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유별(父子有別), 부부유친(夫婦有親)으로 바꿔 살자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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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유별(父子有別), 부부유친(夫婦有親)으로 바꿔 살자

2015.09.10 · 윤영걸(전 매경닷컴 대표) 작성

언젠가 동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70대로 보이는 어르신 두 분이 부모와 자식이 얼마나 도와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 어르신은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내려준 관계이자, 사적인 보험관계니 한쪽이 어려울 때는 서로 조건 없이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친구로 보이는 다른 어르신은 “수명이 길어졌는데, 무제한으로 도와주다 보면 의타심이 커져 서로 힘드니 내 것과 네 것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귀동냥을 하는 중이라 끼어들기도 그랬지만 섣불리 한쪽 편을 들 수 없었습니다. 둘 다 맞기도 하고, 둘 다 틀리기도 했으니까요.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도와주며 사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지나친 나머지 양쪽 다 힘든 삶을 살게 되는 것을 수없이 봤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력이 있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형편이 된다면 자식이 집을 사거나 손자 대학 등록금 등 목돈이 필요할 때 좀 도와주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겁니다. 어차피 다 쓰지 못할 재산이라면 계획성 있게 자식에게 넘겨주는 것이 순리겠지요.

가까운 일본에서는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노(老老)상속’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노노상속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100세 할아버지가 70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줘봐야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지요. 이왕 주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줘야 자식에게 더 보탬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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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사랑하는 자식이 노후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Dmytro Zinkevych/Shutterstock

장수시대를 맞아 부모와 자식 사이가 크게 변했고, 또 변화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피를 나눈 자식이 노후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돕니다. 일본의 사회학자인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는 “일본 사회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취직이 어려워지자 부모에게 기생하는 젊은이가 늘어났다”며 부모와 동거하는 미혼 자녀를 ‘패러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s)’이라 명명했습니다. 빈둥거리며 부모의 연금을 뜯어먹는 자식을 패러사이트(기생충)에 비유해 ‘연금 패러사이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청년실업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남의 얘기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겁니다.

50대 이상의 부모 세대는 취업이 상대적으로 쉬웠고, 부동산과 주식 급등으로 자본이익 축적이 상대적으로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자식 세대는 취업부터 집 마련까지 모든 것이 녹록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라는 말이 나돌까요. 오래 전 이 땅에는 가난한 집에서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연로한 부모를 내다버리는 고려장 풍습이 있었다지만 이제는 끊임없이 손 벌리는 자식과의 관계를 끊어야 하는 ‘역고려장 시대’를 앞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뾰족한 답이 없어 보입니다. 먼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새로 설정해야 합니다. 도와줄 때 도와주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에는 일정한 규율과 예의가 있어야 하고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부모들은 너무 쉽게 모든 것을 자식에게 퍼주고, 나중에 배신당했다며 후회합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민간 교육비 지출 1위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 열풍에 휩쓸리기 시작해 자식 해외유학을 보내주지 못하면 부끄럽게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빚까지 내가며 교육비를 해외로 송금하는 그들의 노후생활은 과연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분에 넘치게 호텔에서 자식 결혼식을 올려주고 집까지 사주려고 안달입니다. 양가 부모 재산이 10억원 미만인 커플 중 19%가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상류층 자녀들도 학자금 대출받아 공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것을 당연시 하는데 한국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습니다. 결혼 이후에도 빚내서 자식 사업 뒷돈을 대주고, 부모가 사는 집을 담보로 보증까지 서주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를 봐도 이렇게까지 과잉친절을 베푸는 부모는 없을 겁니다. 한국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된 이유는 따지고 보면 세계 최고로 자식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먼저 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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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재롱 보는 재미에 빠지면 머슴이나 파출부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XiXinXing/Shutterstock

풍요로운 노후생활의 가장 큰 적(敵)은 불행하게도 자식입니다.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고향을 상실한 고독한 현대인이 정서적 안정과 영원성을 얻기 위해 자식을 신의 위치로까지 격상시켰다”며 “아브라함이 신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면 우리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신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나친 자식 사랑이 이미 종교적 맹신에 가깝게 변하고 있습니다. 자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노후대책의 출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식이 변하기를 바라기 전에 부모부터 변해야 길이 열립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은퇴교육을 해줘야 합니다. 지금 60세인 사람의 평균 기대수명이 90세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리고 보유 자산으로는 부모가 노후에 살기도 빠듯하다는 사실을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식에게 일깨워줘야 합니다. 그리고 길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자식은 또 어떻게 노후설계를 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서로 대화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기대고 싶은 의타심(依他心)이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깨뜨리는 것은 결국 어른의 책임이지요. 바쁜 자식을 대신해 손자를 돌봐주더라도 거래관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반드시 보육비를 주고받으라는 겁니다. 낮 시간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를 맡고, 저녁엔 부모가 있는 집으로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쉬는 날 없이 24시간 손자 재롱 보는 재미에 푹 빠지다 보면, 자칫 실컷 고생하고 머슴이나 파출부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벌가부터 서민들 가정까지 상속 재산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부모의 재산이 자기 것이라는 공짜 심리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아름다운 동거’가 계속되려면 나름대로 원칙이 필요합니다. 먼저 부모는 자녀에게 ‘인생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재산을 물려줄 때는 반드시 근거 서류를 남겨야 합니다. 부모 자식 사이라도 세월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져 자신이 준 것만을 기억하고 받은 것은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자녀가 독립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책임은 순전히 부모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경제적 지원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사랑할수록 거리를 둬야 한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자식을 위한 지출은 자신의 노후자금 계좌에서 선인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미래에 쓸 돈을 빌려 지금 써버리는 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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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사이는 거리를 두되 오래도록 함께 살아야 할 부부는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Darren Baker/Shutterstock

주위에는 홀로된 노인이 재혼을 하고 싶어도 자식 눈치 보느라 홀로 여생을 마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행여 부모가 재혼하면 자신에게 돌아올 유산 몫이 줄어들까 훼방하는 탓입니다. 자식 키우느라고 고생하고, 홀로 된 뒤에는 말벗이 될 이성 친구조차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게 이 시대 부모의 슬픈 자화상인지 모릅니다.

어느 일본 책에는 사별하고 혼자 사는 부모에게 다가와 “모시고 함께 살고 싶다”고 하는 자식의 말을 ‘악마의 속삭임’으로 생각하라는 주의사항이 소개돼 있을 정도입니다. 부모 자식이 어설프게 살림을 합쳤다가 결국 재산 다 넘겨주고 마지막에는 보금자리인 집까지 빼앗긴다는 경고이지요.

인간은 불행하게도 서로 배신하고 배신당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은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한치 앞조차 내다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부모를 외면하는 자식을 손가락질했지만, 앞으로는 자식에게 손 벌리는 부모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 올지 모릅니다. 제 호주머니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신무장을 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보입니다.

가족은 핏줄을 나누었지만 너무 가까운 나머지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짧고, 노후는 깁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사랑하되, 좀 더 거리를 둬야 합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오래도록 함께 살아야 할 부부간은 좀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오륜(五倫)의 부자유친(父子有親)은 부자유별(父子有別)로, 부부유별(夫婦有別)은 부부유친(夫婦有親)으로 바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