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주는 즐거움 ② 배우는 즐거움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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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주는 즐거움 ② 배우는 즐거움

2017.05.16 · HEYDAY 작성

흔히 배움에는 때가 있다고 하지만 절반만 맞는 말이다. 어려서 맹목적으로 학습하고 배우던 때는 즐거움을 놓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배우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는 중년의 배움은 즐거움의 크기와 종류가 다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이었던 앨런 러스브리저가 다시 피아노를 배우면서 매일을 기록한 <다시, 피아노>(PHONO)에서 그가 말하는 ‘나이 먹고 배우는 즐거움’에 대한 가상 인터뷰.

 


다시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어떤 기분이었나?
피아노를 여덟 살 무렵 배우기 시작해서 열여덟 살 때까지 배웠다. 장난삼아 만지작거리는 수준이었다. ‘1만 시간의 법칙’에 비춰보면 목표치에 최소한 8,000시간 정도가 미달인 셈이다. 그때는 음표를 올바로 해독한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다. 마흔이 넘어서 적당한 난이도의 전주곡 한 곡을 어느 피아노 선생님께 배우면서 깨달았다. 등산에 비유하자면, 험산을 올라본 경험이 전무한 중년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마터호른을 정복하겠다고 덤비는 꼴이었다.

 

마흔 살에 피아노를 다시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내 창조적 유전자 안의 무엇인가가 꿈틀대고 있었달까. 우리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사회적’ 성공을 경험한다. 아이도 낳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을 획득하며, 어쩌면 명망을 얻기도 하고 각자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그럭저럭 명성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자신이 가진 개성을 억눌러야만 사회생활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다. 나 또한 40대 중반이라는 ‘인생의 오후’에 접어들면서 창조적인 자기표현, 정신과학자 칼 융의 표현대로라면 ‘문화’를 위해 내 인생의 작은 부분을 별도로 떼어 내 할애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피아노 레슨을 받기로 했는데 형식을 갖춰서 뭔가 배운 것이 20대 초반 이후로 처음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에 현대인은 너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유명 소설가, 언론인이자 정부 관리였던 아널드 베넷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사는 방법>이라는 짧은 책을 펴냈다. 1910년의 일이다. 책에서 그는 샐러리맨들에게 일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샐러리맨들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인 직업 외에 뭔가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불만족에 시달린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그는 “우리에게 시간이 추가로 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필요한 시간이 모두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취미에 열정을 쏟으며 지내다 보면 “한 주의 시간 흐름이 빨라지고, 삶에 열의가 더해지며, 당신의 직업이 아무리 시시하다 할지라도 거기에 흥미가 붙는 게 느껴질 것”이라고 호언했다. 출근 전 20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낸 날은 뇌의 화학반응이 달라진 것만 같은 강력한 느낌을 받곤 했다.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치 내 뇌가 ‘안정’된 것처럼 느껴졌고 앞으로 열두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모두 대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아노를 배우는 것은 연주 기술을 익히는 것 외에도 악보를 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펀지처럼 배우는 족족 모든 걸 빨아들이는 나이대가 물론 있다. 한창때 배운 것들은 언제고 아주 쉽게 열어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존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이 연주 레퍼토리를 집중적으로 배우는 시기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시절에 걸쳐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은 실내악 소모임을 마치고 나서 깨달은 게 있다. 연주 기술이라는 면에서는 열여덟 살 때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나았을 테지만 음악을 ‘느끼는’ 면에서는 지금이 훨씬 낫다는 실감이었다. 이제는 음악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거기에 형태를 부여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열여덟 살 때는 음악이 나를 주물렀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었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지금은 나 자신의 연주를 주의 깊게 듣는 습관을 익혔고, 음악의 흐름에 대한 이해 수준도 훨씬 나아졌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어렵다는 쇼팽의 발라드 1번으로 연주회를 했다.
16개월 동안 시간을 쥐어짜 내서 연습을 하고 레슨을 받은 결과로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피아노 레퍼토리를 익혔고, 전문 피아니스트 세 명의 견해에 따르자면 그럴듯한 연주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연주회를 끝내고 나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시간은 충분한가’와 ‘너무 늦은 건 아닐까’에 대한 답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먼저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시간은 있다’이다. 아무리 정신없이 바쁜 삶이라도 시간은 있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시간이야 여기서 10분, 저기서 10분 하는 식으로 야금야금 모으면 그만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을 냄으로써 삶의 질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업무 압박과 스트레스가 가장 심하던 바로 그때,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무엇인가에 100% 전념함으로써 삶이 균형을 되찾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여름만 하더라도 쉰여섯 먹은 두뇌에 새로운 요령을 집어넣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주로 전화번호를 제외하고는 뭔가를 기억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쏟아부은 게 수십 년은 지난 것 같았다. 중년에 접어든 지도 한참인 두뇌가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신경 회로를 전면 가동해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일 유연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기분이 무척 삼삼했다. 그러니까, 너무 늦지 않았다는 말이다

 

 

기획 박미순 사진 이대원, 이근수(스튜디오 텐), 셔터스톡


*이 기사는 <헤이데이> 5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