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의 애정 편력] 사랑과 정복의 황제, 나폴레옹 ①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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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의 애정 편력] 사랑과 정복의 황제, 나폴레옹 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는 사랑과 정복의 황제였다.

 

프랑스 사람이 아닌 이탈리아인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불과 35세였다. 유럽 각지의 전선에서 얻은 그의 승리의 개가는 그를 불세출의 군사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때가 나폴레옹 생애의 정점을 이루었다, 나폴레옹은 파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한 뒤 프랑스 육군 포병 소위 임관되었다. 그는 프랑스 제1공화국에서 눈에 띄게 지위가 올랐고 제 1,2차 유럽 연합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1799년 30세 때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후 제1통령에 취임하였다. 5년 뒤에 프랑스 원로원이 그를 황제 자리에 앉혔다. 당시 국민 투표는 찬성 3,572,329표, 반대 2,569표였다. 나포레옹은 1804년 12월 2일 즉위식을 가졌고 프랑스 제국의 초대 황제인 나폴레옹 1세가 되었다. 이로부터 19세기의 첫 10년 동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제국은 유럽의 지배적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황제였지만 프랑스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 까지 정확한 프랑스어 발음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고향 코르시카 섬은 그가 태어나기 1년 전 이탈리아 제노바 왕국령에서 프랑스령으로 넘어 갔기 때문에 그는 덩달이 프랑스 인이 된 것이다. 나폴레옹은 1769년 8월 15일 지중해 서쪽의 작은 섬 코르시카 섬에서 8명의 자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나폴레옹의 아버지 카를로 부오나파르테는 변호사이며 귀족회의 의원이었다. 어머니는 14살에 결혼하여 15살부터 애기를 낳았다. 그러나 애기들은 1살도 못돼 죽었다. 어머니는 모두 7남 6녀를 낳았는데 그중 2남 3녀는 2살도 안 돼 일찍 죽고 나폴레옹을 비롯한 8명만 어른으로 자랐다.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_Gros)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807).

 

기회를 노려라

어린 시절 나폴레옹은 침착했으며 하루 종일 독서에 심취했다. 특히 플루타르코스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즐겨 읽었다. 1779년 10세 때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브리엔느 육군유년학교를 졸업하고 1784년에 15세 때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만은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전체 졸업 시험 성적은 58명 중 42위였다. 나폴레옹의 어린 시절의 꿈은 코르시카를 프랑스에서 독립 시켜 코르시카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프랑스의 통치자가 되는 것으로 꿈이 커졌다. 육사를 졸업하고 포병 대위가 되었을 때 프랑스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내적으로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의 부르봉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제가 들어섰으며 이로 인해 군웅활거식 난세가 계속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의 불꽃이 자기 나라에 파급될 것이 두려워 프랑스 공화국을 타도하려는 주변 군주국들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기회를 적절히 이용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당초 나폴레옹은 포병 장교로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은 평범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영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명성을 얻은 그는 갑자기 각광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는 장군에 까지 임명이 되었다. 30세도 안된 나이였다. 이어서 1795년에 파리로 되돌아온 그는 가혹하리 만큼 엄격한 폭도 진압으로 새 프랑스 공화국에 크게 기여를 했다. 이 공로로 그는 또 이탈리아 전선의 프랑스군 사령관이 되었다. 이어서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전쟁에서 보인 두드러진 승리는 그를 당장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폴레옹의 여인, 조세핀.

쿠데타로 정권 장악

이런 분위기를 이용하여 그는 정부를 배반하게 된다. 즉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온 뒤 인 1799년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불세출의 군사적 영웅이 됐다. 그 때 나폴레옹의 나이 30세였다.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최고 특권을 이용하여 군부를 중심으로 한 독재체제를 만들어 갔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차례차례로 그의 발 아래로 항복하였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10년을 넘기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선 유럽에서 영국 상품을 추방한 대륙 봉쇄령이 스페인의 반감으로 어려운 상황이 되었으며 다른 나라들도 이에 동조 하면서 나폴레옹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다가 전쟁에서 조차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으며 이듬해인 1813년의 라이프치히에서의 치명적인 패전으로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를 내 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듬해 엘바섬으로 유배되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왕관을 써 보려는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지는 듯 했다. 유배 당한지 1년 뒤인 1815년 3월 20일 나폴레옹은 파리로 진입해 다시 제정 부흥에 나서 성공을 거두었다. 제2의 나폴레옹 시대가 열리는가 했으나 그러나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즉 곧 있었던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게 되자 6월 29일 다시 퇴위를 당해 나폴레옹의 영광은 겨우 ‘백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좌절된 첫 사랑

