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존재로 전락한 청첩장에 대한 유감(有感)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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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존재로 전락한 청첩장에 대한 유감(有感)

청첩이라는 이름의 ‘공공의 적’

‘청첩장(請牒狀)’은 말 그대로 ‘뜻깊고 고귀한 자리에 귀하를 모시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서찰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인이 된 사람들 중 ‘청첩’의 말뜻을 모른다거나 한 번도 받아보거나 보내본 적이 없다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맞다’고 단호히 잘라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소중한 본뜻을 담고 있는 청첩장이 우리 사회에서 현재 어떠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새삼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봄, 가을 결혼 시즌만 되면 꼬리를 물고 날아드는 청첩장 때문에 가계부가 성할 날이 없다”든가 “세금 고지서나 다름없는 청첩장이 무서워 시즌만 닥치면 아예 외국으로 여행을 나갔다 들어오는 게 되레 편하다”는 얘기까지 심심찮게 들릴 정도면 보통의 서민들이 청첩장에 갖는 부담감이 적정 수위를 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필자가 털어놓고자 하는 청첩장 유감(有感)은 조금 색다른 각도에서 출발합니다. 보통의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청첩장 공포보다 더 심한 공포에 시달릴 ‘반퇴생활자’들의 심경에 대한 고백입니다.

신상부터 털어놓자면 필자는 30년 간 언론사 생활을 마치고 약간은 다른 길을 걸으며 인생 후반부를 살고 있는 반퇴생활자입니다. 모아놓은 재산이라 해봤자 부끄러울 수준에 불과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로 당분간은 입에 풀칠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습니다. 화려하진 못했어도 임원 생활을 수년 간 한 후 자리에서 내려 왔기에 노후 불안에 떠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베이비부머들에 비하면 사정이 비교적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의 혼사가 아직 남아있고 공부를 많이 시키진 못했지만 직장인인 이들이 제 밥벌이는 해주니 뒷바라지로 허리가 휠 일도 별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처지의 필자에게도 우박처럼 쏟아지는 청첩장은 때로는 성가시다 못해 공포의 존재가 될 순간이 적지 않습니다. 아파트 우편함에 배달된 청첩장이나 사무실 책상 위에 저보다 먼저 출근한 것처럼, 떡하니 놓여 있는 청첩장을 대할 때는 발신인을 확인하기 전부터 가슴이 덜컹할 때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축복의 소식을 전하는 청첩장이 ‘공공의 적’ 이 된 현실이 씁쓸합니다. ⓒYana Godenko/Shutterstock

인생 후반부 가시밭길 더 힘들게 해

왜냐고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지갑 사정과 지금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채 속절없이 날아드는 청첩장이 야속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반퇴생활자들, 좁혀 말하면 이제 막 쏟아지기 시작한 필자 또래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의 팍팍한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인생 후반부를 택시 기사나 경비원, 아니면 택배, 퀵 서비스 등 허드렛일로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현역 때처럼 수백만원의 월급이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고, 넥타이 맨 채 번듯한 식당에서 점잖게 식사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이지요. 어렵게 지내는 이들이 손에 쥐는 월수입은 기껏해야 200만원을 넘기 힘듭니다. 100만원을 겨우 넘는 경우도 허다할 것입니다. 61세, 또는 62세의 수급 개시 시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수십만원이라도 손에 넣으려 조기연금을 신청하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오래 전에 15만 명을 훌쩍 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저의 사정이라고 크게 나을 것은 없습니다. 현역 시절에 넣던 축의금 액수를 그대로 해야 하나, 아님 반만 넣어야 하나, 이것도 아님 아예 모른 체 눈을 감아야 하나… 결혼식 날 직전까지, 심하게 말하면 식장 앞 접수대에 서기 전까지 고민을 해야 할 경우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수입은 현역 시절을 까마득히 밑도는 판에 다른 부문의 씀씀이를 줄이고 또 줄이지만 청첩장을 받고 보면 갈등에 갈등이 더해지고 고민은 한없이 깊어집니다. 퇴직한 지 이제 2년 반 밖에 되지 않았고, 앞으로 더 내려갈 일만 남았는데도 이렇다면 앞으로는 어찌해야 할지 자신이 안 섭니다.

