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의 애정 편력]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의 세기적 사랑 ①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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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의 애정 편력] 에드워드 8세와 심프슨 부인의 세기적 사랑 ①

이혼녀를 사랑한 국왕의 세기적 사랑. 대영제국의 국왕 에드워드 8세의 방송은 전 세계 사람들이 경악시켰다.

 

결혼 이후, 매거진 표지를 장식한 두 사람.

 

국왕의 방송은 자신의 사랑은 일국의 국왕 자리와도 바꿀 수 없는 진실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국왕 자리를 내 놓겠다는 것이었다. 이 국왕의 방송은 또 수많은 세계의 여성들로 하여금 가눌 수 없는 감격으로 눈물 짖게 했다. 이 방송을 듣고 흘린 여인들의 눈물은 20세기를 사는 여성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감동의 눈물이었다. 심프슨 부인은 국왕으로 하여금 사랑을 위해 왕위와 함께 당시 국왕이 지배하던 세계 최대의 제국을 포기하게 했다. 이혼녀와 국왕과의 이 사랑 이야기는 20세기 최대의 화제가 되었으며 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감동의 사건이었다. 두 번이나 이혼하고 더군다나 40세에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었던 심프슨. 그녀는 과연 어떤 여인이었을까?

 

초혼의 실패

미세스 윌리스 심프슨(본명 윌리스 워필드)은 1896년 6월 18일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블류 리지 서미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여고를 졸업한 심프슨은 예술을 전공하기 위해 혼자서 뉴욕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새로운 지식을 닥치는 대로 흡수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유럽으로 건너가 예술의 본고장에서 예술에 흠뻑 젖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이러한 심프슨 앞에 스마트한 제복 차림의 매력 있는 미 해군대위 한 사람이 나타났다. 스펜스 대위였다. 스펜스 대위는 사나이답게 씩씩 하면서도 때로는 섬세한 친절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데이트 때마다 그가 함대를 타고 방문한 적이 있었던 유럽 각국의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때문에 심프슨양의 가슴 속에 스펜스 대위는 사랑의 존재로 떠올랐다. 두 사람의 사랑은 당연한 결과 였으며 1916년 드디어 결혼에 골인했다. 심프슨의 나이 20세 때였다.

심프슨은 스펜스 대위의 아내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성격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10년 째인 1926년 두 사람은 이혼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드라마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은 드라마 속 한 장면.

 

그리고 재혼

심프슨은 이혼녀가 되긴 했지만 음악과 미술에 대한 깊은 조예로부터 우러나오는 독특한 기품과 가정주부로서 10년간의 생활로 더욱 매력 있는 여성으로 무르익게 되었다. 미국 여성 특유의 밝은 성격에 유럽적인 품위가 깃든 심프슨에게 어느 날 열렬이 청혼을 해 온 남성이 있었다. 영국인 실업가 어네스트 심프슨이었다. 심프슨은 다시 사랑 앞에 무릎을 꿇은 채 1927년 어네스트와 결혼을 했다. 이혼한지 1년 만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심프슨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런던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매력에 넘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어네스트는 상류사회에서 열리는 파티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아내에게 던지는 선망의 눈길에 대해서 한없는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바야흐로 무명의 한 미국인 여인이 런던 사교계의 스타로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또한 세기의 연애가 탄생하는 운명적인 계기가 마련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운명적인 만남

 

심프슨 부인이 처음으로 영국 왕실의 윈저 공을 만난 것은 영국에 온지 3년 뒤인 1930년 늦은 가을의 어느 날 오후였다. 레스터셔의 작은 마을 멜턴 모브레이의 남편의 친구 집에서 열렸던 고급 파티장에서다. 여우 사냥에서 막 돌아온 30대 중반의 황태자는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지적이며 우아한 심프슨 부인에게 관심이 쏠렸다. 당시 35세의 황태자는 풍부한 지식과 미남의 독신으로 차밍 프린스(매력의 왕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황태자는 영국 내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유럽 각국의 모든 여성들로부터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었다. 시대는 1,2차 양 세계대전 사이의 평화로운 때였다.

처음 황태자를 만난 심프슨 부인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가슴은 온통 심한 고동으로 울렁이고 있었다. 황태자는 미국 출신의 아름다운 사교계 여인을 보고 첫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영국은 미국 보다 난방 시설이 잘 안 되어 있어 불편한 점이 많지요?”

 

심프슨 부인의 대답은 당돌하고 재치가 있었다.

 

“전하 그 말씀은 저를 실망 시켰습니다. 영국으로 오는 모든 미국 여성은 많은 영국신사들로부터 늘 그 질문을 받습니다. 전하께서는 좀 더 색다른 질문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영국 왕으로 재직 중일 때 에드워드 8세 모습.

 

결정의 시간

심프슨 부부를 초대했던 이 집의 주인 델마 파네스 부인은 미국 여성으로 영국인 자작의 부인이었다. 그리고 이날 파티 이후 심프슨 부인은 거의 매 주말마다 파네스 부인 집에 초대되었고 황태자와 파네스 부인 사이가 친구 이상일 정도로 친숙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두 여성은 같은 미국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갑자기 매우 가까워 졌으며 얼마 뒤에는 서로의 비밀까지도 털어 놓을 정도가 되었다. 그 결과 심프슨 부인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파네스 부인과 황태자가 연인 관계라는 것도 짐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34년 파네스 부인이 미국 여행을 위해 잠시 영국을 떠나게 되었는데 파네스 부인은 이때 황태자의 상대를 심프슨 부인에게 맡겼던 것이다. 황태자를 만난 지 4년 동안 파티에서만 사귀어 오다 처음으로 두 사람만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 기회는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때 윈저 공은 심프슨 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불꽃같은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파네스 부인이 집을 비운 사이 심프슨 부인은 친구의 부탁에 따라 정성을 다해 황태자의 말동무를 하면서 뒷바라지를 했다. 두 사람만이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황태자가 심프슨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궁전 안의 황태자의 거실에서, 또 남 몰래 드나드는 런던 시내의 클럽 그리고 찻집 등에서 은밀한 시간을 즐겼다. 4개월이 지난 뒤 파네스 부인이 영국으로 되돌아 왔을 때 황태자와 심프슨 부인은 이미 결정적인 사이가 되어 있었다. 파네스 부인이 두 사람에게 한 말은 오직 한 마디 뿐.

 

 “행복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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