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볼까 부끄러운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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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볼까 부끄러운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 입구
하얼빈역사 내 안중근의사기념관 입구. 헌화 꽃다발 하나 없이 쓸쓸하다. ⓒ황인환

조국은 광복 70주년으로 축제인데도 해외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은 찾아주는 이 없이 쓸쓸하게 광복 70주년을 맞고 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불과 2시간 10분 거리의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도 정부기관이나 광복 단체, 심지어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등 어느 누구도 찾지 않아 외로운 경축일을 맞고 있었다.

광복절인데도 기념관 정문에는 꽃다발 하나 놓여있지 않은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의 무관심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게 했다. 그러나 다행히 광복절 아침 ‘한국교육경제문화사절단’ 일행 40명이 찾아와 우리 국민의 부끄러운 초상을 가려주었다. 그들이 찾지 않았다면 아마 안중근의사기념관은 광복절 하루 종일 텅 빈 채였으리라.

‘한국교육경제문화사절단’은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고언회(高言會) 회원들과 (사)국제친선문화협회 회원들이 흑룡강성을 방문하기 위해 조직한 민간사절단(단장 문상주 비타에듀그룹 회장)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먼저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해 기념식을 갖고, 흑룡강성 정부의 안내로 그곳의 교육과 문화, 산업 시설을 시찰하기 위해 2015년 8월 14~16일 2박 3일의 일정으로 중국 하얼빈을 방문했다.

사절단은 이수성 전 국무총리(초대 안중근기념사업회 회장),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 최상용 전 주일대사, 이규석 전 교육과학부 차관보, 그리고 40여 명의 교육·경제 관련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8월 15일 오전 10시 기념식을 갖기 위해 하얼빈역사에 마련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았다.

안중근 의사 근영. ⓒ황인환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이토 히로부미 격살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제국주의 일본의 우두머리이자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당시 추밀원 의장)를 하얼빈역에서 격살함으로써 전 세계 제국주의 사조에 찬물을 끼얹었었다.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일제히 일본 침략에 대한 항쟁에 불이 붙었고, 세계 반파쇼 세력에게도 한 가닥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 잃은 한국인의 민족 자긍심을 세계만방에 알린 점이다.

대동아공영의 꿈에 부푼 일본 제국주의의 야망도 이 의거로 우두머리를 잃고 한풀 꺾이게 된다. 그만큼 안 의사의 거사는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그런 현장이 100년이 넘게 방치돼 있었다. 한국도 중국도 방치했었다.

안중근 의사 조사
안중근 의사가 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황인환

거사에 비해 초라한 규모의 안중근의사기념관

하얼빈역 안중근의사기념관은 2013년 한·중 정상회담 때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 의사가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에 기념비라도 세우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시 주석이 하얼빈역 귀빈실을 개조해 기념관까지 지어준 것이다. 2014년 1월 19일의 일이다.

시진핑 주석은 기념관 한쪽 벽면을 통유리로 처리해 그곳에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를 직접 내려다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기념관이 설립되기 전까지는 안 의사의 의거 장소였던 하얼빈역 안 플랫폼 바닥에 안 의사가 총을 쏜 장소와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장소를 표시한 화살표만 있었다. 그러므로 저격 장소를 보려면 역 개찰구를 통해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타지도 않을 기차표를 사야 하는 등 불편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200㎡(70평 남짓) 규모로 하얼빈역의 귀빈실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기념관 안에는 안 의사의 동상이 세워졌고, 안 의사의 생애와 의거 과정 그리고 뤼순 감옥의 수감생활 등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사진 자료와 유묵, 기타 사료 등이 한·중 양국어로 된 설명과 함께 전시돼 있다. 기념관이 비좁아 관람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조악하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입장료가 무료다. 기념관 건립비용은 중국 하얼빈시와 철도국이 공동으로 부담했다고 하며, 관리는 하얼빈시가 맡았다. 건립 당시 한국 외교부는 안 의사 의거 현장에 기념관이 섰다는 것에만 큰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방문해보니 기념관의 규모나 전시 내용 등은 안 의사의 거사에 비춰 너무 초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방문자는 낯이 뜨거웠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으로부터 안 의사의 거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황인환

기념관 모금 단체, 모금액 행방도 몰라

지난 날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기념하는 기념관을 건립한다면서 국내외에서 많은 단체들이 언론을 통해 수십억원씩 국민 모금을 했었다. 그 취지에 공감해 많은 국민이 참여했었다. 그런데 그들이 모은 모금액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왜 정작 기념관 조성에는 한 푼도 보태지 않았을까? 할 수만 있다면 모두 회수해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관리비로라도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얼빈 현장과는 별개로 한국 정부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서울 남산에 지었다. 1970년 10월 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남산의 일제 조선신궁 자리인 남산 회현동 자락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해 개관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기념관이 노후하고 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사)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국가보훈처에서 현재의 위치인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471-2번지에 2010년 10월 26일 새 기념관을 개관했다. 그 덕택으로 국내에서는 안중근 의사 숭모사업이 하얼빈과는 달리 규모 있게 수행되고 있다고 한다.

안중근의사기념관 남산
남산에 새로 마련된 안중근의사기념관. ⓒ황인환

해외의 애국선열 잊지 않고 기려야

비단 하얼빈의 안중근의사기념관만의 일은 아닐 것 같다. 연해주 아무르강 변의 이상설 옹 기념비도 마찬가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 기념비도 그 많은 독립운동 투쟁사에 비춰 너무 초라하다. 그 밖에도 해외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 유적들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그 유적들을 찾아내어 리스트 업하고, 그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때가 되면 꽃다발이라도 바치면서 관리하는 것도 광복절 70주년을 맞아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인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의 애국선열들이 더 이상 낯선 타향에서 고혼(孤魂)이 되어 유랑하는 일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도 국가가 해야 할 일 같다. 국가가 아니면 우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국내 잔치에만 몰두하지 말고 세계 각지의 광복 사각지대까지 찾아내서 한 곳 한 곳 관리하는 것도 성숙한 대한민국, 선진화된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방문단은 공감했다.

※ 이 글은 방문단 이규석 전 교육과학부차관보의 도움으로 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