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실게요”는 국적 불명의 언어, 말에는 교양이 담깁니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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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실게요”는 국적 불명의 언어, 말에는 교양이 담깁니다

한글날(크기변환)
한글날이니 우리말을 잘 쓰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Phattana Stock/Shutterstock

젊은 사람에게 괜한 참견을 했다 싶은 일이 며칠 전 있었습니다. 동네 의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기다릴 때입니다. 접수대에 앉은 간호사가 대기 중인 환자를 호명한 뒤 “진료실로 들어가실게요”라고 안내했습니다. 순간 ‘아, 이게 그 악명 높은 ~하실게요 말투로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방금 ‘들어가실게요’라고 한 건 틀린 말인데?” 했더니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법한 간호사, 통통한 볼을 금세 물들이면서 “아, 죄송합니다”라며 더듬더듬합니다. 저도 덩달아 당황해서 “아, 그건 아니고… 어쩌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다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나이 들어서는 젊은이들에게 잔소리하는 거 아니라는데 기자생활 오래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 여전한 모양입니다.

‘~하실게요’라는 요상한 말투가 병원들을 중심으로 서비스 업종에서 퍼져나간다고 들은 건 2년 전입니다. 제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국립국어원의 말다듬기위원회에서 특별 안건으로 올린 겁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어찌 이런 말이 가능한가, 누가 이 말투를 쓰기 시작했는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우리말에서 동사와 형용사는 ‘어간(語幹)+어미(語尾)’로 구성됩니다. 말 그대로 어간은 말의 줄기요, 어미는 말의 꼬리입니다. ‘먹다’ ‘웃다’ ‘자다’에서 ‘먹’ ‘웃’ ‘자’는 줄기로서 본뜻을 지키고 꼬리는 적절하게 변화하여 말을 완성합니다.

‘하실게요’에서 어미인 ‘실게요’는 세 토막(시+ㄹ게+요)으로 구성됩니다. 높이는 의미인 ‘시’ ‘요’ 그리고 ‘ㄹ게’입니다. “내가 먹을게” “슬프지만 웃을게” “이제 그만 잘게”에서처럼 ‘ㄹ게’는 말하는 이의 약속 또는 의지를 밝히는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진료실에 들어갈 환자에게 “들어가실게요”라니요? 본인의 의지를 밝히는 어미에 ‘시’와 ‘요’를 덧붙이는 것도 우습지요. 정말 국적 불명의 언어입니다.

 

남의 아내를 높일 땐 ‘아내분’이 아닌 ‘부인’

같이 근무하는 교수에게서 몇 달 전 항의를 받았습니다. 제가 오래 근무한 신문에 한 면에는 ‘아베의 부인’ 다른 면에는 ‘이승엽의 아내’라는 제목이 나란히 달렸다는 겁니다. ‘이승엽의 아내’란 제목을 붙인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구속 수사’ 하겠다고 농담으로 받아넘겼지만 사실은 얼굴이 뜨뜻했습니다.

아내는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이고, 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아내를 빼고는 다 부인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부인은 사라지고 아내만 남아 돌아다닙니다. 그래도 일국의 총리에겐 아내라고 쓰기 어색했는지 부인을 쓴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또 부인이 사라지면서 이상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아내분’입니다. ‘분’은 ‘사람을 높여서 이르는 말’입니다. 남의 아내를 높이려면 그냥 부인을 쓰면 되는데 ‘아내분’이라니요.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놀란 일 가운데 하나가 말과 글에서 ‘분’을 남용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 앞에서 다른 학생을 가리키며 ‘학생분’은 예사이고 심지어 ‘후배분’이라는 표현도 들어 봤습니다(“후배분이 ~하셨다”라는 말 자체를 바로잡아 주려면 경어법을 다루어야 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다음 기회로 넘깁니다).

 

어른들이 우리말을 정확하게 써야 젊은 층이 배웁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못 쓴다는데, 그럼 그 연령대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궁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연령대에 상관없이 잘못 쓰는 우리말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 30대 초반까지는 그 정도가 상당히 심합니다. 이 사회의 어른들이 먼저 우리말을 정확히 써야 젊은 층이 따라 배우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줄 수 있겠지요.

“말이 곧 인격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그런데 저는 “말이 곧 교양이다”라고 하렵니다. ‘인격’의 격(格)에는 왠지 등급이 나눠지는 듯한 말맛(뉘앙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에는 ‘있다, 없다’가 수식어로 붙지 않습니다. 반면 ‘교양’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로 ‘교양 있다’ ‘교양 없다’는 표현이 널리 쓰입니다. 곧 학문과 지식이 부족해도 사회생활, 경험을 통해 충분히 쌓을 수 있는 게 교양입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의 교양이 담겨 있는 겁니다.

이 글이 게재되면 한 부 인쇄하여 접수대 간호사에게 갖다 주렵니다. 기자 출신은 아무래도 말보다 글이 뜻을 전달하는 데 유리하니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