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고독을 이기는 힘, 노년의 이성 친구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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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고독을 이기는 힘, 노년의 이성 친구

노년의 삶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바다 건너 먼 땅의 노년도 우리처럼 안온한 노후가 있는가 하면, 상실감과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도 많은 모양이다. 이런 불행한 노년에게 밤은 늘 길고 암울하며 깊은 고독을 안겨준다. 그 때문에 이런 절박한 삶은 여러 문학 속에서 자주 다뤄진다. 그러나 그런 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형태나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지난 5월 말 미국에서 출간된 <Our Souls at Night(밤의 고독을 이겨낸 우리의 삶)>란 소설 속에서 그런 색다른 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켄트 하루프. 지난해 11월 말 71세로 숨진 미국 작가다. 그는 1984년부터 30년 동안 창작활동을 벌였으나 그동안 내놓은 소설은 이 작품을 포함해 6편뿐이다. 5년에 한 번 꼴로 드문드문 작품을 펴낸 셈이다. 그의 소설 중에서 지난 7월 한겨레출판이 출간한 <플레인송>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유일한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그가 숨진 뒤 반 년 만에 나온 유작인 셈인데, 출간 직후인 지난 6월 중순부터 7월 초순까지 4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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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작가 켄트 하루프의 근년 모습.

이 작품의 첫머리는 5월 어느 날 땅거미가 질 무렵, 남편과 사별한 지 여러 해가 지난 70세의 애디 무어가 같은 마을에 사는 비슷한 나이의 홀아비 루이스 워터즈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이 사는 곳은 모든 주민들이 서로 얼굴과 형편을 잘 알 만큼 작은 도회지다. 이런 고장에서 과부와 홀아비의 만남은 주변의 시선이 없더라도 언제나 거북하다. 동네에서 만나면 목례나 주고받는 사이인데, 무슨 일일까 남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여자를 맞이한다. 여자는 남자의 사별한 아내와는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마실 것을 사양하고 의자에 앉은 여자는 남자의 표정을 살피면서 조심스레 입을 연다.

“언제든 우리 집에 와서 동침하는 문제를 고려해볼 생각이 없는지요.”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놀란 표정의 남자가 이렇게 반문하자 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난 홀로된 지 여러 해가 지나 상당히 외롭다. 그쪽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내 이야기는 우리 집에 와서 함께 밤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다.

남자가 처음엔 여자를 쏘아보다가 찬찬히 표정을 살피고 이내 흥미롭다는 기색을 보이더니 다시 신중한 표정으로 되돌아간다. “아무 말도 못하는 걸 보니, 내가 어지간히 놀래켰던 모양이군요.” 여자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 이야기는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섹스를 연상했던 남자가 다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성적 욕구는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어요.” 그렇다면 뭘 하자는 것일까?

“밤이 지긋지긋해요.” 날이 어두워지면 텅 빈 집안이 더 휑해 보이고 이 구석 저 구석에 어둠이 짙게 쌓이면서 쓸쓸함이 뼛속 깊이 스며들어 기나긴 밤이 끔찍하다는 것이다. 수면제를 몇 알씩 입에 털어 넣는 일도 지겹고, 불면으로 새벽까지 책을 읽다가 깜빡 풋잠을 자고 일어난 뒤의 어질어질한 느낌도 언짢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함께 밤을 잘 보내자는 이야기예요. 따뜻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친구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자는 거지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 그런 평안을 베개 삼아 한쪽이 먼저 잠들고, 다른 쪽도 옆 사람의 체취와 숨결을 가까이 느끼면서 잇달아 잠든다면 그 기나긴 밤을 가뿐히 넘길 수 있지 않겠어요?” 남자가 수긍하자 여자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남자가 묻는다.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편하실 대로.” 여자가 짧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 올 때는 미리 전화를 주세요.” 남자는 문을 나서는 여인의 아담한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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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이성과의 친교를 통해 유대감을 키워나가는 새로운 시작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ProStockStudio/Shutterstock

그 다음날 남자는 이발을 하고 평소와 달리 좀 오래 샤워를 한 뒤 손톱과 발톱 손질을 하고 종이팩에 파자마와 칫솔을 챙겨 넣은 다음 땅거미가 질 무렵 집을 나선다. 이 작품 속 가상의 마을인 콜로라도 홀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그만 도회지로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주민 대부분이 나이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보수적이고 근면하고 또 점잖고 건실하지만 바깥사람들 눈에는 편협해 보인다. 이런 마을에 사는 과부와 홀아비의 행실이 얼마나 주목의 대상이 될까?

