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역사] 1917년 10월 7일 한강을 걸어서 건너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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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 1917년 10월 7일 한강을 걸어서 건너다

2015.10.07 · 심언준(전 미디어칸 대표) 작성
1950년대 한강인도교 모습. ⓒ연합뉴스

“강물은 흘러갑니다~ 아아~~”

한강 다리 가운데 노래 제목으로 유명한(?) ‘제3한강교’는 1969년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개통된 한남대교다. 그렇다면 ‘제1한강교’로 불렸던 다리는 어디일까?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와 동작구 노량진 사이를 잇는 한강대교가 바로 제1한강교였다. 총 연장 1,005m로 1916년 3월에 착공, 이듬해인 1917년 10월 7일에 준공했다.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길이라 해서 ‘한강인도교’라 이름 붙여진 한강대교가 건설된 것은 한강을 건너는 철교(한강철교)가 개설된 지 17년 후였다. 당시 화물의 운송수단은 대부분 철도였던 만큼 우리나라에 민간인 영업용 자동차가 들어온 1912년쯤에야 도로와 다리 건설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다리 건설계획이 세워진 지 5년 만에 준공된 셈이다.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니

1917년에 개통된 한강인도교 중앙의 차도는 4.5m였으며, 좌우의 인도 역시 각각 1.6m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게 된 서울 시민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고, 여름철 야간에는 장식 전등이 화려하게 켜지는 등 서울의 명물로 장안의 화제가 됐다. <한국건설기네스-길>이라는 책자에 따르면 이 다리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됐으며, 이를 막기 위해 경찰 당국에서는 한강소교 동쪽에 파출소를 특설할 정도였다. 다리 난간에는 ‘一寸待己(일촌대기, 잠깐만 기다리세요)’라는 패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한강인도교가 개통되던 당시 전국의 자동차 수는 100여 대에 불과했지만 1923년에는 1,000대를 돌파해 1,088대로 늘어났으며, 1931년에는 4,331대로 급증했다. 협소한 인도교 하나로는 교통량을 처리하기가 힘들게 되고 1925년 대홍수 때 일부가 유실되는 등으로 1936년에 현재의 타이드아치 형식의 다리로 개축됐다. 이때 총독부 토목과 소속의 한국인 다리 기술자가 감독으로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한강대교는 6·25 전쟁 때 대교 구간의 2, 3, 5번째 경간이 폭파되어 사용불능 상태가 되었다. 9·28 수복 후 우선 1차선만 복구하여 차량 통행을 재개하였고, 1954년에 완전 복구했다. 1979년 1월에는 4차선 교량을 8차선 교량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시작되어 1981년 12월에 완성하였는데, 기존 교량과 같은 규모의 설계에 의하여 중지도∼한강로의 소교 구간은 기존 교량의 동쪽을, 중지도∼노량진의 대교 구간은 기존 교량의 서쪽을 확장해 쌍둥이 다리가 됐다. 1984년 제1한강교가 한강대교로 이름이 바뀌어서 현재까지 불리고 있다.

 

현재 한강의 다리는 총 31개

한편 제2한강교는 1965년에 건설된 양화대교다. 김포공항과 이어지는 양화대교는 건설 당시에는 통행보다는 군사물자 수송을 위한 목적이 더 컸다. 그런데 사실 한강에는 제1한강교 외에 일본강점기 때 놓인 다리가 하나 더 있다. 광장동과 천호동을 잇는 광진교로 1936년 10월 완공됐다. 따라서 한강에 놓인 다리를 철교를 제외하고 순서대로 꼽는다면 제2한강교는 세 번째, 제3한강교는 네 번째 다리가 된다.

현재 한강의 다리는 대교 27개, 철교 4개 등 총 31개에 달한다. 2010년에 착공된 월드컵대교를 포함하면 32개로 늘어난다. 마포구 상암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월드컵대교는 당초 2015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공사비 투입 등이 지연되면서 당초보다 5년 늦춰진 2020년에 완공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