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상황에서 노인이 갖춰야 할 염치 가이드라인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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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상황에서 노인이 갖춰야 할 염치 가이드라인

2015.11.04 · HEYDAY 작성

‘이러다 진짜 일이 터지는 거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잠시나마 갖지 않은 우리 국민이 있었을까? 지난 8월, 목함지뢰가 터진 날부터 ‘8.25 합의’가 타결되기까지 말이다.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전쟁을 겪었던 우리 또래들은 너나없이 전쟁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걱정도 팔자유” 하는 젊은이들의 흉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앞날이 구만 리 같은 ‘꽃다운 군인’들이 다치고 우리가 대포를 쏘아대는 상황에서 어찌 마음이 놓이겠냐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진정됐으나 나는 그 일을 계기로 잊고 있던 ‘전쟁의 추억’ 속에 빠졌다.

6.25 때, 나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선 참이었다. 소위 일류 중학교에 합격했다는 기쁨을 다 만끽하기도 전에 전쟁이 휘몰아쳤고 그 뒤 3개월 간 북한 치하에서 조마조마하며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해 여름은 정말이지 계절답지 않게 을씨년스럽기만 했는데 우리 가족이 피난을 떠났던 그 장면에서 나는 갑자기 선뜩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이웃에 살던 외사촌네 가족과 시집간 언니네 가족까지 트럭 한 대에 올라타고 피난을 떠났는데 그 어느 누구도 외할머니를 모시고 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외할머니는 어쩌다 우리 집까지 흘러들어온 고아와 함께 텅 빈집에 남게 됐는데 식구들 모두 쌀가마니와 김칫독은 챙기면서도 할머니에게 같이 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끝까지 집을 지키겠노라는 외할머니의 완강한 고집도 한몫을 했겠지만 아마 안 그래도 정신없고 힘든 피난길에 힘없고 무기력한 노인까지 더해 괜히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게 외할머니 나름의 염치고 체면이고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그때 외할머니의 연세를 얼추 따져보아도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적었다는 생각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같은 맥락에서 혹시 지금 전쟁이 터지면 나 역시 피난을 포기한 채 버려져야 할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며 산다고 하는데 나야말로 지금 부질없는 걱정을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만약에 피난 열차가 널널한데도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날 버리고 가면 내 마음이 어떨까? 나는 아마 절대 용서하지 않을 성싶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찌해야 하나? 피난 열차에서 누군가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지적당하기 전에 자진해서 내려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젊은 남자들의 희생을 딛고 살아난다면 그거야말로 치사하게 목숨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것이 바로 ‘전시(비상 시) 상황에서 노인이 갖추어야 할 염치 가이드라인’이라고 혼자 명명하기까지 했다.

고광애 씨와 그 가족들의 즐거운 한때. ⓒ고광애
고광애 씨와 그 가족들의 즐거운 한때. ⓒ고광애

염치 가이드라인

너무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했지만 평화 시나 비상 시나 우리 세대는 젊은것들에게 지적당하기 전에 행동거지에 염치를 두는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참석, 참여의 문제다. 뭐 거창한 사회 담론이나 운동 참여가 아니라 그저 가족 모임, 그리고 한 치 더 넓혀서 형제자매와 조카들 모임에서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는 얘기다. 나와 둘째 언니에겐 큰언니와 형부 생신 참석이 연중 큰 나들이였다. 생신에 가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조카들이며 일가들의 환대를 받는 손님 중 하나가 나와 언니였다. 요즘으로선 드물게 집에서 만든 잔치 음식을 맛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생신 잔치를 음식점에서 한다는 전갈이 왔다.

손주들이 큰 데다 조카들도 바빠져서 음식점에서 생신 잔치를 하나 보다 하고 심상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조카들이 쑥덕쑥덕하더니, 언니와 내게 택시를 잡아줄 뿐 아니라 택시에 봉투까지 넣어주는 게 아닌가. 엊그제까지 내가 선물도 하고 축의금도 내놓았는데.

그때 정신이 화들짝 났다. 어머니가 나이 구십을 넘기고도 친척집을 방문하시면, 돌아가시는 길이 신경 쓰인다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내게 친척들이 하소연을 했었다. ‘하아 나도 이제 다녀가는 길이 무탈한지 걱정을 끼치는 연배가 되었구나’ 하는 것을 우리 어머니처럼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다음 해 나와 언니는 큰언니네 생일잔치에서 은퇴하기로 맘먹었다. 작은언니가 큰언니와 큰조카에게 불참을 조심스레 설명했다. 그랬더니, 아이구 얼씨구나 하듯 다시는 빈말로도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다. 우리의 불참 이후 조카들은 2차 노래방, 3차 어디 하며 잔치를 즐겼단다. 언니와 내가 진작에 잔치 참석을 사양했더라면, 그 아이들이 일찍부터 더 재미있게 즐겼을 텐데 노인들 앞이라 말조심하며 밥 먹기가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나도 우리 어머니처럼 덥석덥석 참석한다고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이 무슨 불편한 노년의 삶의 방식인가?

그 일을 계기로 같이 늙어가는 언니와 나는 의논 끝에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어떤 모임이든 초청자가 세 번 이상 간절히 초청하는 자리에만 가기로 했다. 초청도 초청 나름인데 인사치레로 하는 초청은 사절이다. 진정성과 간절함이 지극하면서 세 번 이상 초청하는 자리에만 응하기로 했다. 집안 행사에서도 처신이 이럴진대, 사회에서 은퇴한 우리의 위대한 원로들은 또 어떨까? “너나 잘하세요”라지만 나는 오늘도 괜히 걱정이 된다.

글을 쓴 고광애 씨는
쉰 살부터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해 78세인 현재 관련 책을 다섯 권이나 낸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최근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를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죽음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메멘토 모리 독서회’에서 24년간 활동해왔다. 그 영향으로 그녀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전의료의향서 확인증을 늘 지갑에 넣고 다닌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고 막내아들은 영화 <하녀> <돈의 맛>으로 유명한 임상수 감독이다. 올 초 남편이었던 영화평론가 임영 씨와 사별했다.

 

기획 장혜정  글 고광애  사진 김연제(스튜디오 텐)
※ 이 기사는 <헤이데이> 10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