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화의 거목 장리석 화백, 백수에도 해녀를 그리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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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화의 거목 장리석 화백, 백수에도 해녀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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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리석 화백은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우리나라의 현대 구상미술을 개척한 거목이다. ⓒ문인수

장리석 화백은 백수에도 그림을 그린다. 그는 1916년 4월 8일생, 올해로 백수(白壽)를 맞았다. 지난 5월 25일에는 가족과 지인들이 마련해준 백수연에서 축수(祝壽)를 받았다. 지금도 그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규칙적으로 요가를 한다. 특히 나눔을 실천하고 누구나 만나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장수 비결이 뭐 있나? 욕심 없이 사는 게지.” 대추빛 같은 그의 얼굴에 파안(破顔)이 돈다.

그는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우리나라의 현대 구상미술을 개척한 거목이다. 이중섭, 박수근 화백은 이미 고인이 됐지만 장 화백은 지금도 틈틈이 붓을 든다. 필자가 그의 화실을 방문한 것은 지난 8월 22일. 그날도 삼각대 앞에 앉아 해녀의 물안경에 붓질을 하고 있었다. 노화백의 붓끝이 움직일 때마다 제주 해녀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 심장의 박동처럼 되살아난다.

“색깔, 구상 정말 좋았어요.” 마침 장 화백의 붓놀림을 지켜보던 다니엘 스므칼라(미국 다큐멘터리 작가)의 말이다. 귀가 좀 어두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도 붓끝은 여전히 살아있다. “해녀 그리려면 동그라미를 먼저 착 그린 후에 어깨를 착착 그리면서 발딱 그려버려요.” 화필 작업을 거들던 부인 서정선(61세) 씨의 말이다.

장 화백은 평양이 고향이다. 6․25전쟁이 터지자 해군에 입대해 정훈부에서 선무 포스터를 그렸다. 그후 제주로 배치된 것이 제주 해녀와의 인연이다. “해녀에 미쳤었지. 자맥질 하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해녀 때문에 5년이나 제주에 머물렀지.”

 

이중섭 화백과는 동시대에 태어난 막역지우

그는 평생 1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대상은 해녀, 노인, 풍경이 중심인데 주로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그 가운데 800여 점이 해녀 그림이다. ‘해조음’ ‘바다의 역군’ 등은 물질 전후의 해녀들의 삶을 포착한 그림이다. “난 ‘해조음’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뛰어.” 그는 1958년 국전에서 ‘그늘의 노인’으로 대통령상을 받았지만, 함께 출품했던 ‘해조음(제주 해녀 소재의 그림)’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점을 아쉬워한다.

장 화백은 1916년생으로 고(故) 박수근 화백보다는 두 살 아래고, 고(故) 이중섭 화백과는 동갑이다. 이들은 동시대에 태어난 막역지우였다. 특히 장 화백과 이중섭 화백은 6․25전쟁 때 제주에서의 함께 피난생활을 했다. 그는 서울로 올라온 후 중앙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그는 지난 2005년 제주를 소재로 그린 그림 120여 점과 화구를 제주도에 기증했다. 제주도는 제주도립미술관에 장리석관을 마련해 전시하고 있다. 장 화백은 또 한국미술협회에 ‘장리석 미술상’을 마련해 지난 2012년부터 해마다 2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오늘도 삼각대 앞에서 해녀의 얼굴에 붓 단장을 하고 있다. 백수에도 화필을 휘젓는 그의 정력인생이야말로 100세 시대의 장수 노인들에게 마지막 인생단장법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해 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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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5일 장 화백은 가족과 지인들이 마련해준 백수연에서 축수(祝壽)를 받았다. ⓒ문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