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가장 큰 위험은 자식이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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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가장 큰 위험은 자식이다

2015.09.17 · 윤영걸(전 매경닷컴 대표) 작성

2011년 6월 어느 휴일 새벽에 향년 81세로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한 어머니에 관한 얘기입니다. 여기서 ‘한(恨)’이란 단어를 쓴 것은 어머니 인생이 특별히 억울하거나 핍박받아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 시절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겪은 삶의 궤적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그보다 10여 년이 빠른 어머니에 비하면 아주 편안한 삶이었을 정도입니다. 어머니는 일제의 침탈이 극성을 부리던 1930년에 태어나 헐벗고 핍박받은 식민지 나라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17세에 결혼한 어머니는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6·25라는 전쟁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습니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남편은 겨우 두 살짜리 갓난아이를 두고 국군에 입대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참화의 현장에서 피난도 못간 채 살아남아야 했으니 그 고통은 오죽했을까요. 노년의 어머니는 때때로 그 시절 고생했던 얘기를 하면서 눈물짓곤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삶과의 전쟁’이었습니다. 맨주먹으로 갖은 고생을 해가며 시부모와 일가친척을 건사해야 했습니다. 4·19, 5·16, 10·26 등 현대사에서 격동의 현장을 헤쳐 왔으니 가히 파란만장한 생애라 할 만합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녹아져있는 영화국제시장의 한 장면
어머니의 삶은 모진 고난에도 가족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불과 한 세대 후에 태어난 아들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친 인생항로였습니다. 모진 고난에도 가족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생명이 꺼져가는 고통 속에서도 내색하기는커녕 자식들 손을 잡고 “이 어미가 대신 아파줄 테니 너희들은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해!”라며 말하곤 했습니다.

어머니 세대가 힘든 것은 격동기의 파도를 헤쳐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노후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말년이 더 고통스럽고 쓸쓸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닥친 ‘노년기’에 대한 황망함이 그렇습니다. 불과 30~40년 전만해도 마을 어른의 회갑은 동네잔치였습니다. 60세 넘기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지요. 회갑잔치가 끝나면 몇 년 후 부고가 날아와도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칠순잔치도 잘 하지 않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늙으면 자식에게 곳간 열쇠를 넘겨주고 몸을 의탁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것이 자식 것이고, 자식 것이 내 것인데 무슨 노후준비란 말입니까. 안타깝게도 수명은 길어지고 세상은 바뀌었는데도 어머니 세대는 이를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사업을 하던 맏아들이 외환 위기로 어려워지자 어머니에게 S.O.S를 쳤습니다. 맏아들이 어떤 아들입니까?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자신의 분신이자, 6·25 전쟁의 고통을 함께 겪은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전쟁 중 갓난아기를 제대로 못 먹였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았던 어머니였습니다. 며칠간 고민하던 어머니는 홀연히 대전의 집과 땅을 처분해서 서울의 아들과 살림을 합쳤습니다. 공교롭게도 서울로 올라간 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몇 차례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담석증 수술 후유증으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6개월을 의식불명 상태로 투병하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했습니다.

어머니가 퇴원하자마자 맏아들 부부는 돌연 미국행을 선택했습니다. 돈이란 참으로 묘합니다. 살림을 합친지 5년 만의 이별을 앞두고 ‘말 없는’ 갈등이 풍선처럼 커졌고, 어머니는 가슴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다시 시골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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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늙으면 자식에게 곳간 열쇠를 넘겨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Kristo-Gothard Hunor/Shutterstock

대전에 내려온 말년의 어머니는 종이비행기를 접어 거실 TV 위에 올려놓고 “우리 큰 아이가 비행기 타고 멀리 미국으로 떠났어!”라며 울먹이곤 했지요. 대전에 돌아오고 8년을 더 사셨지만 그토록 그리워하던 맏아들과의 인연은 다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칠 무렵에 허겁지겁 미국에서 돌아온 맏아들의 조문으로 이승에서의 모자 간 인연은 허무하게 끝이 났지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집안의 얘기를 소개한 것은 누구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느 집이나 부모의 노후 문제, 특히 재산을 두고 어느 정도 갈등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안타깝게도 서로 배신하고 배신당하며 살아갑니다. 그게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가 외환 위기 때 어려움에 빠진 자식과 살림을 합치지 않고 좀 더 냉정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물론 유교문화에서 자란 어머니 세대로서는 함께 살자는 피붙이의 말을 내치는 것은 부모의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수명이 길어져 60세에 은퇴를 해도 30년 넘게 노후생활을 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노년의 가장 큰 위험은 ‘자식’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여명이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재산을 물려줘도 곤란하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둥켜안고 있어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지요. 유산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재산을 어떻게 하면 많이 물려주느냐를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해질까에 대해 고민부터 해야 합니다.

어머니를 통해 배운 노후대책은 첫째, 부모가 좀 더 자식에게 냉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식도 결국은 남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아무리 피를 나눈 부모자식 간이라 해도 정해진 선을 넘지 말자는 겁니다. 말년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니 평생 이렇게 편안한 적이 없다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독립된 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 자신의 수명을 함부로 예측하지 말라는 점입니다. 어머니는 80세 생일날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60세를 넘기기도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 살게 되다니 꿈만 같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당신의 수명이 80 세가 넘는다고 가정했다면 후반 인생이 훨씬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맏아들과 살림을 합친다는 생각은 감히 엄두를 못 냈겠지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배운 교훈은 좀 더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겁니다. 어머니는 평생 남을 위해 헌신하다 보니 정작 스스로에게는 소홀했습니다. 세상 떠나기 며칠 전 병원 입원을 앞두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 하며 아버지 점심 밥상을 차릴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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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노후의 숙제입니다. ⓒRuslan Guzov/Shutterstock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었는데도 내핍하고 절제했습니다. 맛있는 것 먹고 즐거워하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생각이 짧고 시야가 좁은 자식은 회사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일일이 챙기지 못해드렸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확인해 보니 적지 않은 현금을 남겨두었습니다. 불효자식은 그 통장을 볼 때마다 죄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지요. 어머니가 좀 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불효자의 염치없는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어머니는 떠났지만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추억 속에 숨 쉬고 계시니, 내가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바로 나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대전 국립현충원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계십니다. 6·25에 참전해 나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은 아버지 덕이지요. 국립묘지! 아마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에게 주어진 유일한 보상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