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택한 여인을 아십니까?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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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택한 여인을 아십니까?

2015.11.03 · HEYDAY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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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늙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택한 영국 여성의 사연이 알려져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녀가 찾았던 스위스의 ‘안락사 전문 병원’에서는 매년 200여 명의 ‘자발적 죽음’이 이뤄지고 있다는데요. 이 같은 사실이 이슈가 되면서 또다시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스위스에 가면 그곳이 있다

영국에 사는 60대 후반의 남성 밥콜 씨는 폐암으로 하루하루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통증이 그의 몸을 휘감았지만 그때마다 동물처럼 웅크리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죠.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진 밥콜 씨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안락사 병원을 찾아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파킨슨병을 앓던 그의 부인 역시 18개월 전 같은 병원에서 안락사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부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나란히 택한 셈이죠.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이던 70대 중반의 영국 여성 길 파라오 씨는 건강상 딱히 문제가 없는데도 “늙는 것이 슬프다. 보행기로 길을 막는 늙은이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며 밥콜 씨와 같은 병원에서 안락사 했습니다.

영국 국민인 이들이 굳이 낯선 스위스까지 ‘안락사 여행’을 떠난 건 합법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1942년부터 안락사와 조력 자살을 용인해온 스위스에는 안락사 지원 전문 병원이 4곳 있는데 유일하게 외국인을 받아주는 곳이 바로 밥콜 씨와 길 파라오 씨가 머물던 디그니타스 병원이죠. 1998년 병원이 생긴 이래 지난해까지 1900여 명의 안락사가 이뤄졌고 지난해만 200여 명이 이곳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집니다.

유일하게 외국인을 받아주는 스위스 디그니타스 병원 외관. 유튜브 캡처 화면.

‘내가 선택한 죽음’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디그니타스 병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만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30만원가량 가입비와 연회비를 내야 하고 그 후 꾸준히 직원들과 접촉하며 삶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되죠. 병원 측은 그 과정에서 마음을 바꿔 먹는 사람이 80%나 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끝내 결심이 바뀌지 않으면 의사의 처방에 따라 극약을 만들고 환자 스스로 이를 마셔 목숨을 끊게 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환자 스스로 마신다’입니다.

스위스 형법에는 의사가 처방한 치사약을 반드시 ‘본인이 직접’ 복용하는 것만 허용하기 때문에 의사를 포함한 제3자가 먹여주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됩니다. 직접 죽음에 이르는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나 연명 치료를 중단해 사망하는 소극적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디그니타스 병원은 ‘자살’을 돕는 셈인데요, 이렇게 환자가 사망하면 화장까지 해결해주는 것으로 절차가 종료됩니다. 가입비를 포함해 총비용은 1000여만원 정도.

실제 안락사가 이뤄지는 장면. 조제된 극약을 마신 환자는 잠들 듯 세상을 떠난다. 유튜브 캡처 화면.

스위스만 가능한가?

앞서 언급한 밥콜 씨가 남긴 마지막 소원은 바로 “영국에서도 안락사가 허용돼야 한다”였습니다. 내 집 침대에서 품위 있게 죽고 싶었던 그는 결국 스위스에서 눈을 감았는데요. 영국 의회에서 최근 말기 환자의 안락사 인정 여부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긴 했으나 별다른 실익은 없었습니다. ‘죽을 병’에 걸리지 않고도 안락사를 택했던 길 파라오 씨의 사례로 인해 어떤 사람에게까지 안락사를 허용해야 하느냐는 묵직한 질문이 던져지기도 했습니다만, 세계적 추이를 보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말기 환자만큼은 안락사를 용인해야 하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스위스를 비롯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태국 등이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데다 미국은 오리건, 워싱턴 등 5개 주에서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0%가 말기 환자에 대한 안락사 허용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역시 수면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른바 ‘깊은 잠’ 법안이 올해 하원을 통과해 사실상 안락사 허용 국가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진 않지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는 일부 인정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연명 치료 중단을 요구하고, 병원은 이를 거부했던 일명 ‘김 할머니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법원이 자녀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했고, 200일간 자발 호흡을 이어가다 끝내 별세했습니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다시 존엄사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상황인데, 찬성과 반대가 팽팽히 맞서는 데다 누구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65세 노인 1만452명을 대상으로 ‘의미 없는 연명 치료’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88.9%가 반대, 3.9%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기획 장혜정  사진 유튜브 캡처
※ 이 기사는 <헤이데이> 10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