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아웅산 묘지 폭파 사건 – 1부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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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아웅산 묘지 폭파 사건 – 1부

아웅산폭파사건 기자단
당시 필자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대통령의 해외순방 길을 수행하게 됐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이 엄청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고자 함이다. 필자의 경우와 비교해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소 잘못 알려진 내용도 바로 잡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황성규
아웅산 묘지 폭파 사건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버마(현재는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지 참배 시 대한민국 대통령 일행을 시해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진 폭탄 테러 사건.

#1 김포공항 환송식

1983년 10월 8일 오전,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6개국 순방 환송식이 열렸다. TV 생중계로 진행됐고 필자는 근접 촬영기자로 환송식 내내 뛰어다녔다. 비행기 계단을 오르는 대통령 내외분을 촬영한 뒤 카세트테이프를 촬영대에 있던 동료에게 넘기고 또 뛰어서 뒷문으로 전용기에 올랐다. 문이 닫히고 곧 이륙했다.

휴~ 긴 숨을 내쉰다. 필자는 6개월 전 여덟 장의 신원조회서를 쓰고 여러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 신원조회를 통과한 후 청와대 출입기자가 됐다. 그러고 나서 처음 떠나는 해외순방이었다.

 

#2 첫 방문국 도착

우리 일행은 8시간 비행 후 랑군공항에 도착했다. 촬영팀은 경호팀과 함께 가장 먼저 지상으로 내려왔다. 기온은 26℃라 했는데 습기가 많아 무더웠다. 버마 대통령의 영접으로 환영식을 마친 후 대통령은 영빈관으로 그리고 우리는 숙소인 호텔로 향했다.

 

#3 호텔(프레스센터) 도착

수행기자단은 청와대 출입기자(펜 11명, 사진공보과 3명, 신문사 1명, 영상은 대한뉴스 2명, TV 2팀 4명) 외에 연합통신 사진기자와 사진 전송담당이 합류했다. 그리고 TV 외곽지원 한 팀으로 구성됐다.

버마는 TV 방송국이 없는 나라다. 취재된 화면은 버마 어디에서도 한국으로 송출이 불가능해 외곽지원팀이 테이프를 가지고 이웃나라 태국 방콕으로 비행기 타고 가서 송출해야 했다. 랑군공항 도착 화면도 이미 태국으로 출발했다.

프레스센터에 모두가 모였다. 선발대로 온 공보의전 쪽에서 간단한 안내가 있었고, TV팀(KBS, MBC, 지원팀 합쳐 세 팀)은 모여서 촬영 스케줄을 잡았다. 이 시간부터 각자의 운명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아무도 모른 채 말이다.

일단 오늘은 공식 일정이 끝났으니 비상대기조를 필자가 맡기로 했다. 내일은 오전 보도 일정이 같은 시간대에 두 건이다. 한 건씩 나눠야 한다. 한 건은 대통령과 공식수행원 전원이 버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의 묘지(우리나라의 국립묘지급)를 참배하는 것과 의전에 따라 이 행사에 참석 못하는 영부인이 버마에 사는 한국 부인회와 다과를 하는 행사다.

그런데 두 팀 중 MBC의 임채헌은 청와대 출입, 방송사 입사가 필자보다 선배다. 그러니 당연히 필자가 먼저 비상대기를 하고 다음날 첫 번째 대통령 행사는 MBC가 맡고 영부인 행사는 필자가 맡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외곽팀의 투입 여부다. 당연히 외곽팀을 묘지 참배 행사에 투입해야 하는데 “어찌할까요?” 임 선배에게 물었다. “그냥 혼자 하지 뭐.” 임 선배의 성격상 당연한 답이다. 본인이 직접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악바리 근성을 가진 선배다. 외곽팀은 KBS 식구로 필자의 후배니 그렇게 하기로 정했다. 이 결정으로 우리 세 팀의 운명 또한 정해졌다.

 

#4 다음날 아침

비가 온다. 습기도 많은 나라에 비까지 내리다니….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다가 밖을 보았다. 새들이 많다. 새까만 새들이 잔디밭에 수없이 앉았다 날아가고 울어댄다. 식사하는 내내 우리는 새 얘기를 했다. 그 새들은 우리나라의 까마귀와 같은 새로 버마에서는 길조로 보호받기 때문에 건드리면 큰일 난단다. 그래도 필자는 싫었다.

프레스센터로 모였다. 행사장으로 갈 시간과 방법, 안내담당이 명시된 안내서가 공고판에 붙어 있다. 필자가 맡은 영부인 다과회 취재팀은 펜 2명, 공식사진 1명, 대한뉴스 1명 그리고 TV 2명이다. 묘지 참배팀에는 나머지 전원이 간단다. 수행 경제인만 빼고 전원이….

 

#5 영빈관 다과회 행사장

버마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대사관 직원과 코트라 가족뿐이라 했다. 영부인은 그 부인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잡고 “수고 많이 하셨다” 감사를 표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경호원이 행사장으로 뛰어들었다. 쭈그린 채로 영부인을 한 컷 찍고 일어서는데 “각하께서 급히 찾으시니 모시겠습니다” 말하니 “지금이요?”라고 영부인이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다과회 행사장은 영빈관 본관 건물에서 50m 정도 떨어진 별관 건물에 있었다. 필자도 즉시 영부인 뒤를 따랐다. 경호원들이 영부인을 둘러싼 채 도보로 본관 방향으로 이동한다. 위급상황이 발생한 것을 직감했다. 일단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뒤를 따랐다. 잘 가꿔진 정원을 원색의 한복을 입은 영부인이 걸어간다. 그것도 빠르게….

 

#6 영빈관 본관 앞

“카메라는 빠져!” 경호처장이 소리친다. 영부인은 본관 안쪽으로 사라지고 우리는 제지를 당한다. 경호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방탄조끼를 착용하며 무기에 총알을 장전하며 뛴다. 외곽 경호팀도 자리를 잡는다. 과장급 경호관에 물었다.

“VIP 행사장에 폭탄이 터졌다.”
“VIP 도착 전에 폭발 참석자가 다 죽었다.”
“VIP는 중간 지점에서 유턴, 되돌아왔다.”

 

아웅산폭파사건-1
조사팀이 사건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황성규

 

#7 이제부터는 무엇을 할까

생각했다. 일단 프레스센터로 철수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공식사진 담당 1명은 남았다. 다행히 우리에게 배당된 미니버스가 주차장에 있어 그 편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첫 번째 운명이 뒤바뀐 황 공보수석 겸 대변인을 만났다. 공보수석이 행사장으로 타고 갈 승용차를 다른 공보팀이 이용하는 바람에 차가 없었단다. 담당 행정관이 된 꾸지람을 듣고 대기 차량으로 배차 공식수행원 일행을 쫒았지만 에스코트 받고 가는 차량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고를 면했다 한다. 다행이다.

공보수석과 영부인 행사장에 갔던 5명은 회의를 했다. 대변인의 공식 발표 외에는 알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프레스센터에는 한국 직통전화 세 대가 가설돼 있었다. 나중에 확인된 사고 발생 시간은 버마 시간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8분(한국 시간 오후 12시 58분)이다.

 

※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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