남자는 땅거미가 좀 더 짙게 내린 뒤 뒷골목을 따라 한 블록쯤 떨어진 여자의 집으로 향한다. 얼마 뒤 뒷문 주방 쪽 불빛 속에 싱크대 앞에서 움직이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날따라 남자의 귀에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여자의 집 뒷문 쪽으로 간 남자가 문을 똑똑 두드리지만 기척이 없다. 한 번 더 두드리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잠시 뒤 앞문 현관등이 켜지면서 문이 열린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자의 다소 냉랭한 음성이 크게 울린다. “앞으로 뒷길로 다니지 말고 큰길로 오고 또 뒷문 말고 앞문으로 오세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마세요. 평생 동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았는데,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 생각이 없어요.” 머쓱해진 남자가 여자를 멍하니 바라본다. 뒷골목으로 다니면 우리가 무슨 나쁜 짓이나 부끄러운 행위를 하는 것처럼 비칠 터이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타박이다. “나는 조그만 도회지에서 오랫동안 교사 노릇을 한 탓에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데, 다음에 올 때는 앞문으로 오겠어요.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말이죠.”

이런 남자의 이야기에 여자의 반응이 날카롭다. “그렇다면 이게 원나잇스탠드에 불과하단 말인가요?” “나도 잘 모르겠소. 이런 만남이 어떻게 이어질지 말이오.” “그럼 아무런 믿음이 없다는 말인가요?” 여자가 다그치듯이 묻는다. “당신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내가 당신과 똑같은 마음가짐과 태도로 이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오.” 이렇게 시작된 여자와 남자의 만남은 무리 없이 이어졌다. 서로 상대방의 품성을 어지간히 알고 있는데다, 특히 여자 쪽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잘 가늠해 상대방을 신중하게 선택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예상처럼 양쪽 다 어색하고 조심스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구나 침실은 누구에게나 내밀한 공간이 아니던가. 그러나 성장한 자식들이 떠나고 가장 가깝던 배우자마저 사별한 뒤 텅 빈 집은 허전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제 두 사람이 그 침실에 나란히 누워 어둠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기나긴 불면의 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색함이 사라지면서 남자와 여자의 대화는 유년시절의 추억과 젊은 시절 배우자와 만나 사랑을 나눴던 일, 옛날 직장에서 겪었던 일과 자식 이야기, 수십 년의 결혼생활과 마을 이야기 등 온갖 화제로 번져나간다. 땅거미가 지면 남자가 여자 집으로 왔다가 함께 밤을 보내고 아침에 제집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계속되면서 남녀의 친밀감은 두터워져 간다.

게다가 사업 실패로 파경을 맞은 여자의 아들이 며느리와 별거하면서 맡긴 여섯 살짜리 손자가 아연 집안의 활기를 더해준다. 남자는 노경에 부대끼는 어린아이의 싱싱한 활력이 즐거운 나머지 아이를 돌보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하고, 이 모습이 여자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아들딸 시집 장가 보내고 배우자와도 사별하면서 사라져버린 가정이 되살아난 듯한 기분이다.

고독을이겨낸삶(크기변환)

이 작품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결말을 알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아무래도 읽는 맛이 반감되거나 싱거워질 것이다. 독자들의 입맛이 걱정스런 이유다. 독자뿐만 아니라 거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나 일반 서점의 작품 판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작품을 소개하는 내용이나 독자들의 독후감도 결말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연배의 두 사람이 밤마다 한 침대에 누워 즐겁고 유쾌했던 추억과 함께 지난 삶속에 쌓인 갖가지 회한을 시시콜콜 캐묻고 나누며 우정과 유대감, 나아가 사랑을 키웠음은 분명해 보인다.

문득 우리나라에도 옆에 나란히 누운 이의 고른 숨결만으로도 기나긴 밤의 고적(孤寂)을 이겨낼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또한 홀로 남았다 하더라도 심신 양면이 거의 소진된 노년이 아니라 이 작품처럼 이성과의 친교를 통해 유대감을 키워나가는, 새로운 시작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다만 그런 새 출발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 조건이나 여건은 간단치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