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이야기] 두 번의 실패 통해 큰 부자로 거듭난 이병철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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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 이야기] 두 번의 실패 통해 큰 부자로 거듭난 이병철

이병철, 두 번의 실패에서 부자의 길을 깨닫다

“시기, 사람, 자금 3박자가 갖춰지지 않으면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평범한 진리이지만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은 없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이 부를 일구기까지의 과정 또한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도 두 번의 큰 실패를 겪었다. 실패 이후에 비로소 그는 큰 부자가 되는 길을 깨닫게 됐다.

부친으로부터 300석쯤의 재산을 받은 이병철이 벌인 첫 사업은 ‘쌀’과 관련된 것이었다. 집안과 친분이 있던 정현용, 박정원과 각각 1만원씩을 내 북마산에 ‘협동정미소’를 차린 것이다. 1936년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이 쌀가게를 운영하면서 부를 쌓기 시작한 장면과 닮았다. 이병철은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시세가 자꾸 올라갈 때는 팔고 반대로 내려갈 때는 샀다”고 썼다. 정미소 운영을 통해 이병철은 돈을 많이 벌었다.

정미소에 이어 이병철이 손을 댄 것은 일본인이 운영하던 ‘마산일출자동차회사’였다. 10대의 차를 보유하고 있던 이 회사를 인수한 뒤 새로 10대의 차를 사 20대의 트럭을 굴렸다. 당시 자동차 한 대 값은 요즘의 비행기 한 대 값과 맞먹었다. 들어오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 이병철은 이때부터 요정 출입을 시작했다.

 

이병철,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춰야 한다!

이병철이 세 번째로 손을 댄 것은 토지였다. 식산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이병철의 결심은 김해평야의 경작이 가능한 전답은 한 평도 남기지 않고 사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이병철은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연 1만 섬을 수확하는 200만 평 땅의 주인이 됐다. 20대 후반 나이에 경남 최대 지주가 된 것이다.

그러나 부산, 대구의 주택용지 땅까지 사들이던 1937년 이병철에게 은행에서 한 통의 통지가 날아왔다. ‘앞으로는 모든 융자를 중단한다.’ 일본 정부가 모든 은행의 자금을 동결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해 7월 발생한 중일전쟁 때문이었다.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토지에 투자한 이병철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땅값마저 폭락하기 시작했다. 선택의 길이 없었다. 이병철은 시가보다 싸게 땅을 팔고, 정미소와 운수 회사도 팔아 부채를 청산했다. 그러고 나니 수중에 전답 10만 평과 돈 2만원이 남았다. 공동출자자인 정현용과 청산하고 나니 무일푼이 되었다.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춰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사업 실패를 통해 이병철이 얻은 교훈이었다.

무일푼이 된 뒤 평양, 원산, 신의주 등을 거쳐 중국의 북경, 청도, 상해 등을 둘러본 이병철은 1938년 3월 1일나이 28세 때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 ‘삼성상회’를 열었다. ‘三’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을 뜻하는 의미에서, ‘星’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뜻하는 의미에서 이병철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 대구 일대에서 생산되는 청과물과 포항 일대 건어물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는 사업이었다. 자금에 여유가 생기자 이병철은 조선양조를 사들여 양조업을 시작했다. 1947년 5월 서울로 진출한 이병철은 1948년 11월 종로2가에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다. 업종은 무역업이었다. 설립 1년 만에 국내 7위 무역회사로 급성장했다.

1986년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희수연 및 호암자전 출판기념회에서 이 회장 내외가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순경(順境)은 벗을 만들고, 역경(逆境)은 벗을 시험한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와중인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은 또 다시 이병철을 코너로 몰았다. 이병철의 두 번째 실패였다. 삼성물산공사는 ‘無’가 되었다. 인천과 용산의 보세 창고에 보관 중이던 수입상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4 후퇴를 앞둔 1950년 12월 초순, 이병철은 삼성물산공사를 포함한 전 재산을 처분하여 가까스로 트럭 한 대를 구해 사흘 걸려 대구로 내려갔다. 이병철은 그곳에서 자신이 서울로 떠날 때 양조장 관리를 맡겼던 직원들로부터 “3억원을 모아 놓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순경(順境)은 벗을 만들고, 역경(逆境)은 벗을 시험한다는 말을 새삼 되씹게 되었다”고 썼다. 임시수도 부산으로 간 이병철은 1951년 1월10일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오늘날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태동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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