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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 이야기] 이병철은 왜 맥아더 동상을 세웠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와 맥아더 장군, 얼핏 보면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에게 맥아더 장군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던 이병철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 ‘공산군이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개시했으며….’ 이병철의 머릿속에는 ‘사업은 어떻게 되며 내 생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날 거리에서 이병철은 남으로 향하는 피난민 행렬을 만났다. 회사 간부들과 대책을 논의했지만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각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가족과 함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28일 새벽, 땅이 흔들리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정적을 깨뜨려 나가보니 낯선 전차의 포탑에 인공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서울이 점령된 것이다. 이병철은 정부 발표만 믿고 있다가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29일부터 인민위원회, 내무서 등 여러 기관에서 왔다며 사람들이 찾아와 이병철의 재산과 사상에 대해 묻는 등 조사를 했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7월 10일쯤 혜화동 로터리에 나간 이병철은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를 볼 기회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신의 차 미국제 신형 쉐보레였다. 6월 23일 주한미국공사로부터 사들여 등록을 막 마친 차였다. 그 차 뒷자리에 타고 있던 사람은 박헌영이었다.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은 탈환되었다. 이병철은 전쟁 초기에 신속히 미군을 파견한 것이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한 것이 모두 맥아더 장군의 용기와 지략의 결과라고 봤다. 이병철은 <호암자전>에 이렇게 썼다. ‘나는 맥아더 장군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인, 한국의 은인으로서 각별히 존경하고 있다.’ 이병철은 훗날 1982년 방미했을 때 버지니아주 노포크시의 맥아더 장군 기념관을 방문해 맥아더 장군의 미망인과 오찬을 함께하기도 했다. 이병철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앞뜰에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부조를 만든 이유는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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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은 맥아더 장군을 한국의 은인으로 각별히 존경했다. ⓒEverett Historical/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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