나폴레옹의 애정 생활도 황제의 영광만큼이나 굴곡이 많았고 화려했다. 나폴레옹은 평생 2명의 여성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 물론 이것은 공식적인 수치다. 따라서 나폴레옹이 애인으로 알려진 여인은 수 십 명이나 된다. 나폴레옹은 그만큼 대단한 바람둥이였다. 나폴레옹이 동정을 잃은 것은 18세 때로 사관학교 재학 중이었다. 그 뒤부터 그는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창녀촌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창녀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나올 때는 오히려 창녀들에게 돈을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1795년 26세 때 그는 무턱대고 결혼을 하고 싶었다. 결혼 하고픈 상대는 있었다.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아가씨는 스웨덴 왕가의 클라라라는 처녀였다. 그런데 클라라는 바로 나폴레옹 형수의 동생이었다. 나폴레옹은 형수의 힘을 믿고 형수가 두 사람의 사이를 잘 맺어 주리라 생각 했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나폴레옹으로서는 처음으로 맛보는 사랑의 좌절이었다. 나폴레옹이 사랑했던 클라라는 뛰어난 미모에 똑똑한 아가씨였는데 그녀는 뒷날 스웨덴의 여왕이 되었다.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다

첫사랑에 실패한 이후 나폴레옹의 사랑은 연상의 여성에게로 옮겨갔다. 그가 왜 연상의 여인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가 사랑했던 연상의 여인은 5명이나 되었는데 그 가운데 2명은 단순히 연상의 여인이라기보다 누나나 어머니만큼 나이 차이가 많았다. 문제의 두 여인은 60세의 몽탕시엘과 40세의 페르몽 부인이었다. 60세의 몽탕시엘은 미혼이었고 페르몽 부인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 그러나 나포레옹과 이 두 여인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연상의 두 여인이 나폴레옹의 구애에 기겁을 했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든 적당한 아내감을 찾고 있던 그의 앞에 드디어 한 여인이 나타났다. 바로 조세핀 드 보아르네였다. 조세핀은 그 당시 나폴레옹이 사귀던 다른 여자들처럼 나폴레옹 보다 연상이었다. 거기다가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는 낭비벽이 심한 여인이었다. 또 나포레옹과 사귈 당시 이미 폴 발란스란 공작의 애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세핀을 나폴레옹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로 그녀의 정부 폴 발란스 공작이었다.

발란스 공작은 조세핀을 지긋지긋하게 여겨 그녀를 떼어 버리려고 벼르고 있던 참에 나폴레옹이 나타났던 것이다. 공작은 얼씨구나 하고 그녀를 나폴레옹에게 소개 했던 것이다. 발란스 공작은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천상배필로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추기며 결혼 할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이 종용에 따라 나폴레옹은 조세핀을 아내로 맞아 드리며 정식 결혼식을 치렀다. 나폴레옹이 28세였고 조세핀은 32세였다.

 

결혼 당시 나폴레옹은 28세였고 조세핀은 32세였다.

 

연상의 조세핀과 결혼

그런데 두 사람의 결혼 첫날밤에 뜻밖의 헤프닝이 빚어져 큰 소동이 일어났다. 신랑 신부가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조세핀이 키우고 있던 애견 한 마리가 침대로 뛰어 올라 나폴레옹의 허벅지를 물었던 것이다. 당연히 신랑은 기겁을 해서 비명을 지르면서 조세핀의 가슴에서 떨어져 나왔다. 조세핀의 애견은 주인이 습격을 당하고 있는 줄 알고 나폴레옹에게 덤벼들었던 것이다. 달콤한 신혼의 이틀 밤을 보내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임지인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런데 뒤에 남은 새 신부 조세핀에게 문제가 생겼다. 조세핀은 좀처럼 혼자 잘 수 없는 음란한 여성이었다. 지금까지 온갖 남성들을 체험 하면서 육체의 쾌감이 어떤 것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32세의 농익은 육체를 갖고 있는 여인이었다. 조세핀은 남편이 없는 사이에 옛날의 애인들을 만나 마음 놓고 육체의 향연에 빠졌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의 부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눈 감고 모르는 척 할 수밖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