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이야기] 이병철과 구인회(LG 창업주), 조홍제(효성 창업주)의 특별한 인연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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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 이야기] 이병철과 구인회(LG 창업주), 조홍제(효성 창업주)의 특별한 인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은 어머니(권재림)가 36세 때 낳은 막내다. 경남 의령에 살던 이병철은 1922년 처음으로 집을 떠나 경남 진주로 갔다. 그곳에는 허 씨 집안으로 시집간 둘째 누나(이분시)가 살고 있었다. 이분시는 이병철을 이발소로 데려가 긴 댕기머리를 싹둑 자르게 했다. 이병철은 “그날은 11세에 고향을 떠난 나의 개화(開化)의 날이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가 세운 서당인 ‘문산정’에서 한학을 배웠던 이병철은 진주로 나오면서 비로소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나는 어릴 때 출중하다는 말을 별로 듣지 못했다. 흔히 두서너 달이면 뗀다는 천자문에 나는 1년 가까이 걸렸다. 다만 유별나게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라고 썼다.

이병철은 이분시의 집에서 가까운 진주시 지수면에 있는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서울로 가는 바람에 다닌 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지만 이곳에서 이병철은 역사적인 인물을 만났다.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였다. 구인회는 이병철보다 세 살이 많다. 구인회는 이병철보다 한 해 전인 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한 상태였다. 나이는 구인회가 많았지만 두 사람은 사이좋은 친구였다. 출석부에는 구인회가 6번, 이병철이 26번으로 나와 있다. 훗날 이병철의 차녀 이숙희가 구인회의 3남 구자학과 결혼함으로써 두 사람은 사돈 관계로 발전한다.

경남 함안 출신인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는 이병철의 형 이병각과 친구였다. 조홍제는 가끔 말을 타고 이병철의 집에 찾아오곤 해 이병철과도 편하게 말을 주고받곤 했다. 조홍제는 구인회와도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이렇게 해서 이병철, 구인회, 조홍제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알고 지내게 됐다. 이병철의 맏아들 이맹희는 <묻어둔 이야기>에서 이병철과 조홍제의 관계를 이렇게 서술했다. ‘아버지가 일본 유학을 계획할 무렵, 조홍제 씨는 우리 고향 옆 동네에 살았는데 아버지가 조홍제 씨에게 일본 유학에 필요한 경비 500원을 빌리고자 했다. 1948년 아버지가 종로2가에 삼성물산공사라는 이름의 무역회사를 시작했을 때 조홍제 씨와 더불어 일을 했고, 전쟁 와중에 부산에서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세웠을 때도 조홍제 씨는 부사장으로 일을 같이 했다.’

1927년 당시의 이병철(왼쪽). ⓒ호암자전

조홍제와 헤어진 이병철, 10년 뒤 구인회와도 멀어져

이병철과 조홍제가 헤어진 것은 1958년이다. 만우 조홍제 회장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펴낸 <만우 조홍제 일화집 – 늦되고 어리석을지라도>에서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해(1958년) 호암(이병철)은 만우(조홍제)에게 동업 청산을 요구했다. 4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기업가로서 황금 같은 시기에 그의 모든 열정을 다 바쳐 일군 기업, 그곳을 떠나라는 요구였다. 두 사람은 결별에 동의했으나 문제는 지분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호암은 선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이리저리 태도를 바꾸며 시간을 끌었다. 그 기간이야말로 만우의 일생에서 가장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만우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하룻밤에 담배를 5~6갑 태워 없앴다. 만우는 자신의 지분이 3분의 1 정도 되고 사장을 지내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제일제당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결국 호암이 내놓은 것은 당시 부실기업으로 은행 관리를 받고 있던 한국타이어와 한일나이론에 삼성이 지분으로 갖고 있던 3분의 1가량의 주식이었다. 만우에게 남은 선택은 재산을 찾기 위해 소송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만우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1962년 56세에 효성물산을 설립하며 독자 경영의 길에 나선 조홍제는 스스로를 ‘늦되고 어리석다’고 칭하며 이때부터 ‘만우(晩愚)’라는 호를 쓰기 시작했다.
이병철은 조홍제와 갈라선 10년 뒤 구인회와도 멀어졌다.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이 계기였다. 1968년의 일이다. 이맹희는 <묻어둔 이야기>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안양골프장 야외 테이블에서 아버지와 나, 구인회 회장님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아버지가 “우리도 앞으로 전자산업을 하려고 하네” 하고 말했다. 구 회장은 화를 벌컥 내면서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 하고 쏘아붙였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민망해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일로 두 분 사이는 멀어졌다. 그후 삼성에서 일하던 매제 구자학은 금성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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