 넘으면 불안해.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거든. 장래에 대한 계획을 못 세워. 괜히 세웠다가 죽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그래서 되는대로 사는데 그러면 안 돼. 죽을 생각하지 말고 10년 계획, 20년 계획, 좀 더 욕심이 있고 건강하다면 30년 계획을 짜봐. 나는 70세 됐을 때 30년 계획을 짰어. 저승사자가 날 데려가지 않을 정당한 이유를 벌써 다 정리해놨다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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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양열매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이 기사는 <헤이데이> 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