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아웅산 묘지 폭파 사건 – 3부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버마 아웅산 묘지 폭파 사건 – 3부

#13 컵라면 한 개

이륙한 지 한두 시간이 지나갔다. 라면 냄새가 난다. 어제 저녁, 오늘 아침은 버마에서 대충 먹었다. 아무도 점심을 먹은 사람은 없다. 라면 냄새가 식욕을 부른다.

승무원들이 컵라면에 물을 부어 앞자리부터 돌린다. 필자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편한 뒷자리다.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사건 현장에 갔었던 펜 기자, MBC 촬영기자 그리고 대한뉴스팀을 보았다. 폭발 폭음에 귀를 많이 다쳤는지 괴로운 표정들이다.

거기다가 전용기는 항공유만 겨우 채우고 준비도 없이 갑자기 출발하는 바람에 모든 물품을 싣지도 못한 상태다. 다행히 비상용으로 실려 있던 컵라면과 약간의 물이 전부다. 필자도 컵라면 하나와 물 한 잔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만약에 취재 스케줄을 정할 때 MBC와 바꾸어 필자가 사건 현장에 갔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또 외곽팀이 취재팀에 합류해 두 팀이 취재했다면 필자는 중상 아니면 사망했겠지. 아찔하다. 보통 현장 취재에서는 정사진팀과 동영상팀의 성격 상 행동반경이 달라진다. 이번 사건에서도 정사진팀은 전원이 중상. 동아일보의 악바리 이중현은 사망했다. 그렇지만 동영상팀은 대통령의 도착 장면을 촬영하기 위하여 묘지 입구 쪽으로 이동하던 중에 폭발이 일어나 파편이나 무너진 잔해를 피할 수 있었고 폭음으로 고막에 상처를 입은 정도였다. 만약 동영상 외곽팀이 도착 장면을 커버했다면 필자는 정사진팀과 동선이 같았기 때문에 폭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들의 운명은 어제 결정되었다 싶다.

또 하나 큰 운명의 전환이 있었다. 이 일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건 당일 묘지 참배는 버마 외무장관이 영빈관으로 와서 대통령을 안내해 10시 15분에 묘지를 향해 출발하기로 합의된 일정이었다. 그런데 출발시간이 되어도 버마 외무장관이 오질 않는다. 몇 분 후 허겁지겁 달려와 결례를 사과하고 한국 대통령 일행의 대열이 아웅산 국립묘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예정보다 5분 정도 늦어진 시간이라 했다.

한편 행사장에는 공식 수행원과 펜, 사진, 영상 기자단 그리고 의전, 경호, 공보팀이 도착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점검 중이다. 그때 주 버마 한국대사가 도착하고 대통령도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모두 자기 위치로 이동, 자리를 잡았다. 한편 나팔수를 담당한 경호원이 나팔소리를 점검하려고 나팔을 불게 했고 그러자 폭탄이 터졌다. 이렇게 사건은 일어났고 사망자와 부상자를 버마에 남겨둔 채 지금 침묵의 귀국 비행을 하고 있다.

 

#14 대통령 TV로 보여주기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대통령의 무사함을 빨리 알려야 한다는 것.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하여. 만약 버마에서 송출이 가능했다면 대통령의 특별담화를 전 세계에 송출했겠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빨리 방송해 북한의 만행을 알리고 대통령의 무사 귀국을 알려야 한다.

공보수석과 사건 현장 화면과 다른 화면 사용에 대하여 여러 의견을 나누었다. 결론은 한국시간 10월 10일 새벽 3시 경 도착 예정이니(당시에는 심야 TV 방송이 없었다) 아침방송 시작 애국가가 울리고 바로 긴급뉴스를 편성하여 대통령의 한국 도착 화면을 방송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건 현장 화면은 일단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참혹한 현장 모습을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노출했을 경우 그들의 분노와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으리라.

도착 시간이 지났다. 안개 때문에 성남비행장으로, 다시 김포비행장으로 오가며 착륙을 시도하다가 새벽 3시 40분 경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필자는 전용기 뒷문으로 카메라를 메고 뛰어내렸다. 환송식이 열렸던 그 장소에 붉은 카펫도 환영객도 없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비행기 계단을 내려온다. 정부요인 몇몇이 마중했다. 곧바로 청와대에서 비상 대책 국무회의가 열렸다.

noname01[변화]
대통령 만찬에 초대받은 필자 부부. ⓒ황성규
#15 사건 1년 후

사건 발생 1년이 되는 날 전용기를 탔던 모두가 부부 동반으로 대통령이 준비한 저녁식사에 초대 되었다. 먼저 이 자리에 참석 못한 17명의 순국자에 대한 묵념을 했다. 그리고 부상을 당하고 수개월씩 고생한 이들에 대한 격려가 있었다. 최재욱 공보비서관이 정리한 발생부터 사후처리 결과 등을 세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북한이 저지른 버마 아웅산 국립묘지 폭파 테러 사건 현장 동영상은 1년이 지난 1984년 10월 9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1부 기사로 이동하기

2부 기사로 이동하기



전성기뉴스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지난 2015년 9월 첫 문을 열었던 <전성기뉴스>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보다 가까이에서 소통하기위해 SNS 채널을 개설, 50+를 위한 유익한 콘텐츠를 지속 제공합니다.

전성기뉴스는 2017년 12월까지 운영되며, 기존 콘텐츠는 라이나전성기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콘텐츠 보러가기

그동안 <전성기뉴스>를 사랑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SNS 채널에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