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역사] 1986년 9월1일 외국산 담배 시장 개방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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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1986년 9월1일 외국산 담배 시장 개방

2015.08.28 · 심언준(전 미디어칸 대표) 작성
양담배(크기변환)
2000년대 초반 90%에 육박하던 국산 담배 점유율은 2010년 58.5%가지 떨어졌다. ⓒCristinaMuraca/Shutterstock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국산 담배는 ‘양담배’로 불렸다. 정부는 매년 수시로 양담배 단속기간을 정해 단속한 후에 적발된 명단을 언론에 발표하기도 했다. 단속된 사람들은 고위공무원, 회사원, 국회의원 등 다양했다. 이들은 비싼 과태료를 내는 것은 물론, 신원 공개로 인해 다니던 회사에서 해직되거나 징계를 받기도 했다. 1984년에는 정부의 양담배 단속에 적발된 현직 국회의원 명단 발표를 둘러싸고 정부와 정치권이 치열하게 맞붙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이나 대만이 일찌감치 1960년대 중반에 시장을 개방한 것과 달리, 이처럼 빗장을 꽁꽁 걸어놓았던 우리나라가 담배시장을 개방하게 된 것은 1986년 무역 흑자와도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정부는 통상법 301조를 내세워 우리나라의 시장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그동안 무역 적자를 이유로 시장 개방을 미루던 우리나라는 무역 흑자로 더 이상 시장 개방 요구를 뿌리지치 못하고 1986년 7월 미국의 요구가 거의 관철된 상태로 보험 및 지적소유권에 관한 협상을 일괄 타결했다.

당시 정부는 301조와 무관한 담배시장의 조기 개방은 전매청을 공사로 바꾼 뒤 1987년 이후 개방한다는 것이 공식 방침이었다. 하지만 1986년 7월 한미 협상을 타결하면서 같은 해 9월 1일부터 담배시장을 조기 개방하겠다는 내용을 전격 발표했다.

정부의 입장은 담배 개방은 어차피 해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압력이 거센 데다 국내 정치 일정으로 1987년 개방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 시기를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같은 해에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서 외국 손님을 위해 문호를 연다는 궁색한 변명도 덧붙였다.

 

2000년대 초엔 국산 담배 점유율이 90%에 육박

담배 부문의 주요 개방 조건은 9월부터 수입하되 연간 국내 소비량의 1%를 한도로 하고 가격은 1갑에 1400원으로 묶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한국이 주요 무역사항 3개를 양보했다고 보도하고 특히 한국의 외국 담배 수입 허가 방침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담배시장의 부분 개방 이후 초기에 실제 미국 담배 판매 실적은 생각보다 부진했다. 가격이 비싼 데다 ‘양담배 안 피기 운동’등이 사회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산 담배 점유율이 90%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후 필립모리스 등 외국계 담배 회사들이 국내 진출을 확대하며 2009년 62.3%까지 주저앉았고, 2010년에는 58.5%로 60%대 벽이 깨졌다.

이후 2012년부터는 60%대 초반으로 다소 회복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다시 60%대가 깨졌다. 지난 상반기까지의 실적 현황을 보면 국내에서 판매된 국산 담배는 177억 개비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시장 점유율도 57.7%로 크게 낮아졌다. 연초 담뱃값 인상이 있었던 데다 외국산 담배보다 국산 담배의 가격이 먼저 오른 점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