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역사] 1983년 4월 22일 아기공룡 둘리 연재 시작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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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1983년 4월 22일 아기공룡 둘리 연재 시작

2017.04.21 · 심언준(전 미디어칸 대표) 작성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음음~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주제가만 들어도 초록색의 귀여운 <아기공룡 둘리>가 떠오른다. 아기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이미 아기가 아닌지는 꽤 됐다. 둘리의 생일은 1983년 4월 22일. 김수정 화백이 당시 큰 인기를 끌던 잡지 보물섬에 연재를 시작했다. 우리나이로 벌써 35세의 장년(?)인 셈이다.

심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으로 탄생

 

<아기공룡 둘리>는 초능력을 지닌 아기 공룡이 서울의 한 가정집에 살게 되면서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와 모험을 담은 만화다. 외계동물(깐따삐야별 왕자) 도우너, 천방지축 타조 또치, 둘리를 괴롭히는 고길동 아저씨, 옆집 사는 가수지망생 마이콜 등 조연 캐릭터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김 화백이 둘리를 만들게 된 것은 도덕교과서 같은 심의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심의기관에 트집 잡히지 않으려면 동물을 의인화한 캐릭터가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동물 가운데서도 아예 현실세계에 없는 공룡, 외계인 등을 등장시켰다. 둘리는 ‘둘째’라는 뜻에서 따왔다. 만화에는 둘리 형의 이름이 ‘하나’라고 나와 있다. 두리라는 흔한 표현보다는 좀 더 독특한 ‘둘리’로 지었다고 한다. 둘리는 원래 갈색이었다가 연재 당시 편집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초록색으로 바꿨다. 편집장의 선구안이 아니었다면 갈색인 둘리를 만나게 될 뻔한 셈이다.

 

아기인 희동이는 왜 고길동 아저씨 집에 맡겨 졌을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희동의 부모님이 고모부인 고길동의 집에 희동이를 맡긴 것으로 설정됐다. 연재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 김 화백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희동이 부모님의 공부가 끝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 지금쯤 박사학위를 따고 있을 것”이라고 재치 있게 답변했다. 현실세계에 없는 공룡을 주인공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심의에 걸렸다. 둘리가 어른인 고길동 아저씨를 “길동아”라고 불렀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한 시민단체에서는 ‘금서(禁書) 읽는 주간’에 “아이들 버릇을 나빠지게 한다”면서 아기공룡 둘리를 금서로 지정하기도 했다. <아기공룡 둘리>는 1983년 ‘보물섬’에 연재된 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1987년 TV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했다. 1994년 단행본 만화 전 10권이 완간됐고 1995년 영어교재 ‘둘리의 배낭여행’이 비디오로 출시됐다.

 

국내 애니메이션 성공 신화 일궈

1996년에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이 개봉됐다. 단관 개봉에도 불구하고 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애니메이션의 성공 신화를 이뤘다. 그해 한국영화 흥행부문 4위를 차지했다. 둘리는 국내 캐릭터 산업의 원조이기도 하다. 둘리 캐릭터는 문구류·의류·게임 영상물 등 70여개 업체에서 1500여종의 캐릭터 상품이 출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만화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독일·중국·인도네시아 등지에 수출되기도 했다.

 

만화도시를 표방하는 경기도 부천시는 둘리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둘리의 주민등록번호도 있다. ‘830422-1185600’인 둘리의 주소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위치한 부천시 원미구 상동이었다. 둘리는 집도 있다. 도봉구는 2007년 쌍문동 2-2를 주소로 둘리의 명예가족관계기록부를 발행했고 만화 속 고길동의 집이 있던 쌍문동에 ‘둘리 뮤지엄’도 개관했다. 2014년에는 쌍문역을 ‘쌍문(둘리)역’으로 변경하는 내용으로 서울시지명위원회에 상정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명에 역사적 인물도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이름이 들어간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그 대신 지하철 4호선 쌍문역은 지난해 12월 ‘둘리 테마역사’로 새 단장했다. 쌍문역 승강장에서부터 둘리와 친구들을 마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