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이야기] 이병철은 왜 졸업장이 없을까?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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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 이야기] 이병철은 왜 졸업장이 없을까?

이병철 전 회장의 삼성물산 사장 시절 모습. ⓒ연합뉴스

이병철, “내 인생은 중퇴 인생

초등학교, 보통학교, 중학교, 대학교 모두 중퇴

 

1929년 10월, 호암 이병철은 부산항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를 탔다. 그의 나이 19세 때였다. 아내 박두을이 첫째 딸 이인희를 출산하기 얼마 전이었다. 부친 이찬우는 이병철의 일본행을 반대했다. 임신한 아내가 있었고 이병철이 막내여서인지 왠지 미덥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본으로 가는 3,000톤급 부관연락선에서 이병철은 훗날 초대 문교부장관이 되는 안호상 박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조선인은 1등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일본 형사의 말을 듣고 나라 잃은 슬픔을 절감하며 울분을 가슴에 묻었다.

시모노세키에 내려 안호상과 헤어진 이병철은 낯선 일본에서 와세다대학 3학년에 다니고 있던 청년 이순근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병철의 고향(경남 의령)과 멀지 않은 경남 함안 출신이었던 이순근은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 있던 학생운동가였다. 이순근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병철은 그가 사는 와세다대학 근처에 셋방을 얻어 생활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부잣집 아들과 학생운동가의 인연은 의외로 길게 이어졌다. 당시는 사회주의 사상이 거센 밀물처럼 사회를 강타할 때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책을 안 읽으면 대학생 행세를 하기도 힘든 시기였다. 톨스토이의 소설을 즐겨 읽는 등 감수성이 예민했던 이병철도 그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데모대 동참해 이틀간 유치장 신세 지기도

1930년 이병철은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는데 당시 와세다대학 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회가 열렸다.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반대하는 흐름이 거셌다. 이순근은 때때로 이병철에게 사회주의 운동에 동참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병철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 시기 특기한 일은 이병철이 데모대를 따라 나섰다가 경찰에 붙잡혀 이틀간 유치장 신세를 졌다는 점이다.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이병철은 “사상운동에 적극 투신할 용기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다지 적극적인 의사는 없었다고 대답하는 편이 정직할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사상운동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이순근과의 우정을 이어간 이병철은 훗날 삼성상회를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

1932년 이병철은 와세다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이유에 대해 맏아들 이맹희는 <묻어둔 이야기>에서 “(와세다대 유학 시절) 다른 아이들이 수학은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고 아버지가 말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마 사회주의 물결이 휩쓰는 등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유학생활이 재미도 없고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온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병철은 지수보통학교, 서울의 수송보통학교와 중동중학교, 와세다대학교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졸업한 학교가 없다. 다 중퇴했다. 스스로도 ‘중퇴인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졸업장이 없는, 이병철. 요즘 말로 내세울 스펙이 없는 그는 그러나 훗날 한국 제일의 부자가 됐다. 포기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