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통해 깨우친 노후 대책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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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통해 깨우친 노후 대책

2015.08.18 · 윤영걸(전 매경닷컴 대표) 작성

지금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들어 계시는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지난 2014년 9월 경황없이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일상의 삶에 쫓기듯 사느라 제대로 아버지를 추억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요즘 들어 제대로 봉양을 못해드린 점이 날로 송구스러워지고 더욱 그리워집니다.

1926년에 태어난 아버지의 삶은 험난한 세파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헐벗고 굶주린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20대에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시절에 발발한 6·25전쟁 때에는 국군으로 입대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긴 대가로 받은 화랑무공훈장을 세상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분신처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인생과 사회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 또한 아버지에게 배울 점입니다. 암 말기 선고를 받고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으면서도 한 번도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수술했던 어느 대학병원 집도의는 수술 성공 사례로 진료실에 아버지 사진을 걸어놓았을 정도로 기적적으로 완쾌했습니다.

 

외로운 아버지(크기변환)
어머니 떠나신 뒤의 아버지 삶은 적막강산에 혼자 남겨진 듯했습니다. ⓒRexRover/Shutterstock

 

평생을 성실과 열정으로 살아온 아버지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보통 한국 남성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아내인 어머니에게 의존하다보니 사별 이후 삶의 질이 형편없이 낮아졌다는 겁니다. 아버지보다 4년 가까이 먼저 세상 떠난 어머니가 요리사고, 대변인이고, 집사였습니다. 심지어 자식들도 아버지와의 소통을 어머니를 통해서 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제3자였고, 아버지의 의사는 어머니를 통해 간접화법으로 자식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어머니가 다 챙기다 보니 어머니 떠나신 뒤의 아버지 삶은 적막강산에 혼자 남겨진 듯했습니다. 자식들은 어머니와 너무 다른 아버지를 보고 ‘천국의 어머니’를 더욱 그리워했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세상 떠난 아내에게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얘기하던 자식들이 당신에게는 벽을 두는 것 같아 아마 서운한 느낌이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우리 가족에겐 어머니의 빈자리가 컸습니다.

아버지와 자식들은 서로 걱정은 하면서도 할 얘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별일없냐?” “아이들은 잘 크냐?” “회사는 잘 다니냐?”고 묻는 게 고작이었고, 자식들은 “건강 잘 챙기세요” “요즘은 100세 시대니 활발하게 사셔야 합니다” “뭐 부족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라고 말하는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전화라도 걸어오면 대뜸 “뭔 일 있으세요?”라며 심드렁하게 받기도 했습니다. 자식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하셨는데…, 아버지가 겪었을 외로움을 너무 이해 못해 드린 점이 지금에 와서는 회한으로 남습니다. 아버지와 좀 더 소통하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대화를 나누고 아버지의 얘기를 진지에게 들어야 했습니다.

흔히 노후 대책을 생각하면 은퇴자금 마련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지켜보면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돈은 사소한 것이라고 했지요. 물론 경제적인 여건을 외면할 수 없지만 노후에 우리 앞에 닥칠 일을 생각하면 돈보다 중요한 일이 훨씬 많습니다.

 

나는 몇 살까지 살까
이 책에는 ‘살을 빼라’ ‘담배를 끊어라’ ‘운동을 열심히 해라’와 같은 흔해 빠진 조언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워드 S. 프리드먼, 레실리 R. 마틴은 1500명의 인생을 80년 간 추적한 사상 초유의 수명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나는 몇 살까지 살까>를 내놓았습니다. 이 책에는 ‘살을 빼라’ ‘담배를 끊어라’ ‘운동을 열심히 해라’와 같은 흔해 빠진 조언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연구를 진행하며 ‘눈이 번쩍 뜨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고 강조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좀 더 남성적인 사람들은 남녀 모두 사망 위험이 증가한 반면에, 좀 더 여성적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건강을 잘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단지 여자라는 생물학적 사실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대체로 남성보다 ‘더 여성적’이라는 사실이 여성의 행복과 장수에 도움을 주는 요소라고 저자들은 분석합니다.

이혼으로든 사별로든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잘 회복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내를 잃은 남성들은 외로움과 병마에 시달리며 힘겨워합니다.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나서 술로 세월을 보내는 필자의 친구도 있습니다. 가족은 물론 남과의 소통에 능하다는 사실이 여성의 노후 행복을 지켜주는 원천이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노년의 행복과 장수는 ‘타인과의 관계’와 뗄 수 없이 밀접하다는 사실입니다. 건강하게 나이를 먹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공동체와의 커뮤니티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남성호르몬 분비가 줄어들어 성격이 소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겨주는 부부가 대부분이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무덤덤해집니다. 자식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려고 해도 마음뿐입니다. 마음은 한없이 여려지지만 눈물을 보이면 큰일 나는 줄 압니다. 나이 든 남자는 가슴속으로만 눈물을 흘릴 뿐 남과 터놓고 대화하기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지요.

인간관계가 주로 업무와 연결되다 보니 은퇴하면 자연히 관계가 소원해지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집안 주변을 맴돌게 되고 소심해져서 작은 일에도 곧잘 서운해 하며 상처를 받습니다. 가족들은 달라진 남편이나 아버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나이든 남자는 늘 외로워하는지 모릅니다.

이래저래 이 땅에서 아버지 노릇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이지요. 더 이상 물러서면 절벽이니까요. 멘토(Mentor)는 목에 힘만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힘을 내 새로운 아버지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자녀에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 노후대책(크기변환)
가족과 대화하고, 보살피고, 함께 어울리는 역할을 여성에게만 맡기지 말고 남자들이 되찾아 오는 게 어떨까요. ⓒDubova/Shutterstock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아버지가 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버지는 힘든 부양자 역할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집안에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야 합니다. 단순 노동력이 드는 청소나 빨래보다는 자신의 솜씨를 자랑할 수 있는 요리가 낫다고 합니다. 앞치마를 걸치고 가족을 위해 ‘장보는 남편, 요리하는 아버지’가 된다면 훨씬 행복해질 겁니다. 가족과 대화하고, 보살피고, 함께 어울리는 역할을 여성에게만 맡기지 말고 남자들이 되찾아 오자는 것이지요.

테스토르테론이 넘쳐나는 마초 같은 남성이 아니라, 에스트로겐으로 온몸이 촉촉해진 여성적인 남성! 필자가 아버지를 통해 깨우친 노후 대책은 바로 이겁니다. 한마디로 어머니 같은 아버지가 되자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