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역사] 1992년 8월 9일 황영조 올림픽 마라톤 우승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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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1992년 8월 9일 황영조 올림픽 마라톤 우승

2017.08.07 · 심언준(전 미디어칸 대표) 작성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여행 가는 한국인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가 남서부에 위치한 몬주익 올림픽경기장이다. 경기장 건너편에 마라토너 황영조 씨의 동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왼쪽)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몬주익 올림픽 주경기장. (오른쪽) 주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한 황영조 동상.

마지막에 일본 선수 따돌리고 우승

2001년 경기도와 손잡고 세워진 이 동상은 바르셀로나의 한국 관광객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지막 날. 경기는 남자 마라톤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황영조, 김완기, 김재룡 등이 출전했지만 우승권으로 꼽히는 세계적인 선수들과는 기록 차이가 있었다. 황영조의 경우 2시간 8분 47초가 최고 기록이었지만 세계 수준의 선수들은 2시간 6분대 기록을 갖고 있었다.

이날 마라톤의 최대 변수는 더운 날씨와 40km 지점에 위치한 문주익 언덕이었다. 이날 바르셀로나는 섭씨 28도에 풍속 4m로 레이스 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또한 몬주익 언덕은 마라톤 주자들의 마지막 고비로, ‘죽음의 언덕’이라 불릴 정도였다.

드디어 출발. 황영조는 73개국 112명이 참가한 이날 경기에서 초반부터 선두그룹에 끼어 차분한 레이스를 펼쳤다. 20km 지점부터는 선두로 나서면서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 등과 치열한 선두 싸움을 벌였다.

몬주익 언덕에서 바짝 뒤를 따르던 모리시타가 거친 숨을 몰아 쉬자 황영조는 막판 스퍼트를 시작했다. 자칫 자신이 지쳐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결과는 2시간 13분 29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모리시타를 100여 미터나 따돌린 성적이었다. 아시아인으로는 올림픽 마라톤 종목 사상 두 번째 우승이었다.

 

손기정 우승 날짜와 똑같은 8월 9일

그는 경기 직후 운동장에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갔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낸 후에야 허벅지에 쥐가 난 것이다. 황영조는 우승한 뒤 태극기를 들고 운동장을 달리는 세레머니를 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황영조의 올림픽 금메달은 1936년 8월 9일 손기정 선생에게 일장기를 강요했던 일본의 마라톤 선수를 꺾었다는 점에서 우승보다 값진 쾌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승 날짜도 똑같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했다.

손기정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 29분 19초 2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의 선수 손기정이 아닌 일본인 선수 ‘키테이 손’으로 불렸다. 손기정은 무표정한 모습에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그저 땅만을 바라보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스타디움을 떠났다.

시상대에서 일본기가 가장 높이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연주될 때 그는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조국의 이름으로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안겨주고 싶었던 손기정의 바람은 56년이 지나서야 후배를 통해 비로소 이뤄졌다. 몬주익 올림픽경기장 관중석에서 현장을 지켜본 손기정 선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자랑스러운 후배와 감격의 포옹을 했다.

'몬주익의 영웅'으로 불린 황영조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 장면.

풀코스 도전 번째 만에 쾌거

황영조는 대회가 끝난 후 언론 인터뷰에서 “금메달이 정말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35㎞ 지점 이후 모리시타가 슬금슬금 뒤로 처지는 것을 느꼈고 이때부터 서서히 스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풀코스 도전 네 번째 만에 금메달을 따낸 황영조는 명륜고 재학 때 정봉수 코오롱 감독의 눈에 들었다. 그는 1991년 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하고 1992년 한국 선수로는 처음 2시간 8분대에 진입하며 한국 마라톤의 대들보로 꼽혔다.

최저 심박수는 분당 38회에 불과할 정도로 타고난 심폐기능에다 죽기 살기로 노력한 결과는 올림픽 마라톤 우승으로 보상받았다. 하지만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은퇴하며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2000년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선수단 감독을 맡아 일찌감치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국 마라톤은 황영조 이후 선수 기근을 겪고 있다. 지난해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했던 손명준과 심종섭은 2시간 36분 21초와 2시간 42분 42초로 131위와 138위를 각각 차지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최고 기록보다 20분 이상 느린 기록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