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③ 완벽한 아비만 인생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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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③ 완벽한 아비만 인생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Scent Of A Woman : Cinema Quad Poster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
감독 마틴 브레스트 | 출연 알 파치노, 크리스 오도넬

 

명배우, 영화를 만들다

<여인의 향기>는 한 중늙은이가 계획한 자살여행의 동선을 따라가는 영화다. 이 남자는 직업군인이었으나 군대에서 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고 조카 집에 얹혀사는 처지다. 마당 구석에 지은 창고 방에서 ‘잉여인간’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인생의 출구전략을 짠다.

“가정도 없으니 유서고 뭐고 필요 없이 가볍게 가면 된다. 마지막 이틀은 화려해도 좋겠다. 가진 돈을 다 털어 최고급의 향락을 누려볼 일이다. 1등석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가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에서 2박, 기사 딸린 리무진을 주문하고, 최고급 재단사에게 맞춤 양복을 지어입고, 별 다섯 개짜리 식당을 예약하고, 고급 콜걸을 하룻밤 사고…. 오랫동안 속을 썩여드린 형을 만나고 호텔로 돌아간다. 훈장을 가득 단 군복을 차려입고 권총을 관자놀이에 댄다.”

“지팡이에 의존해야하는 처지니 도우미가 있으면 좋긴 하겠다. 때마침 동네 고학생 하나가 추수감사절 때 수발을 들기로 정해졌다니 데리고 가면 쓸모 있을지 모르겠다. 내 고함소리에 잔뜩 주눅 든 애송이 고딩. 장학금 받으며 귀족 사립학교에 다닌다니 기특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고달픈 것,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여인의 향기>는 어떤 경우에는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 아니라 ‘배우의 예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퇴역 장교 프랭크 역을 맡은 알 파치노는 7번째 후보 지명을 마감하고 마침내 아카데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괴팍하지만 철학적이며 우아한 인간 프랭크를 초상하기 위해 알 파치노가 부여한 설정과 표현력은 가공할 정도로 계산적이다. 알 파치노의 전략은 오버액팅과 ‘브라부라(Bravura, 고도의 예술적 기교)’의 결합이다.

이 영화가 제작되던 당시의 할리우드는 <나의 왼발>이나 <레인 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더스틴 호프만 등의 장애인 연기에 상을 몰아주던 분위기였으니, 알 파치노가 장님 연기로 이들을 젖히지 못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작정하고 기선을 제압하는, 듣는 이로 하여금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군대식 복창어법의 카리스마, 저 유명한 탱고 신에서의 시선 처리는 미국에 알 파치노만큼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I am in the dark(나는 어둠 속에 있어)!”라고 울부짖는 장면에서 이 남자의 지독한 고독함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필자도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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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

아버지와 아들, 또는 세상과 싸우는 남자

영화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인생의 단맛, 쓴맛을 알 만큼 아는 어른이 풋내기를 상대로 자신의 인생 노하우를 전수하는 아버지-아들 버디 무비.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서 고전하는 24시간 편의점집 의붓아들 심스를 프랭크는 이렇게 가르친다. 정도를 걷지 말고 지름길, 샛길을 택하라고. 그게 안전하고 편안한 법이라고.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프랭크가 공들여 가르치는 또 다른 주제는 여자다. 망설이지 말고 많이 만나라고. 여자는 조물주의 가장 그럴듯한 작품이라고(여인의 향기는 프랭크에게 있어서 삶을 최종적으로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궁극의 그 무엇이다. 여자에 대한 안목은 프랭크의 고전적 취향을 반영한다). 프랭크와 심스가 유사 부자 역할을 통해 서로를 고무하고 교육시키는 과정을 보는 것이 영화를 이해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완벽한 아비만이 자식에게 인생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두 번째 관람 포인트는 17세 소년과 세상 사이에 벌어지는 조용한 전쟁을 구경하는 일이다. 그가 다니는 100년 전통의 프랩스쿨은 조지 부시가 되려는 아이들이 벌이는 미국판 작은 전장이다. 여기서 심스가 보여주는 신념과 도덕의 갈등은 결과가 예상되는 단순한 설정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징계 청문회에서 알 파치노의 단상 연설이 그 뻔함을 장관으로 바꾸어 버린다.

영화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식으로 끌어가기에 서사가 약하다는 결함이 있고, “며칠만 함께 지내다 보면 우리 삼촌을 좋아하게 될 거야”라는 초반부 대사처럼 결말이 예견되는 약점도 있지만, 페라리 신, 탱고 신, 청문회 스피치 신, 추수감사절 격투 신 등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생명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이 되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알 형님’의 연기력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인에 향기>에서 보인 연기가 알 파치노 인생 최고의 연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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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

 

이 영화의 줄거리는…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학생 찰리 심스는 추수감사절 방학 주말에 맹인 프랭크를 2박 3일 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첫 만남부터 사람을 질리게 하는 군바리라 망설여지지만 단돈 몇 달러가 아쉬운 처지. 프랭크는 자살하기 위해 잘나가던 시절 추억의 도시 맨해튼으로 가려고 우격다짐으로 심스를 대동한다.
심스는 나름대로 고민이 있다. 그는 학교에서 친구들의 악동짓을 목격했는데 이를 폭로하지 않아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보호해줄 가치도 없는 친구지만 밀고자는 되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에 그는 갈등한다. 속물적 교장은 하버드 추천서와 퇴학을 당근과 채찍으로 압박한다.
두 고민남은 각자 지닌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 하지만 유명한 탱고 신과 페라리 운전 장면 등 일련의 에피소드를 뉴욕에서 차례로 펼쳐가며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프랭크를 설득하는 심스. “내가 죽지 말아야하는 이유 한 가지만 대보라”는 프랭크의 주문에 심스는 멋진 대답을 해준다.
이틀 만에 리무진을 타고 먼 길을 되돌아가는 두 사람. “어떤 길이 올바른 길인지 알고 있지만 나는 두려워서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여기 여러분 앞에는 그 길을 택한 한 소년이 있다”라고 시작하는 프랭크의 참회적 진술. 학교 법정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변론 장면은 프랭크가 얼마나 지적이며 고상한 그리고 두려움 없는 인간인가를 보여준다. 여자의 향기를 놓치는 법이 없는 프랭크는 청문회 와중에도 능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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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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