공감을 살지, 아니면 비난의 표적이 될지 모르지만 반퇴생활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청첩장을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초라하고 나약해진 상대방을 더 좌절하게 만드는 몽둥이’
‘상대방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드는 가시’

 

상류층부터 청첩장 자제 모범 보여야

청첩장에 관한 또 하나의 유감은 혼주, 다시 말해 결혼식을 치르는 신랑, 신부 부모들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의 체면과 욕심을 위해 청첩장을 받는 이들을 코너로 몰고, 심지어는 축복받아야 할 자녀들의 결혼식에 하객들의 한숨과 근심을 잔뜩 깔아 놓는다면 이는 결단코 부모들이 해서는 안 될 짓입니다. 저는 소위 힘 있고 재력 있고 지위가 그럴싸한 이들의 자녀 결혼식을 수없이 다녀봐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 ‘쎈’ 부모들이 어떻게 청첩장을 뿌리고 어떻게 주변 사람들을 동원하고 어떻게 거래선 사람들에게 충성 경쟁, 뇌물 공세를 펼치게 만드는지를 생생히 경험해 봤습니다. 우연히 다른 이의 소개로 명함만 교환한 저에게까지 청첩장이 날아들고, 3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이로부터 주소를 가르쳐 달라더니 여지없이 청첩장이 도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겪어 봤습니다.

단언컨대 저는 결혼식에 관한 한 이들 상류층 부모들의 청첩장 남발이 한시바삐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양심 없는 행동이 도덕적으로 뿌리 뽑히지 않는다면 법에 의한 제재, 철퇴까지도 과감히 내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힘 있고 지위 있고 재물까지 갖춘 이들이 사방 천지에 뿌려대는 청첩장은 계획적이고도 의도된 수금행위를 알리는 ‘빨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나치게 개인적 감정을 앞세운 저급한 묘사가 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정말이지 우리 사회의 청첩, 다시 말해 결혼식 문화가 남에게 부담을 잔뜩 지우고 재물과 권력, 지위를 가진 힘 있는 자들의 축재 수단이 더 이상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목이 터져라 말하고 싶기에 이 글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제가 오랜 기간 알고 지냈던 한 선배 기업인(이 분은 엄청난 재력가이고, 이름 석 자로 누구나 알 수 있는 저명인사입니다)이 무심코 뱉은 말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나도 처음에는 간소한 결혼식을 마음먹었지요. 한데 눈 한번만 질끈 감으면 수억원이 들어온다는 걸 생각하니 결국엔 행동이 달라지더군요.”

그렇습니다. 이 분은 양심과 양식에 눈을 감고 자신이 수십 년간 지켜온 믿음을 하객들의 근심, 한숨과 뇌물 섞인 축의금과 맞바꾼 겁니다. 참고로 이 분의 청첩장은 회사 직원들 여러 명이 동원돼 오랜 기간을 작성하고 발송했으며 당일에도 수십 명의 직원이 앞장서 하객들을 맞이하고 배웅했습니다만, 저는 아직도 이날 광경을 생각하면 뒷맛이 영 씁쓸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는 오래 전부터 제 처와 함께 간직해온 믿음을 또 한 번 굳게 다짐합니다.

볼 품 없고, 가진 것 없는 신세지만 아이들 결혼식만큼은 살짝, 남에게 부담주지 말고, 오랜 믿음을 꼭 지켜 소박하게 치르자. 이게 우리 사회에 신세지고 살아 온 우리가 조금이라도 빚을 갚고 빛이 될 수 있는 길이다.

양승득(전 한국경제매거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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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해 생활경제부장, 주일특파원, IT부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경제매거진 사장, 파이낸셜뉴스 논설주간을 역임했으며, 현재 바움커뮤니케이션 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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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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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이 뭐니 2015-10-29 17:10:01

    일부 몰지각한 '한탕 챙기기'하는 예비 부부들과 그 측근들 때문에 정작 축복받아야 할 부부들까지 피해를 입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습니다. 허례허식은 있는 대로 채우고 그 돈을 메꾸려고 본인이 소홀했던 사람들까지 동원하려하다니.... 참석도 전에 싫어 지는 결혼식, 과연 행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