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풍습도 유난스러운 신(神)들의 고향 제주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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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풍습도 유난스러운 신(神)들의 고향 제주

‘신들의 고향’제주. 1만8,000 신(神)의 숫자만큼 무덤도 지천에 깔려있다. 음력 8월, 벌초 때면 도로엔 자동차 행렬, 들판엔 갈옷 물결, 묘소엔 낫질소리가 요란하다.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유난스런 제주의 벌초풍습이다.

충정공 문익점의 후손인 망제공(문연)의 염돈파 가족묘역의 문중벌초. Ⓒ문인수

토속신앙과 같은 제주의 숭조벌초

유교의 숭조사상이 투철한 제주. 조상을 섬기는데 빠질 수 없다는 효심의 발로다. 그래서 벌초의 몫도 떡반 나누듯 공평하다. 타향살이를 해도 제주의 살붙이라면 이때만큼은 꼭 고향을 찾는다. 자신에게 맡겨진 숭조의 몫을 다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에 대한 용서를 비는 의미도 있다. 조상의 묘역을 찾아 풀을 베고 깨끗이 청소해야 마음의 짐을 던 듯 속이 후련하다.

숭조벌초는 토속신앙처럼 제주인의 마음에 박혀있다. 낫으로 묘역의 풀을 직접 베는 것이 도리이자 원칙이다. 자신의 몫을 남에게 맡기는 것을 큰 불효로 여긴다. 그래서 음력 8월 초하루를 중심으로 제주의 야산은 벌초꾼으로 뒤덮인다.

벌초 날은 제주의 잔칫날이다. 모든 친척이 한데 모여 음식도 해먹고 정담도 나눈다. 누구 집 어느 누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출세했는지 귀동냥도 한다. 하여, 이날은 궁금했던 정보의 장날이기도 하다. 죄면(‘조면’의 제주사투리)했던 형제들도 이날만큼은 조상을 섬기는 마음으로 화해한다. 고향을 떠났던 출향인도 돌아온다. 일본 등 외국에 사는 제주출신 동포들도 조상의 묘역을 찾아 성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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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이날을 전후해 일주일 동안은 제주행 항공편이 동난다. 그래서 항공사들은 운항횟수를 늘린다.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요금을 할인해주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다. 벌초하는 날이 평일과 겹치면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방학을 한다. 숭조정신(崇祖精神)을 함양하기 위한 향토교육의 하나인 벌초방학이다. 대가족제도가 붕괴되고 태생의 뿌리가 흔들리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제주의 벌초방학이야말로 경로효친과 숭조문화를 고양하는 향토색 짙은 인성교육이 아닐까.

게다가 공무원이나 직장인들까지 휴가를 낸다. 숭조의 몫인 벌초대열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소방당국은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경찰은 교통비상령을 내린다. 행정당국은 벌초봉사대를 꾸려 출향인의 벌초를 대행해 준다.

[caption width="690" align="alignnone"] 옛날에는 벌초가 끝나면 여자들이 차려온 음식을고 벌초현장에서 점심을 함께하며 세상사는 얘기를 나눴으나 그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지금은 식당을 예약해 그곳에서 식사도 하고 얘기도 나눈다. 벌처를 마치고 식당으로 가고 있다. Ⓒ문인수

가족의 울타리를 지탱하는 벌초

벌초를 매개로 가족끼리 연대를 공고히 하는 것은 한 뿌리라는 공동체의식의 발현이 아닐까. 불신의 벽을 넘어 화합의 손을 잡는 시대의 교훈이기도 하다. 아니, 무너지는 가족의 울타리를 지탱하는 지지대(支持臺)가 아닐 수 없다.

필자도 해마다 음력 8월 초하루 다음에 오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그 유난한 벌초대열에 선다. 그날이면 4~5대손까지 300여 명이 가족묘역에서 집단 벌초를 한다. 벌초시작을 알리는 시제(時祭)를 올린다음 낫으로 조용히 풀을 벤다.

