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조선 후기 최고의 수리천문학자, 서호수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조선 후기 최고의 수리천문학자, 서호수

명예의 전당(서호수)축소9.15
국립과천과학관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서호수 코너(오른쪽). ⓒ신종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註-생활백과사전)를 쓴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년)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의 아버지 학산(鶴山) 서호수(徐浩修, 1736~1799년)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조선 영조~정조시대의 실학자이자 천문학자로 당대를 떨치던 사람이다. 국립과천과학관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그를 소개한다.

경기도 파주 장단 출신의 서호수는 30세(영조 42년, 1766년)에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로 벼슬을 시작해, 10년 후 정조 원년에는 도승지(都承旨)로 임명되어 왕의 측근에서 관상감 제조 등을 역임했다. 혼천의(渾天儀) 등 천문관측기구를 중수(重修)하고 수많은 역법(曆法) 서적을 편찬하고 관련 제도를 개편하는 등 사망할 때까지 줄곧 천문역산 분야의 중심에 섰던 당대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자였다.

천문 분야에서 그의 대표작으로는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註-상고시대부터 조선에 이르는 모든 제도와 문물 등을 정리한 일종의 백과사전)의 천문편(天文篇)인 <상위고(象緯考)>(1770년)와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1796년)를 들 수 있다.

<상위고>는 고대 이래 조선의 역상(曆象)의 내력, 우주의 형체와 구조에 대한 이론, 천체 운행에 대한 이론, 역대의 천문의기, 천문 관측기록 등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국조역상고>는 조선시대 천문역산학의 역사를 비롯해 위도 계산, 낮밤의 시각, 일식과 월식 계산법, 천문기구의 발달사, 물시계에 관한 내용을 역관(曆官) 김영, 성주덕과 함께 정리한 책이다. 이 두 책은 그의 사후 편찬된 <서운관지(書雲觀志)>(순조 18년, 1818년)와 함께 조선시대 천문역산학의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꼽히고 있다.

이밖에도 <천세력(千歲歷)> <신법중성기(新法中星記)> <신법누주통의(新法漏籌通義)>라는 책을 편찬하는 등 국가의 공식적인 천문역산학을 정리하고,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서양의 수학 및 천문학 이론을 연구 검토함으로써 조선 후기 천문역산의 기반을 탄탄하게 하였다. 국립과천과학관 명예의 전당 서호수 전시 코너에는 그를 ‘케플러의 타원운동론을 이해한 최고의 수리천문학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죽기 1년 전 정조에게 바친 <해동농서(海東農書)>(1798년)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중국과 우리나라는 기후, 풍토, 관습이 다르므로 중국 농업기술을 수용해 우리 농업을 개량하려면 우리에게 적합한 것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개(灌漑)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수차(水車)의 제조 보급, 수리 기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서호수가 천문역산에 심취한 데는 집안의 전통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그의 집안은 영정조대 탕평정국 하에서 정계와 학계에서 권위와 명예를 누렸던 대표적인 달성서씨 가문이다. 부친 서명응(徐命膺, 1716~1787년)은 판중추부사를 지낸 북학파의 비조이며, 영의정을 지낸 숙부 서명선(徐命善, 1728~1791년)은 노론 세력을 견제하는 소론 세력의 핵심으로서 정조대 탕평정국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서호수는 천문역산가이기도 한 부친의 학문적 성향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청나라에서 수입된 최신의 방대한 지식 정보를 누구보다 가깝게 많이 접할 수 있는 등 좋은 연구 여건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또한 그 자신도 중국을 두 차례나 방문하면서 새로운 문물과 서양과학에 대해서 관심과 깊이가 더해졌을 것이다.

1776년 정조 즉위년에 진하겸사은부사(進賀兼謝恩副使)로 처음 청나라 연경에 다녀왔으며, 두 번째로 1790년(정조 14년)에는 건륭제의 팔순을 축하하기 위해 청나라에 다녀왔는데 <열하기유(熱河紀遊)>(<연행기(燕行紀)>는 이 책의 이본(異本))는 그의 두 번째 연행기록이다.

서호수는 한산이씨와 결혼하여 4남 2녀를 두었는데, 서유구는 둘째 아들이다. 이처럼 서호수의 가문은 부친과 아들 등 3대에 걸쳐 과학과 농학 등의 서적 편찬을 비롯한 학문적 업적을 공유한 과학기술자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간 3대가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정될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자료△ 문중양, ‘18세기 말 천문역산 전문가의 과학 활동과 담론의 역사적 성격 – 서호수(徐浩修)와 이가환(李家煥)을 중심으로’
△ 국립과천과학관 ‘서호수 선현 공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