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역사] 1969년 10월 1일 콩코드기 세계 최초 초음속 비행 성공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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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1969년 10월 1일 콩코드기 세계 최초 초음속 비행 성공

2015.10.01 · 심언준(전 미디어칸 대표) 작성
콩코드기의 1986년 모습. ⓒBritish Airways

‘콩코드 오류(Concorde Fallacy)’라는 말이 있다. ‘어떤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선에서 손해를 보고 물러나기보다는 그대로 밀고 나가는 행동’이나 ‘앞날에 대한 뚜렷한 비전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콩코드 오류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였던 콩코드기의 개발과 퇴역 과정에서 유래됐다.

프랑스어로 ‘화합’ 또는 ‘협력’을 뜻하는 콩코드기는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합작품이다. 1962년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과 소련이 우주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 기술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증명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착수했다. 당시 개발비만 10억 달러(현재 기준으로는 약 100억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다. 개발 비용이 엄청나 사업 타당성이 불확실했지만 양국은 자존심 때문에 사업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초음속 여객기 개발을 시작한 지 7년 후인 1969년 3월 콩코드기 1호는 첫 비행에 성공했고, 시험비행에 성공한 지 반 년 후인 1969년 10월 1일에 초음속 비행에도 성공했다. 소리의 속도는 마하로 표기하는데 1마하는 1초당 340m/s에 달한다. 이를 시속으로 환산하면 1224㎞/h가 된다. 지금부터 46년 전인 당시에 콩코드기의 초음속 비행 성공은 대단한 성과였다.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 지 1년 만에 음속의 2배 속도까지 달성하면서 콩코드기 개발은 본격 궤도에 올라섰다.

콩코드기가 승객을 태우고 본격적인 상업 운항을 시작한 것은 1976년의 일이다. 시험비행부터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영국과 프랑스 양국에서 동시에 시작된 콩코드기의 상업 운항은 민간 항공여행의 초음속 시대를 화려하게 열면서 대서양을 건너는 시간을 종전 7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했다. 영국항공은 본격적인 상업운항이 시작되기 전인 1975년 8월 일반 탑승객을 대상으로 콩코드기 시승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35명을 선발하는데 50만 명이 몰렸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콩코드기(크기변환)
초음속 여객기를 다시 볼 수 있을까? ⓒSenohrabek/Shutterstock

하지만 개발 당시부터 예상됐던 적자는 상업운항을 시작해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한 대당 가격이 개발비를 포함해 엄청나게 치솟으면서 300대 제작을 예상했지만 겨우 20대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또한 좌석수가 적고 연료 소모가 많은 데다 소음까지 심했지만 요금은 기존 항공기의 몇 배에 달했다. 이용객들에게 외면당했음은 물론이다. 사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이어가면서 운항을 계속하다 결국 2000년 7월 드골공항에서 이륙 직후 파리 북부지역에 추락하여 114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콩코드기는 안정성 논란에 휩싸였고, 2003년 10월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몇 년 후에는 콩코드 여객기의 ‘자손’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최근 20세기 항공우주기술의 집약체인 콩코드기의 뒤를 이을 비행기들이 등장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최근 230만 달러(약 27억원)를 들여 콩코드기를 잇는 초음속 여객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NASA는 그간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초음속 여객기의 소음과 배기가스를 최소화시키는 연구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2019년이면 음속보다 최소한 1.5배 이상 빠른 속도인 2000㎞/h의 속도로 날 수 있는 여객기의 시험비행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