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비 톡톡] ① 우리나라 최고의 헌책 부자, 여승구 씨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비자비 톡톡] ① 우리나라 최고의 헌책 부자, 여승구 씨

‘비자비 톡톡(Vis a Vis Talk Talk)’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기사입니다. 보통 사람의 좀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의 보통 이야기를 다루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책 부자, (주)화봉문고 대표 여승구(呂丞九) 씨. ©유창하

대한민국 최고 부자를 만나다

(주)화봉문고 대표 여승구 씨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부자입니다. 그렇다고 돈 부자나 땅 부자가 아닙니다. 물론 딸 부자도 아닙니다. 헌책 부자입니다. 본인 말로는 고물상이라고 말씀하지만 좋은 말로 고서수집가입니다.

우선 소장하고 계신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요?

글쎄요. 줄잡아 10여만 점은 넘는데 정확히 몰라요. 그리고 책 숫자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얼마나 가치 있는 것들이냐가 더 중요하겠지요.

[banner id="26217"]

소장 도서 가운데 가장 비싼 책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일 것 같습니다. 문화재 내지 골동품은 매겨진 값이 없습니다. 거래가가 곧 가격이 되겠지요. 사실 저도 궁금했는데 얼마 전 KBS <진품명품> 팀이 찾아와 감정가를 최저 25억원으로 매기더군요. 이 지도는 22쪽으로 붙여서 펴놓으면 가로 세로가 각 4×8m로 웬만한 전시장이 아니고는 내어놓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작품은 흑백 목판본이나 지역별로, 산이나 들 또는 강 등 종류별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제작연도는 1861년입니다. 성신여대의 단순 흑백 소장본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이 작품은 국보로 승격되어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값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그런데요. 지난 주 고서(古書) 경매에서 어느 소장자가 출품한 춘원 이광수의 소설 <무정(無情)> 재판본이 시작가 500만원에서 6000만원에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고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동안 월북 작가라서 눈밖에 벗어났던 백석의 시집 <사슴>이 지난 5월 7000만원에 팔리기도 하는 등 고서, 특히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합니다.

돈 얘기는 그만하고 고서에 빠지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우선 책이 제 인생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시(詩)가 좋아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책장사를 하다 어떤 계기로 완전 헌책 고물상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꿈꾸는 문학청년에서 사업가로, 사업가에서 고서수집가로

그는 전남 광주의 서중 1학년 때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 학생문예작품 현상모집에서 ‘이슬비’라는 시 한 편으로 3위에 입상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시인의 꿈을 키웠고 그로 인해 중학교 때만 200여 권의 시집을 모았다고 했습니다.

시인이 되겠다는 착각 속에 원고지와 씨름하면서도 무작정 서울대 상대를 지원,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고 친척이 운영하는 헌책방 ‘광명서림’에서 몇 년간 일한 것이 결국 운명처럼 완전 책장사 인생길로 들어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외국도서 수입으로 꽤 큰돈을 번 것으로 아는데 외국서적에서 헌책으로 180도 바뀐 이유가 암튼 궁금하거든요.

말씀대로 서울 종로1가 한복판에 300여 평 크기의 ‘한국출판판매주식회사’라는 외서전문 서점을 운영해서 수입도 괜찮았지요. 초창기 브리태니커를 독점 수입해서 기반도 쌓았고 그래서 신나는 김에 <월간 독서>를 창간, 국내 도서 발전에 나름대로 공헌도 하는 등 잘나가기도 했습니다.

