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덫’에 빠진 내 집 마련의 꿈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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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덫’에 빠진 내 집 마련의 꿈

집 없는 설움을 겪어 보셨는지요? 임대 계약 만료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이번에는 보증금을 얼마 더 올려줘야 하나?” 하는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는 모습. 더럭 같이 올라 버린 집세를 감당할 길 없어 가족 모두가 눈물을 훔치며 정든 동네를 떠나 변두리 싼 집으로 내몰리는 애처로운 광경. 집 주인이 주택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잔뜩 받아 쓴 바람에 혹시나 탈이 생기지나 않을까, 사는 동안 내내 마음 졸여야 하는 모습.

앞에 그린 세 가지 장면 중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겪어 보신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배 고프고 모든 것이 모자랐던 1960~1970년대의 궁핍한 시기를 거쳐 오신 730여만 명의 우리나라 베이비 부머 사이에서는 말입니다.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이같은 연유를 배경으로 볼 때 한국 사회에서 내 집 마련에 대한 욕구, 스위트홈의 꿈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새내기 신혼부부의 여러 가지 목표 중 스위트홈은 거의 늘 첫 번째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에 머물지 않고 좀 더 큰 집, 더 넓은 아파트 그리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집 한 칸이 보통 부부의 순차적인 그랜드 디자인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음을 우리 대다수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례, 내일의 한국에 따끔한 교과서

하지만 제가 일본에서 보고 들은 사례를 통해 지금부터 엮어 내려가는 이야기는 내 집 마련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조언을 떠나 도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물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주택시장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적이 두 차례나 있었던 한국의 경험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예가 얼마든 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건 나쁘건 20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다 한때는 실패 국가의 오명까지 뒤집어썼던 일본의 전철을 한국은 그대로 밟아가고 있습니다. 5년여의 시간 동안 일본 사회를 곁에서 지켜봤던 저는 물론 100% 동감하지만 이제는 상당수 한국 이코노미스트들도 한국이 일본형 장기불황 터널에 진입한 지 오래라며 극단적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입니다. 주거 문화, 시장 여건 등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한국과 일본의 사정을 놓고 볼 때 일본의 과거 사례는 내일의 한국에 따끔한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일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입니다.

도쿄 외곽의 사이타마현에 사는 회사원 기무라 가즈히코 씨가 자기 집의 꿈을 이룬 것은 48세 때인 지난 1996년의 일이었습니다. 월세를 내고 사느니 융자 원리금을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신축 소형 아파트를 하나 산 것입니다. 손에 든 돈이 별로 없어 3300만 엔의 대출을 받아 충당했습니다. 정부계 금융기관에서도 2200만 엔을 빌리고 민간 여신전문회사에서도 큰 돈을 빌렸습니다. 매달 원리금으로 나가는 돈은 약 18만 엔에 달했지만 별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연금, 세금을 떼고 받는 자신의 순수입이 월 30만 엔을 넘었던 데다 아내도 맞벌이를 하고 있어 내 집에서 발 뻗고 잔다는 달콤함으로 생돈 내야 하는 억울함을 어렵지 않게 메울 수 있었습니다.

한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회사가 비틀거리더니 월급이 2002년부터 21만 엔으로 뭉텅 깎여버린 것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도 병을 얻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대출금 상환이 버거워진 그는 계산기를 두드리다 자신도 모르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동안 꽤 갚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담보대출 잔액은 3000만 엔을 넘고 있었습니다. 소득이 줄어든 후 연체를 자주한 바람에 가산이자까지 적지 않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고민 끝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 그에게는 자기파산신청의 권유가 내려졌습니다. 가지고 있는 집값보다 남아 있는 대출 잔액이 더 많은 부채 초과 인생이니 법에 의지해서라도 탈출구를 찾으라는 처방이었던거지요. 마이 홈의 단꿈에 젖었다 졸지에 자기파산자가 된 그는 지금 경매에 붙여진 자신의 집이 팔릴 날을 기다리며 세입자 아닌 세입자로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가계부 구조조정 없인 자기파산 불 보듯

중견 무역회사 간부인 가토 히로시 씨는 재테크 컨설턴트를 면담한 자리에서 섬뜩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이 상태대로라면 당신은 곧 채무초과자로 전락합니다. 인생을 제대로 설계하고 싶다면 부채를 빨리 줄이세요.”

