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징비록 6 – 달빛 젖은 ‘우수(憂愁)의 시인(詩人)’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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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징비록 6 – 달빛 젖은 ‘우수(憂愁)의 시인(詩人)’

한산도 시비. ©김동철

무인(武人)의 문재(文才)

이순신 장군은 사후 45년 만에 인조로부터 충무공(忠武公)이란 시호를 받았다. 그는 분명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무인(武人)이다. 그러나 장군은 문인 못잖은 문재(文才)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남해 수군 진영 수루(戍樓)와 뱃전에 달빛이 가득 내려앉는 날이면 어김없이 지필묵(紙筆墨)을 준비했다. 차고 넘치는 회한(悔恨)을 진중음(陣中吟)으로 읊었다. 오언율시 또는 칠언절구에 마음을 푹 적셨다. 특히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이 검푸른 가을 바다에 안기면 출렁이는 파도에 몸과 마음을 얹었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뒤척이기도 했다. 천근만근 눈꺼풀을 들어 올려 실눈 뜨면 동헌(東軒) 마루 한켠 두 자루 칼이 어슴푸레 푸른 달빛을 토해냈다.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절절이 담은 진중음(陣中吟)은 모두 27수로 ‘청구영언’ ‘고금가곡’ ‘가곡원류’ 등에서 호국시(護國詩)로 발견된다. 정좌식심(靜坐息心). 조용히 앉아서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오늘을 반추한다. 달뜨는 밤이면 정안(靜安,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썼고 조정에 올릴 장계(狀啓)를 만들었고 파도 소리에 흥을 담아 시조를 읊었다.
7년의 전장기록인 <난중일기>(7권)는 1962년 12월 20일 편지 모음인 <서간첩>, 61편의 장계(狀啓)와 장달(狀達)을 담은 <임진장초(壬辰狀草)>와 함께 국보 76호로 지정됐다. 또 이 자료는 2013년 6월 18일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장군의 일상과 서정을 담은 글을 세계가 알아준 것이다. 가람 이병기는 1950년 <충무공의 문학>에서 ‘이순신의 시와 서간문, <난중일기>는 그 간곡한 충정이 주옥같이 그려져 있어 무문농묵(舞文弄墨)하는 여간의 문필가 따위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한 문학’이라고 평했다. 영국 수상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분명 장군의 7년 전장 기록이 그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산도가(閑山島歌)

한산도월명야상수루(閑山島月明夜上戍樓)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무대도탐수시(撫大刀探愁時)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하처일성강적경첨수(何處一聲羌笛更添愁)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1593년 7월부터 한산도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우국충정의 착잡한 심회를 노래한 전장시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한산도 야음(閑山島 夜吟)

수국추광모(水國秋光暮) : 남쪽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경한안진고(驚寒雁陣高) :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우심전전야(憂心轉輾夜) : 근심 가득한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
잔월조궁도(殘月照弓刀) : 잔월이 (무심히) 궁도를 비추네

1595년 8월 15일 추석 때다. <난중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이날 밤 희미한 달빛이 수루에 비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시를 읊었다.”

호국충정에 잠 못 이루는 밤, 우국(憂國)의 오언절구 ‘한산도 야음’ 역시 달빛 아래 탄생했다. 한산도는 장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가진 곳이다. 1592년(선조 25년) 7월 장군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 전함 60여 척을 물리침으로써 왜군이 남해를 거쳐 한강이나, 황해도, 평안도 지역으로 북상하는 길을 막았다. 한산도대첩(大捷)은 진주성대첩, 행주성대첩과 함께 임진란 3대 대첩으로 꼽힌다. 장군은 학익진(鶴翼陣) 전법을 펼쳐 왜군을 격퇴했다.

진중음(陣中吟)

천보서문원 군저북지위(天步西門遠 君儲北地危) : 임금의 수레 서쪽으로 멀리 가시고 왕자들은 북쪽에 위태로운데
고신우국일 장사수훈시(孤臣憂國日 壯士樹勳時) : 나라를 근심하는 외로운 신하 장수들은 공로를 세울 때로다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 바다에 서약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다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수이여진멸 수사불위사(讐夷如盡滅 雖死不爲辭) : 이 원수들을 모조리 무찌른다면 이 한 몸 죽을지라도 마다하지 않으리

이순신 장군은 1592년 1차 출전 중 적진포 해전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전라도사 최철견의 첩보로 선조가 의주로 피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참담한 소식을 접하고 본영으로 돌아오면서 통분한 마음을 토해냈다. 군신유의(君臣有義), 군위신강(君爲臣綱)으로 임금을 대하는 일편단심(一片丹心) 자세가 충직하다. 이 오언율시는 전 8구, 4연으로 구성된 정형시다. 우국충정을 담은 진중음으로 특히 3연 5, 6구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는 두 자루의 칼에도 새겨진 유명한 시구다. 장군은 진영에서도 초하루와 보름에는 어김없이 망궐례(望闕禮)를 올렸고 임금이 보낸 교서를 받을 때도 반드시 궁궐을 향해 숙배(肅拜)의 예를 올렸다. 활을 쏠 때도 임금이 계신 북쪽으로는 쏘지 않았다.

