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파주 설마계곡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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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파주 설마계곡

태양이 지고 아침이 와도, 글로스터 대대의 옥쇄작전.

 

1951년 4월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때 중공군 3개 사단과 맞서 싸웠던 영국군 글로스터 부대원들이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잠시 쉬고 있다. 사진 ©문인수

 

4월 22일, 해마다 그날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6·25전쟁 때 설마 계곡에서 옥쇄한 글로스터 대대 장병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수많은 날이 오가고, 태양이 지고 또 지고, 아침이 오고 또 와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8순의 생존 노병들만 해마다 그들을 찾아 이국 땅에서 숨져간 전우들의 명복을 빌 뿐이다.

 

파주시 설마계곡 전투는 6·25전쟁의 대표적인 고립방어 전투였다. 1951년 중공군의 봄철 대공세 때인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는 설마계곡에 배수진을 쳤다. 남진하는 중공군 3개 사단을 저지하기 위해서.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84명. 부대원 889명 중에 805명이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했다. 설마 계곡은 동쪽에 감악산, 서쪽에 파평산으로 둘러싸인 요새다. 이곳이 뚫리면 의정부가 뚫리고 바로 서울이 함락위기에 놓인다. 글로스터 부대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중공군의 진격을 무디게 했고, 덕분에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에 새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풍전등화였던 서울함락은 그래서 저지됐다. 이때 전투에 참가했던 부대원들은 대부분 스무 살 아래의 청소년들. 그들이 설마계곡을 피로 물들인지 벌써 66년이 됐다. 그 숱한 세월에도 생존 노병들이 잊지 않고 설마계곡을 찾고 있다. 6·25전쟁 참전 16개국 가운데 이들처럼 노구를 이끌고 해마다 전적지를 찾아 전우의 넋을 기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해마다 4월이면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생존노병들이 찾아와 당시 전투와 비명에 간 전우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명복을 빈다. 사진은 2016년 추모행사 때의 모습. ©파주시청

 

‘Their name liveth forever more’ 로렌스 비니언(Laurence Binyon: 영국 시인, 1869~1943)이 전몰자 전쟁기념관에 바친 헌시다. ‘태양이 지고 아침이 와도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리라.’ 그랬다. 글로스터 부대의 전역노병들은 비명에 간 전우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설마 계곡을 찾아 그 전우들을 추모하며 영면을 기원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2011년 5월 6·25전쟁 때 철원전투에서 포로로 북한에 끌려갔다가 유해로 돌아온 일등병 두 명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스벨라 일병과 엔서니 일병이었다. 이들은 1951년 9월 철원전투에서 부대원들의 퇴로를 열어주기 위해 적과 맞서 싸우다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가 사망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명예훈장을 추서하면서 ‘태양이 질 때나 아침이 밝을 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니언의 시를 인용했던 것. 전쟁은 늘 있어왔다. 허나, 전사자의 명예나 전공을 늘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나이가 그것을 가로막고 세월이 기억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군인들이 명예스러운 것은 세월이 흘러도 국가나 사회가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글로스터 부대원들(위)과 당시 부대장이었던 칸 중령(아래). ©국가 보훈처

 

전쟁의 이슬로 사라진 파란 눈의 젊은이들, 바나온의 표현대로 살아남은 전우들은 늙었을지라도 그들은 늙지 않는다. 전쟁이 멈춰 세운 나이는 새봄의 초목처럼 늘 푸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빛은 지금도 적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그 멈춰버린 젊음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 땅에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4만 명의 적 앞에서 마지막 한 발의 방아쇠를 당겼던 젊은이들. 안타까움이 무색할 만큼 용맹을 떨쳤다. 엔드류 새먼의 마지막 한 발’은 그래서 탄생했다. ‘석양을 바라봤던 많은 병사들은 다음날 떠오르던 그 태양을 보지 못했다.’ 그랬다. 그때 그 밤의 장병들은 아침의 태양을 보지 못했다. 아니 영원히 볼 수 없었다. 

 

글로스터 부대원들의 전적비. 주변의 암석을 채석해 쌓은 다음 거기에 유엔기와 부대 상징기 그리고 전사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문인수

 

설마계곡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전적비가 있다. 이 전적비는 2008년 10월 1일 등록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됐다. 주변에서 채석한 돌을 쌓아올려 위에는 유엔기와 부대 표지를, 아래는 한글과 영문으로 당시 전투 상황을 기록한 비문(碑文)이다. 파주시는 이곳에 추모공원을 조성했다. 그리고 새로운 추념비도 세웠다.

 

사각형의 기단 위에 청동 베레모가 있고 그 뒤에 35m의 대리석 벽에 당시 전투에서 전사한 부대원의 이름과 주요 전투 장면을 조각했다. ©문인수

 

맨 앞에 5톤 청동주물로 만든 베레모 조각상이 있고, 그 뒤에 길이 35m의 추모 벽을 세웠다. 그 벽에 전사한 부대원의 이름과 전투 장면을 돋을새김으로 부각했다. 제단에는 빈연의‘Their name liveth forever more’란 시제를 새겨 넣었다. 추모비 오른 편 솔밭에는 완전 군장을 한 일곱 병사의 청동 조각상이 실물크기로 재현했다. 

 

당시 부대원들의 모습을 밀랍 인형으로 재현했다. 베레모에 완전군장차람의 일곱 병사가 사주경계를 하고 있다. ©문인수

 

Their name liveth forever more. 추모비 앞에 선 생존노병의 큰 외침이 안보불감증에 마비된 우리의 가슴을 쿵 하게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