가토씨는 5년 전에 자기 집을 5000만 엔에 장만했습니다. 융자가 끼어 있었지만 그래도 어깨가 으쓱했지요. 그런데 주택정보지에서 찾아  자신의 집과 비슷한 매물은 불과 2500만 엔에 나와 있었습니다. 5년 동안 거의 절반의 돈이 날아간 셈이지요. 그러나 3%의 장기고정금리로 빌린 대출금은 아직 3500만 엔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대출금이 주택 시세보다 더 큰, 이른바 깡통주택에 그는 살고 있었던 겁니다. 외화예금 등에 약 1000만 엔의 목돈을 맡겨 놓고 있는 그는 그래도 예금통장이 있다는 생각에 심각성을 별로 깨닫지 못한 상태였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재테크 컨설턴트의 판단은 냉정했습니다. 스위트홈의 단꿈을 빨리 포기하고 가계부 구조조정을 서두르지 않는 한 착시효과에 빠져 결국은 자기파산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일본의 사례에서 주목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부채 초과 인생으로 전락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택 가격의 추락 내지는 장기 침체입니다. 일본을 이야기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비싸다’는 것입니다. 맞는 지적입니다. 교통 요금도 비싸고, 음식값도 비싸고, 술값도 그렇습니다. 원화를 엔화로 환산하면 돈이 거의 10분의 1로 쪼그라드니 한국인들이 일본 땅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꼭 그렇기만 할까요? 두 나라의 경제력과 소득, 구매력 등을 감안할 때 저는 한국의 주택 가격, 임대료는 이미 일본 수준을 크게 넘어선지 오래고 오히려 더 심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파원 생활을 하며 살았던 도쿄 분쿄쿠 지역(도쿄대 등 명문 대학과 중·고교가 즐비해 서울의 강남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곳입니다)의 약 30평 규모 아파트(일본식 이름으로는 맨션입니다)는 4000만 엔대를 호가합니다. 어지간한 단독주택도 도쿄 도심이라면 5000만 엔대를 달립니다. 임대료로 친다 해도 방 두 칸짜리면 월 20만 엔 이상을 주어야 하지요. 물론 적은 돈은 아닙니다. 일본 샐러리맨 입장에서도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서울 도심, 아니면 강남도 이제는 5억원 아래로는 제대로 된 주택, 아파트를 아예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20억원을 훌쩍 넘는 아파트가 수두룩하고 수백만원대의 월세 아파트가 넘쳐 나는 서울은 객관적 수치에서 이미 도쿄 수준을 훨씬 앞질렀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일본보다 주머니는 얇고 일자리도 적은 한국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서민과 보통 사람들은 주거 문제에서 그만큼 훨씬 더 큰 짐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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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의 꿈을 꾸던 시절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Andy Dean Photography/Shutterstock

부동산 불패의 맹신, 과연 언제까지…

오늘의 일본과 비교한 한국의 경제 사정은 그리 안심할 형편이 못됩니다. 미국계 신용평가사들이 채점한 국가신용등급에서 일본을 추월했다고 한국의 경제 체력이 일본보다 낫다고 자신할 관료와 정치인, 기업인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IMF(국제통화기금)는 물론 한국은행도 1400조원 규모에 이르는 천문학적 숫자의 가계부채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라 부채뿐 아니라 이제는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숨통을 틀어막고 나라를 수렁에 빠뜨릴 위험마저 크다는 탄식인 셈이지요.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부동산에 열광하고, 불패 신화에 또 다시 빠져들고, 눈 앞의 투기 이익에 사로잡혀 은행 대출창구를 거리낌없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빚은 악마의 유혹’이라는 경구를 얼마나 더 들려주어야 정신이 돌아올지 너무도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정말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두 차례나 집값 폭락으로 빚의 수렁에서 허우적댄 아픔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자는 것을 말입니다. 건설사들의 분양 실적이 사상 최대에 달하고, 서울 강남 아파트 시세가 2008년 금융위기 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지만 과거의 호된 고통과 시련을 망각한다면 오늘의 한국, 한국 사회는 일본보다 더 심한 실패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저의 변함없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