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일본 할머니의 까칠한 일기 – 전성기뉴스
콘텐츠 바로가기

top

[독서 노트] 일본 할머니의 까칠한 일기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말 “돈과 목숨은 아끼지 말라”를 근사하게 생각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다가 의연하게 갔다. 까칠하지만 솔직하고 통쾌한 그녀의 글을 권한다. ⓒ남혜경

60대 노인 여자가 쓰는 인생의 페이소스

사노 요코, 이 할머니 건전하고 수더분한 전직 교사 같은 느낌의 사진과는 다르게 까칠하고 고약하다. 그리고 지나치게 솔직하고 용감하다. 혼자 살면서 늙어있는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이 나이에 있음직한 긍정의 미화나 감정 과잉이 없다. 자신을 묘사할 때도 가혹하긴 마찬가지다. 자신의 요리 맛이 격차가 크다는 말을 하면서 요리에도 불안정한 인격이 묻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불안정한 인격이란 말을 쓰기가 어디 쉬운가.

‘뭐든 와라. 얼굴을 돌리지도 숨지도 않겠다’ 같은 태도랄까. 이런 자존감이 냉장고 속에 설거지한 커피잔이 들어있는 노인성 건망증의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에도 익살을 만든다. 60대 노인 여자가 쓰는 그 익살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페이소스가 가득하다.

가죽장갑 한 짝이 없어졌는데 그녀는 그 한 짝을 꼭 찾고 싶다. 서랍을 마구 뒤지다 보니 일주일 전에 산 머플러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옷장 속을 몇 번이나 여닫는 통에 서랍속이 엉망이 되어서 더 우울해졌다.

“신경은 곤두서 있는데 가슴은 꺼질 듯 먹먹했다. 천재지변이라도 덮친 것 같다. 재앙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 같다.”

필자도 이런 비슷한 순간이 있었지 말입니다. 아직 냉장고 속에 커피잔을 둘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 장면도 바로 나잖아? 반포에 있는 직장 다닐 때 여의도에 있는 무시깽이 건물서 열리는 행사에 가느라 팀원을 다 태우고 운전하는데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지 못해 빙빙 돌다 마포대교를 건너버려 결국 집에 세우고 택시를 타고 간 적이 있는데 이 할머니 그 이야기를 하네. 좌회전 하면 건물이 뒤에 가있고 우회전 하면 왼쪽에 있고…. 그렇게 30여 분을 헤매다 빈 택시 보고 앞서가라 하고 뒤쫓아 갔더니 3분 만에 도착하더라고. 이렇게 공감하면 안 돼. 그럼 안 돼! 난 아직 한창이라규!!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엎어버린 설날 밥상에서 날아간 메밀국수가 뒷날 아침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마구 웃고 싶어졌다고 회상하며 말한다. 가장 비참한 것 속에 익살이 숨어있다, 고.

 

암이 재발했다는 선고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재규어를 사다

그녀는 이 글을 쓸 당시 암환자였다. 수술을 받았지만 투병 중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수술 직후에도 여전히 해비스모커였다고 하니까. 지인들이 잔소리를 하니까 “목숨을 내놓는 게 그렇게 두려운가”라고 답한다.

“나 자신이 죽는 건 상관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들은 절대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죽음은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찾아올 때 의미를 갖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에 필자는 바로 공감한다.

그렇다고 마냥 초연한 것도 아니다. 한류 드라마 열풍에 휩싸여 <겨울연가>와 <가을동화>를 몇 번이나 돌려보고 욘사마와 원빈을 보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녀가 보는 일본의 한류 열풍은 “허구의 화사함에 따라 일어났다”고.

염세적이고 냉소적이면서도 한편 따뜻하고 감성적인 이 글은, 노후를 성공적으로 열정적으로 보내는 그 어떤 글들보다 오히려 편안하고 공감이 간다.

이 책에는 일본 가정식 요리가 많이 등장하는데, 가족과 지인과 함께하는 집밥의 추억은 화사하고 다채롭지만 그녀가 지금 끼니를 때우는 부엌의 풍경은 쓸쓸하다. 일본 아줌마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와 함께 한국에 대한 보통 일본인들의 시각을 알 수 있어 그런 부분도 흥미롭다.

재발한 암으로 2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선고를 듣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오는 길에 재규어를 산다.

“항암제는 주시지 말고요. 목숨을 늘리지도 말아주세요. 되도록 일상생활을 하게 해주세요.”

그녀가 가고 없다는 것을 알고 읽자니 끝까지 읽는 것을 미루고 싶다.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사노 요코는 <100번 산 고양이> <하늘을 나는 사자> <내 모자> 등의 작품으로 여러 출판사의 문학상과 일본 정부가 주는 시주호쇼상을 수상했다. 2010년 72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