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가장론] 1 집안일을 내가 하면 처자식이 편하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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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가장론] 1 집안일을 내가 하면 처자식이 편하다

집안일(크기변환)
남자가 살림을 어떻게 하느냐고요? 왜 가족을 위해 집안일 못 합니까. 아내보다 힘도 센데. ⓒkazoka/Shutterstock

‘가장훈(家長訓)’을 아십니까. 모른다고요? 그게 뭐냐고요? 그럴 겁니다. 가장훈은 사전에도 없는, 제가 만든 말이니까요.

가정에는 가훈이, 학교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사훈을 내건 기업체도 적지 않죠. 사훈이 ‘사원이 지켜야 할 회사의 방침’이듯 가장훈은 그저 ‘가장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쯤으로 저는 여깁니다.

그런데 왜 느닷없는 가장 타령이냐고요? 지금 중장년층이 자랄 때 아버지는 명실상부한 가장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집안의 법이었고, 그 눈길은 엄격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보면서 가장이라는 무게를 느끼고 가장될 준비를 알아서 했습니다.

산업화 시절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아마 ‘무슨 일이 있어도 처자식은 먹여 살려야 한다’는 보통 사람들의 가장의식이었을 겁니다. 전통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과도한 노동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장들은 책임감과 자기희생으로 버텨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가장의 위상은 어떠한가요. 45세면 사실상 정년이라는 ‘사오정’, 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놈이라는 ‘오륙도’가 횡행하는 시대입니다. 사회에서 물러나(혹은 밀려나) 집에 틀어박히면 ‘삼식이(하루 세 끼 집에서 꼬박 챙겨먹는 사람)’라고 또 구박받지요.

아내는 돈 안 벌어온다고 눈총을 주고, 자식들은 집에 있는 아빠가 영 생소하고 불편합니다. 이 시대에 중장년 남자는 집안에서조차 가장은커녕 왕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에게는 더 이상 권위도, 명예도 없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남의 눈에는 띄지 않는, 내 등짝에만 찰싹 달라붙은 무거운 짐짝뿐입니다.

그럼 가장 자리를 포기하면 될까요? 우리는 예비가장으로 태어나 가장으로 살아왔습니다. 원한다고 버려질 책무가 아닙니다. 남들이 인정하건 안 하건 우리는 가장입니다. 숙명인 것이지요. 어차피 마음속에서 버릴 수 없는 가장이라면, 스스로 시대 변화에 맞춰 가장으로서 할 일을 바꾸면 됩니다.

이제 처음 언급한 제 가장훈을 소개할 차례입니다. 딱 두 줄입니다.

‘힘든 일은 내가 한다. 귀찮은 일도 내가 한다.’

저는 정년퇴직한 지 만 4년이 다 되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직장에서 그랬듯이 집에서도 할 일은 쌓여 있습니다. 가사노동입니다.

‘제로섬(Zero-sum) 게임’ 이론을 아실 겁니다. 따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가 많이 차지하면 누군가는 조금 가져가야 합니다. 곧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합치면 제로라는 법칙입니다.

집안일이 그렇습니다.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등 해야 할 일은 늘 있습니다. 그 일을 내가 하면 처자식이 편하고, 처자식이 하면 내가 편합니다.

저는 살림, 제가 합니다. 남자가 살림을 어떻게 하느냐고요? 왜 못합니까? 젊어서 캠핑 가면 앞 다퉈 밥 짓고 반찬을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설거지, 빨래, 청소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고참 ‘빤쓰’도 빨고 친구들 위해 밥도 했는데 왜 가족을 위해 집안일 못 합니까. 아내보다 힘도 센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가장 여러분! 각자 마음에 가장훈 하나씩 담고 그에 맞춰서 생활해 보십시오. 식구들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담은 권위를 되찾을 겁니다. 가족 사이도 화목해질 터이고요. 그 구체적인 방법은 지금부터 지혜를 모아 함께 찾아나갑시다.

이용원(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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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재 동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국립국어원 말다듬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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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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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혈가장 2015-10-29 11:24:18

    집안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결국 자기 자신과 가족이 편안이 쉴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잖아요. 식물을 가꾸는 것처럼 애정을 가지면 절로 집안일도 즐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 춤추는 류네 2015-10-07 11:20:04

    저희 아버지께 제일 쉬운 콩나물국 끓이기부터 알려드려야겠어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 고슴도치 2015-08-30 08:07:46

    따뜻한 가장의 새로운 모델을보여주세요. 기대됩니다^^

  • 고슴도치 2015-08-30 08:06:31

    따뜻한 아버지상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기대되네요.

  • 얼치기농부 2015-08-30 05:39:26

    상당히 잘하고 있어요.

  • 심소현 2015-08-30 03:59:15

    이 시대의 진정한 가장이십니다! 많은 남성분들이 공감하셨으면 좋겠네요 ㅎㅎ

  • 심소현 2015-08-30 03:56:19

    이 시대의 진정한 가장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