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고 고요한 전통 문화예술을 간직한 거리의 유혹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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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고 고요한 전통 문화예술을 간직한 거리의 유혹

푸짐한 문화장터 인사동 거리

나이가 들수록 향수에 기대기 쉽다. 인사동 거리가 푸근해지는 까닭이다. 요즘은 사람들 발걸음이 많아지면서 꽤 어수선해졌지만, 조금 이른 시간에 찾으면 인사동 거리에 아직은 옛 정취가 남아있어 마음이 넉넉해진다. 예전에 인사동을 거닐다가 전통찻집 중 ‘수희재(隨喜齋)’라는 곳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여주인 말로는 ‘묵전(黙典)’이란 스님이 지어준 옥호라고 했는데 뜻을 물으니 “더불어 기뻐하는 집”이란다. 인사 네거리에서 안국 로터리 쪽으로 가다보면 중간쯤 되는 위치 왼쪽, 즉 인사아트센터 옆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찻집이다.

‘더불어 기뻐하는 집’이라는 뜻의 수희재 옥호. ⓒ홍수원

이 찻집으로 들어서면 왼쪽 벽에 편액이 걸려 있다. 융설전향명(融雪煎香茗), 즉 ‘눈을 녹여 향기로운 차를 끓인다’는 의미다. 서예가 근원(近園) 김양동(金洋東) 선생의 글씨라고 주인이 전한다. ‘茗’ 자가 낯설어 그 뜻을 찾아보니 ‘차싹 명’이다. 일반적인 의미는 ‘늦게 딴 차’ 또는 그냥 ‘차’라고 한다. 이런 차를 수돗물 받아 끓이는 것도, 샘터에서 길어온 샘물로 달이는 것도 아니고 ‘새하얀 눈을 녹여서’ 끊인단다. 수돗물보다야 샘물이 나은데, 융설(融雪)이라하니 샘물보다도 더 좋다. 이처럼 백설을 녹인 물로 향기로운 차를 끊인다니, 참 은근하고 멋있다.

인사동에 전통찻집이 이곳 한 군데뿐일까 마는 따뜻한 옥호와 뜻깊은 편액에 이끌려 어쩌다 찾는 인사동 발길이 수희재로 향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4~5년 전부터 인사동에서 이런 수희재의 옥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도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어 못내 서운했다. 인사동이야 이런 전통찻집 말고도 화랑과 필방, 표구점, 공방, 골동품점이 즐비하고 놋전, 고서점, 한복집, 다구점도 자주 눈에 띄는데다, 한정식부터 보리밥, 산채정식, 잔치국수, 수제비까지 있으니 한가한 사람에겐 이곳에 머무는 발길이 푸짐한 문화장터에 온양 흥겨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몇 해가 흘렀는데도 길쭉한 간판에 걸렸던 수희재라는 옥호가 보이지 않아 섭섭한 마음은 여전하다.

매주 금요일마다 갖가지 체험행사로 북적이는 광주 예술의 거리. ⓒ홍수원

남녘땅 광주 예술의 거리

전통과 문화예술을 은근하게 표현하거나 상징하는 거리가 어디 인사동뿐이겠는가? 저 멀리 남녘땅 광주에도 전통 속에 담긴 값진 가치를 지키고 문화를 살찌우려는 ‘예술의 거리’가 있다. 옛 도청(현 아시아문화전당) 근처에 있는 동부경찰서에서 중앙초등학교 양옆의 중앙로와 제봉로까지 이어진 이 예술의 거리에도 갤러리와 필방, 지업사, 표구점, 다기점, 자기점, 고서점, 전통찻집이 즐비하다. 그 주변에 4000~5000원짜리 푸짐한 백반과 설렁탕에서부터 오곡쌈밥, 갈치정식, 한정식을 내놓는 음식점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이쯤 되면 광주 궁동의 ‘예술의 거리’는 인사동 ‘문화의 거리’의 축소판쯤 되는 셈이다.

300m쯤 되는 예술의 거리를 동부경찰서에서 중앙로 쪽으로 가다보면 중간쯤 왼쪽에 자리 잡은 조그만 건물 지하에 ‘뜰방’이라는 오래된 전통찻집이 있었다. 그러나 이 찻집의 분위기는 수희재와 달랐다. ‘눈을 녹여 향기로운 차를 끓이는’ 편액 대신 벽에 세운 가야금과 자그마한 무대가 남도 찻집의 멋과 분위기를 잡아준다. 가야금과 작은 무대가 실내 장식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찻집은 한 달에 두 차례 국악 공연을 가졌다.

격주로 토요일 저녁에 가야금 연주와 판소리가 어우러지면 20평 남짓한 홀은 50여 명의 남녀노소로 가득 찬다. 고수(鼓手)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젊은 여성 국악인들이 펼치는 공연이지만 그 깊이와 질을 떠나 멋과 흥이 홀에 차고 넘친다. 한쪽에선 학생일 법한 젊은 남녀가 판소리 공연을 카메라에 열심히 담는가 하면 뒤쪽에선 예순 가까운 여인이 고수를 따라 추임새를 넣는 소리가 높다. 50대 부부가 눈총을 주면서도 입은 웃는다. 예향 광주라는 상투적 표현이 실감나는 자리다. 이 정겨운 찻집도 몇 해 전 다시 찾아보니 주인도, 상호도 바뀌고 내부 인테리어도 변해 가야금이나 국악 공연을 펼치던 자그마한 무대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의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이란!

 

거리의 푸근함, 문화의 따스함은 영원하기를

이처럼 아늑하고 은근한 분위기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두 찻집이 4~5년 전 거의 동시에 사라지면서 인사동 문화의 거리와 남녘땅 광주 예술의 거리가 공연히 삭막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문화 예술에 대한 갈증이 쉬이 가실 리 없다. 세상은 날로 숨 가쁘게 돌아가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벌어지는 다툼 또한 한층 그악스러워지니, 그 흐름이 더디면서도 곱고 고요한 문화와 예술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수희재와 뜰방이 사라져 서운하긴 해도 필자처럼 그 거리의 푸근함을 쫒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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