너무 잘나가는 바람에 어쩌면 헌책장수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게 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982년 회사 창립 20주년을 맞아 개최한 제1회 <서울 북페어>를 성공리에 마무리 짓고 나서 북페어에 출품됐던 소월의 ‘진달래꽃’, 만해의 ‘님의 침묵’ 등 윤석창 씨의 한국문학작품 초판본을 소장하게 되면서 완전 고서수집가로 변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문이 나자 일명 ‘나까마’로 불리는 고서 중간상인들이 소문을 듣고 책을 싸들고 왔고 일본의 수집가들이 소장한 우리나라 고서들을 쫓아 일본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금껏 아끼는 1895년판 국어번역본 <턴료력뎡>을 포함, 일어·중국어 번역본 등 <천로역경> 희귀본만도 여러 권을 소장하게 되었고요. 보물급 이상의 귀중본들인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대동여지도> 등 많은 책이 이 때 구입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근데 이러한 귀중본들이 지금 창고 서가에 꽂혀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데 이거 괜찮은 겁니까?

괴롭지요. 언젠가 ‘고서박물관’이 건립되어 제 자리를 찾아야 할 텐데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곤 합니다.

사실 그는 한때 자비로 사설 ‘화봉 고서박물관’을 건립해서 몇 년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금싸라기 땅 종로 책방을 팔아 그 돈으로 신문로에 400여 평의 땅을 매입했습니다. 그곳에 조그만 건물을 지어 문고 사무실과 고서박물관을 열었으나 IMF 때 진 빚 때문에 그 땅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서들까지 창고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소장품 가운데 활자본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제조하여 책을 인쇄한 나라입니다. 목판인쇄가 아날로그라고 한다면 활자인쇄는 디지털 발상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세계가 아날로그 시대에 헤매고 있을 때 위대한 디지털 발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활자본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는 흥분합니다. 오늘날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IT 기술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디지털 발상의 창조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지요.

국가적인 고서박물관이 설립되면 소장한 전 장서를 조건 없이 기증하겠다고 제안한 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것도 활자인쇄본에 대한 애착이 한몫을 했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그렇지요. 한 번은 기회가 닿아 정부 당국자와 기증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 측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해 달라고 했습니다. 문화재로서 책은 도서관이 아닌 박물관에 소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이라 결렬되고 말았습니다만….

세계 각국의 큰 박물관에는 구텐베르크 42행 초판본성서(1450~1455년)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설명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보다 200여 년 이전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直指)’를 출판하였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하지요.

따라서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한국 문화로서 인쇄출판문화를 코리아 대표 브랜드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좋아서 시작했고 지금껏 함께하지만 고서 때문에 후회를 많이 하시겠습니다.

매일 매일 후회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후회는 할지언정 포기는 없습니다. 매일 새롭게 후회하면서 또 웃으면서 후회합니다.

그가 진짜로 크게 후회한 일은 바로 신문로 박물관 땅을 판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고서 몇 덩치를 팔고 그 땅을 끝까지 지켰더라면 좋았을 텐데 바보처럼 고물을 껴안고 안 판 탓에 지금껏 소장품들이 고생한다는 얘깁니다.

지금도 셋방살이 서고 신세지만 이 많은 장서들을 보관 운영하려면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갈 텐데요?

그렇지요. 지금 저는 격월로 화봉 현장 경매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수수료 등으로 끌고 나가고 있습니다만 항상 부족하지요.

그런데 화봉(華峯)이라는 호를 쓰시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으신지?

고향이 전남 담양입니다. 고향 뒷산 이름이 화봉산입니다. 그러나 불 화자 화봉산(火峰山)인데 이를 이름에 갖다 쓰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불 화자 대신 빛날 화자 화봉으로 지은 것입니다.

1936년생이니 올해로 꼭 팔순이 되시는데 참 강건하십니다. 술은 얼마나 드시는지?

건강이라… 일에 매달려 아플 시간이 없어요. 지금도 할 일이 이 책처럼 쌓여 있잖아요. 술이요? 옛날에야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소맥’ 아닌 ‘소맹(소주와 맹물을 1대1 정도의 비율로 뜨겁게 데워서 마시는 술이랍니다)’을 몇 잔 즐기는 정도입니다.

장시간 고맙습니다. 뜻이 이뤄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