무제(無題)

소소풍우야(蕭蕭風雨夜) : 비바람 부슬부슬 흩뿌리는 밤
경경불매시(耿耿不寐時) : 생각만 아물아물 잠 못 이루고
회통여최담(懷痛如嶊膽) : 간담이 찢어질 듯 아픈 이 가슴
상심사할기(傷心似割肌) : 살이 에이듯 쓰라린 이 마음
산하유대참(山河猶帶慘) : 강산은 참혹한 모습 그대로이고
어조역음비(魚鳥亦吟悲) : 물고기와 새들도 슬피 우네
국유창황세(國有蒼黃勢) : 나라는 허둥지둥 어지럽건만
인무임전위(人無任轉危) : 바로잡아 세울 이 아무도 없네
회복사제갈(恢復思諸葛) : 제갈량 중원 회복 어찌했던고
장구모자의(長驅慕子儀) : 말 달리던 곽자의 그립구나
경년방비책(經年防備策) : 원수 막으려 여러 해 했던 일들이
금작성군기(今作聖君欺) : 이제 와 돌아보니 임금만 속였네

곽자의(郭子儀, 697~781년)는 당(唐)나라 때 명장이다. 안사의 난에서 큰 공을 세우고 잇따른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냈다. 시호는 충무공 이순신과 같은 충무(忠武)다. 이 오언율시를 지은 때는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1594년 9월 3일이다. 그해 5월 남해안으로 전격 퇴각한 왜군은 장군의 함대가 견내량을 막고 제해권을 장악하자 해안 요처에 왜성을 쌓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그러면서 명-왜 간의 강화협상을 통해 탈출 방법을 모색했다.

1594년 3월 6일 조선 함대가 제2차 당항포 해전을 마치고 흉도에 이르렀을 때 명나라 선유도사 담종인(譚宗仁)은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금토패문(禁討牌文)을 보내왔다. 그러나 선조는 (명군 몰래) 조선 수륙군 장수들에게 거제도 일대에 주둔해 있는 왜적을 공격하라는 밀지(密旨)를 내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장군의 가슴은 찢어졌다.

증별선수사거이(贈別宣水使居怡)

북거동근고(北去同勤苦) : 북쪽에서도 같이 고생하며 힘써 일했고
남래공사생(南來共死生) : 남쪽에서도 생사를 함께했네
일배금야월(一杯今夜月) : 한 잔 술, 오늘 이 달빛 아래 나누면
명일별리정(明日別離情) : 내일은 이별의 정만 남으리

1595년 9월 14일자 <난중일기>다.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경상우수사 배설(裵楔)이 와서 충청수사 선거이(宣居怡)의 이별주를 나누고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황해병사로 전출되는 선거이(宣居怡)와 이별할 때 짧은 시 한 수를 지어주었다.”

선거이는 장군이 조산보만호 시절 녹둔도 전투에서 북병사 이일(李鎰)의 무고로 첫 번째 백의종군할 때 이일의 군관으로서 이순신을 옹호해주었다. 의리와 우정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시로써 표현했다.

무제(無題)

북래소식묘무인(北來消息杳無因) : 북쪽 소식 아득히 들을 길 없어
백발고신한불신(白髮孤臣恨不辰) : 외로운 신하 시절을 한탄하네
수리유도최경적(袖裡有韜摧勁敵) : 소매 속엔 적 꺾을 병법 있건만
흉중무책제생민(胸中無策濟生民) : 가슴속엔 백성 구할 방책이 없네
건곤암참상응갑(乾坤黯黲霜凝甲) : 천지는 캄캄한데 서리 엉기고
관해성전혈읍진(關海腥膻血浥塵) : 산하에 비린 피가 티끌 적시네
대득화양귀마후(待得華陽歸馬後) : 말 풀어 목장으로 돌려보낸 뒤
폭건환작침계인(幅巾還作枕溪人) : 두건 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삼천리 강토가 왜군과 명군에 짓밟혀 시산혈해(屍山血海)의 무인지경(無人之境)이 되었지만 훗날 고향에 돌아가 ‘두건 쓴 처사로 계곡에 누워 음풍농월(吟風弄月)’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