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고 가는 역사 탐방] ④ 피맛(避馬)골 주점촌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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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타고 가는 역사 탐방] ④ 피맛(避馬)골 주점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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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길 입구. ⓒ강기석

피맛(避馬)길은 아직 남아 있다

피맛길, 혹은 피맛골에서 막걸리깨나 마셔 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피맛길은 이제 없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주로 청진동 골목길에서 놀았던 기억 때문이다.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종각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피맛길은 확실히 사라졌다. 피맛길을 뭉개고 4채의 23~24층짜리 대형 빌딩들이 들어섰다. 그렇게 사라진 것이 피맛길 청진구역이다. 꼬불꼬불 이어진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해장국집, 빈대떡집, 낚지볶음집 등은 대부분 종로1가 사거리에 새로 생긴 오피스 빌딩 르메이에르에 입주했다.

그런데 아직도 피맛길이 많이 남아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로2가 YMCA에서 파고다공원까지 이어지는 짧은 골목 구간을 연상하기 쉽다. 맞다. 이 골목길이 남아 있는 피맛길 중 대표로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이 골목 입구에 표지도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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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2가~파고다공원 간 피맛길 입구에 붙어있는 안내문. ⓒ강기석
종로2가 ~ 파고다공원 간 피맛길.
종로2가~파고다공원 간 피맛길. ©강기석

하지만 이 골목길은 현재 너무 쇠락했다. 여기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피맛길이 파고다공원 길 건너 국일관에서 서울극장까지, 여기서 길 건너 세운상가 건물까지 동서로 쭉 이어지는 종로2가~종로3가 구역 피맛길과 종로 롯데시네마에서 종로3가역 3번 출구까지, 여기서 길 건너 창덕궁까지 남북으로 쭉 이어지는 피맛길이다.

 

‘말을 피해가는 길’이 바로 ‘피맛길’

1392년 조선이 개국되고 여러 논의 끝에 최종 한양으로 천도가 결정되면서 1394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읍 건설이 시작됐다. 경복궁과 종묘, 사직을 정한 후 조시(朝市, 조정과 시정을 아우르는 말)와 도로의 터를 정하는데 ‘전조후시(前朝後市)’, 즉 ‘앞에 조정, 뒤에 시장’이라는 ‘주례’가 정한 원칙에 따르면 시장을 경복궁 뒤에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경복궁의 뒤쪽 공간이 좁아 하는 수 없이 종로를 중심으로 시장을 만들기로 했다.

마침내 1412년(태종 12년)부터 종로를 시작으로 1414년(태종 14년)까지 창덕궁 및 남대문에 이르는 도로 양측 변으로 행랑을 건설했다. 행랑은 대부분 시전으로 사용하였고 일부는 관청에서 사용하는 조방(朝房,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시간을 기다리며 쉬던 방)으로도 사용했다. 시전은 왕실 및 관청은 물론 한양도성 백성들의 먹을거리, 입을 거리, 땔감 등 생활필수품과 공물을 조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연히 한양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가 됐다.

이보다 먼저 1405년(태종 5년)에 태종의 명으로 창덕궁이 이궁(離宮, 태자궁 또는 세자궁을 달리 이르던 말)으로 건설됐다. 창덕궁에서 종로로 나가는 길(돈화문로) 역시 왕족과 고위 관리들이 많이 다니는 귀한 도로가 됐다. 왕족과 사대부들이 걸어 다닐 리는 없어서 주로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고 다녔는데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땅에 넙죽 엎드려 존경을 표시해야 했던 상놈들의 불편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던 모양이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큰길 뒤편에 따로 골목길을 만든 것이 ‘말을 피해가는 길’ 바로 ‘피맛길’이었던 것이다. 종로 양편으로 광화문에서 종로6가까지, 창덕궁에서 종로3가 사거리까지 길 양편으로 길게 피맛길이 조성된 이유다.

종로3가역(3번 출구) ~ 롯데시네마(옛 피카디리) 간 피맛길 입구
종로3가역 3번 출구~롯데시네마(옛 피카디리) 간 피맛길 입구. ©강기석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골목

서민들이 주로 다니던 길이었으므로 옛날에도 주로 주막집이나, 잘하면 색주가도 있었을 법 하다. 지금 남아있는 피맛길에도 주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편안한 식당들이 진을 치고 있다. 각 구간마다 약간씩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종로2가 YMCA 옆 피맛길은 저렴한 생선구이집이나 삼겹살집 같은 음식점들과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선술집이 많은 것 같다. 지금은 재개발이 임박했는지 문을 닫은 집이 많다.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창덕궁까지 이어지는 익선구역 피맛길에는 입구에 옥호도 없이 ‘갈매기살 전문’이라고 써 붙인 식당과 ‘고창집’ ‘광주집’ ‘호남선’ ‘목포홍어집’ 등 제호만 봐도 입맛이 당기는 중장년용 술집들이 좁은 골목에 어깨를 비비고 들어서 있다. 오래 전에는 용한 점집이 20여 군데 있었다고 한다.

종로3가역(6번 출구) ~ 창덕궁 간 익선구역 피맛길 입구
종로3가역 6번 출구~창덕궁 간 익선구역 피맛길 입구. ©강기석

국일관에서 서울극장으로 이어지는 종로3가 피맛길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종삼’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줄 만큼 유명한 집창촌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대신 보쌈과 족발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많이 보인다.

국일관 ~ 서울극장 간 피맛길
국일관~서울극장 간 피맛길. ©강기석
전체 피맛길 개념도
전체 피맛길 개념도. ©강기석

참고로 종로 거리의 시전 행랑은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과 종묘, 주요 관청 등 한양도성의 내부 시설들 대부분이 파괴될 때 함께 불에 타고 말았다. 이후 점차적으로 복구되어 1750년(영조 30년) 경에 이르러서 다시 도성의 중심시장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충무로, 명동 일대가 일본인 중심 상점가, 소공동에서 서소문에 이르는 거리가 화교 중심의 상점가였는데 반해 종로가 조선인의 중심 상점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