요즘은 제초기의 등장으로 벌초를 쉽게 하는 집안도 있지만, 그래도 묘의 봉분에 올라타 요란한 기계소리를 내는 것을 삼가는 것이 예의다. 편히 쉬는 선조를 요란한 기계소리로 놀라게 하는 것은 자손 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우리집안은 제초기를 선조의 봉분에 대는 것을 엄격히 규제한다.

칠순이 넘으면 벌초꾼에서 빠진다. 대신 벌초행사에는 참석해 조상의 이야기나 벌초순서 또는 낫질방법들은 후손들에게 전하고 덕담도 한다. 충정공 문익점의 후손인 망제곺파의 문중묘역. Ⓒ문인수

음력 8월은 가을의 시작이다. 소절(素節)의 빛, 투명한 하늘, 가볍게 스치는 바람, 갈맷빛 억새가 가을의 문턱을 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조상의 묘역에서 억새를 한 움큼 쥐고 낫질을 한다. 낫날에도, 억새를 움켜 쥔 손바닥에도 조상의 음덕이 스민다. 바람은 송송 밴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 달아난다.

설익은 가을이지만 청명한 하늘이 한껏 높아진 것 같다. 척박한 섬에서 검소와 절제로 버텨온 선조들의 끈질긴 생명력, 그 슬기와 음덕이 서려있다. 같은 울타리 같은 집에서 같이 밥도 먹고 야단도 맞고 칭찬도 들으며 살았다. 대쪽 같은 성품의 증조부님의 말씀도 들리는 듯하고, 고조부님의 묘역이 명당이기 때문에 자손이 번성했다는 선친의 이야기도 귓전에 어득하다. 선친이 돌아가신 지도 벌써 30년. 조상의 내력 담을 들려주던 그 모습도 이젠 가물가물하다.

 

제주인의 연대성, 4.3사건

선조의 내력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 고향생각이 선연하다. 길 건너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이며, 뒤뜰의 노랗게 익은 감이며, 대나무 숲에서 먹이를 엿보는 족제비며, 마당의 화사한 백일홍 등 향토색 정서가 마음을 포근히 감싼다.

어디 그뿐인가. 광란의 4.3사건으로 가재가 몽땅 소실되는 아픔과 남부여대의 피난길 그리고 피멍이 얼룩진 발바닥 부상으로 걷고 또 걸었던 악몽의 세월도 떠오른다. 이런 일들이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제주인들이 가지는 공통된 정서다.

특히 4.3때 억울하게 죽은 원혼의 묘역이 없는 가문은 없다. 벌초를 통한 제주인의 연대성이 공고한 또 하나의 이유다. 4.3의 그 아픔, 아무리 설명해도 그 진실을 토해내기엔 내 언어의 뿌리가 너무 약하다. 그저 영면만을 빌 뿐이다.

서귀포시 강정동 갈충선공 문익점의 후손인 망제공파의 가족묘역.

견고하던 벌초 문화에도 변화가

선조의 스토리텔링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제주사람 대부분이 그렇다. 종손가에 재월을 물려주어 선조의 스토리텔링은 물론 묘역관리를 맡기는 것도 제주의 독특한 정서다. 최근에 와서 이를 폐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가문의 전통을 지키고 선조의 음덕을 전승하는 데는 재월이 담보가 된다.

제주의 벌초는 도벌초, 모둠벌초, 가족벌초로 나뉜다. 도벌초는 각 가문마다 제주의 입도선묘(入道先墓)에 대한 벌초다. 모둠벌초는 성씨의 파별로 나눠진 문중선묘(門中先墓)의 묘역을 자손들이 모여 단장하는 벌초다. 형제라도 입도 당시 제각기 흩어져 터전을 마련하다보니 집성촌을 이루고 파를 형성한 경우가 많다.

이 벌초풍습은 효의 실천과 문중단합이라는 전통이 있다. 허나 이런 미풍도 점차 변하고 있다. 커다란 봉분에 그럴싸한 석물까지 갖춘 무덤들이 골총(자손이 없는 무덤)으로 변하고 있다. 그 견고하던 벌초문화에도 균열이 있음을 느낀다.

자손의 단절일까. 효사상의 퇴색일까. 세월은 참으로 무상하다.

망제공 문연의 후손들이 묘역을 단장하고 있다.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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