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을 걷는다] 3대 손바느질 양복점 황의설, 황상연 부자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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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걷는다] 3대 손바느질 양복점 황의설, 황상연 부자

2017.05.17 · HEYDAY 작성

인생의 수많은 갈래 앞에서 결국 부모와 같은 길을 선택한 자녀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경험과 지혜를 흡수한 그들은 그 바탕에 자신의 감각과 재능을 덧입혀 새로운 가치를 일구고 있었습니다.


“양복장이의 자질을 물려주셨죠” 
황의설·황상연 부자

 


종묘의 ‘3대 손바느질 양복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양복 잘 짓는 집’이다. 10평 남짓한 가게에서 한 달 평균 250벌가량의 양복이 ‘손바느질’로 만들어지는데 찾아오는 손님의 연령대도 20대에서 70~80대까지 다양하다. 웬만한 가게는 1년 버티기도 어렵다는 동대문 바닥에서 벌써 23년간 자리를 지켜온 황상연 사장은 처음 가게를 물려받은 1995년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당시 맞춤 양복 시장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건물주가 건물을 다시 짓겠다며 가게를 옮겨달라는 바람에 아버지가 장사를 접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게 되셨죠. 다른 건물로 옮기자면 보증금이 1억 5천만원이나 더 비쌌거든요. 저와 동생을 불러다 가게를 물려받을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보셨는데 질색하던 동생과 달리 제가 선뜻 그러겠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며 양복점은 절대로 하지 말라셨지만 전 왠지 승산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경영학과 학생으로 디자인의 ‘디’자로 몰랐다던 황상연 사장은 당장 ‘노라노 패션 학원’에 등록해 낮에는 학교 수업을, 밤에는 학원 수업을 듣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만에 기술을 익힌 그는 본격적인 ‘사장 노릇’을 시작한다.“누가 봐도 가게 성격을 알 수 있게 간판을 티파니에서 ‘3대 손바느질 양복점’으로 바꿨어요. 그 뒤 어떻게 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까 연구했죠. 1년 치 원단을 한꺼번에 구입해 비용을 떨어뜨렸고, 기술자들을 설득해 공임을 낮춘 덕분에 기성복보다 싼 ‘손바느질 맞춤 양복’을 내놓을 수 있었어요.” 경쟁력 확보에 성공한 그는 파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한다. 졸업생을 겨냥해 대학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손바느질 양복의 장점을 설명하는가 하면 아파트를 돌며 ‘젊은 사장이 미쳤어요’라는 문구가 적힌 홍보 전단지를 돌렸다. ‘파격 세일’이라고 적은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는데 공격적인 홍보 방식을 언짢아한 아버지와 적잖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여기에 협회 차원의 경고가 이어지면서 한때 마음고생도 만만찮게 했지만, IMF를 계기로 이른바 ‘가성비’ 바람이 불면서 가게에 손님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5벌 맞추면 1벌 공짜’ ‘신랑 양복 구매 시 값비싼 턱시도 무료 대여’ ‘기술자 선택제(경력과 사진을 공개해 고객이 원하는 기술자를 고르는 방식)’ 등의 파격 서비스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점차 입지를 굳혔고 이제는 그야말로 3대가 함께 찾는 명품 양복점으로 우뚝 섰다.

물려준 지 1년 만에 빚으로 마련한 가게 보증금을 갚았을 만큼 대단한 수완을 발휘한 아들에 대해 아버지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늘 기특하죠. 이 일이 참 어렵거든요.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퇴짜를 놓는 손님도 있고, 기술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며 일하기도 만만찮죠. 그런데 저놈이 그걸 잘해내고 있다고. 될까 싶던 가게를 이만큼 살려놨으니 인정할 수밖에(웃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은 아버지는 언제나 행동으로 은근히 자신을 가르쳤다며 웃는다. “저와 동생은 중학생 때부터 양복점 알바에 동원됐어요. 훗날 듣게 된 진실(?)이지만 아버지께서 은연중에 가업을 물려주겠다는 계산을 하고 계셨더라고요. 아버지가 내년이면 연세가 80인데 요즘도 일요일 하루만 딱 쉬세요. 늘 부지런히 옷을 재단하고 만들던 모습에서 성실을 배웠죠. 저도 제 아들에게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치는 아버지가 될 겁니다.”

 

기획 장혜정 사진 박충열(스튜디오 텐)

*이 기사는 <헤이데이> 5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