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 지닌 역사의 흔적, 강화 월곶돈대와 연미정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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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가능성 지닌 역사의 흔적, 강화 월곶돈대와 연미정

임진각 침묵이 돌고 흐르는 월곶돈대

임진강은 북한의 강원도 법동군 룡포리에서 발원하여 길고 긴 길을 돌고, 한강은 서울의 중앙을 지나 북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가 마침내 파주에서 합쳐진다. 그 강물이 다시 바다와 합쳐지는 김포와 강화해협 사이의 물길을 부르는 염하(鹽河)의 초입에 연미정과 월곶돈대가 1000년 역사를 지켜보며 서있다.

48번 국도로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인삼센터를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돈 뒤, 곧 왼쪽으로 다시 방향을 바꿔 4㎞ 남짓 더 달리면 작은 로터리를 지나 오른편 작은 언덕 위로 잘 정비된 화강암 방벽이 보인다. 월곶돈대다. 그리로 올라가면 반듯하게 다진 황토 빛깔의 포장길 옆으로 ‘장무공 황형 장군 택지비’가 서 있다. 황형(黃衡)은 삼남지방에서 왜란을 평정한 장군이다. 전라좌수사, 경상병마절도사, 도총관 등을 지낸 무장이다. 수백 년 전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장군이 지금은 국가의 간성으로 휴전선을 지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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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월곶돈대 모습.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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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전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던 장군은 여전히 임무수행 중이다. 장무공 황형 장군 택지비. ⓒ김영환

좀 더 올라가 작은 홍예문으로 들어서니 방벽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몇백 평 규모의 월곶돈대 전모가 드러난다. 그 속의 작은 언덕에 팔작지붕의 연미정은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연미정은 1744년(영조 20년)에 중건되었으며 조정이 황형에게 하사한 것이다.

돈대의 총안이 얼마나 될까 세어보았다. 쉰 개는 넘었다. 저 총안으로 ‘지지직’ 부싯돌로 화승총에 불을 붙여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군과, 신미양요 때는 미국군과 싸웠겠지. 숙종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처럼 장희빈만 사랑한 게 아니다. 국방력 강화에 몹시 애를 썼다. 북한산성도 대대적으로 수축했지만 한반도의 목줄인 강화도를 지키려고 53개의 돈대를 일거에 건설했다. 돈대는 바다로 돌출한 곳에 세우고 총안과 포대를 설치했다.

 

최북단 관방유적지 연미정

강화 10경의 하나인 연미정은 옛날 서해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배들이 이 정자 밑에서 닻을 내리고 조류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연미정은 뿌리는 고려다. 건립 연대는 미상이지만 1244년 몽골전쟁의 와중에서도 고려 고종이 9재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면학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강화군은 밝힌다. 정신적인 가치를 존중한 고려인이다. 전쟁하면서 학교를 열고 팔만대장경을 만든 것이 고려인들의 집념이다. 연미정은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조약을 맺었던 슬픈 곳이라고도 한다.

월곳돈대 안에 자리한 연미정에서 북녘 땅이 제법 가깝게 바라다 보인다. ⓒ김영환

문인 고재형(1846~1916년)은 1906년의 <심도기행>에서 연미정을 이렇게 읊었다.

燕尾亭高二水中 : 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三南漕路襤前通 : 삼남지방 조운 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浮浮千帆今何在 : 떠다니던 천 척의 배 지금은 어디 있나
想是我朝淳古風 : 우리나라 맑은 옛 모습이라고 생각하네

돈대의 동쪽 끝자락 부근에 팔작지붕의 연미정이 두 그루의 느티나무 거목 사이에 소슬하게 서 있다. 찾는 이가 거의 없이 한적한 뜰을 데이트하는 남녀가 보였다. “저게 김정은 동네랍니다. 아주 가까운 곳은 1.7㎞ 거리죠”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섬처럼 대안에 아스라이 보이지만 동네 한 바퀴 돌며 ‘마실(마을)’ 갈 거리다. 임진강과 한강이 합쳐 흐르는 한강의 김포 건너편, 월곶돈대에서도 보이는 유도라는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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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비한 총안과 포안에서 외적을 물리치려는 선조들의 결기가 느껴진다. ⓒ김영환

1996년 여름 물난리 때 북에서 떠내려와 유도에 머물던 황소를 우리 해병대원들이 이듬해 1월 구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척이면 무엇 하리. 그 강물, 그 연미정, 그 월곶돈대 그대로인데 갈라진 세월을 기다리다 지친 실향민일까? 언덕을 쉬엄쉬엄 올라온 중년 부부가 풍광 좋은 연미정 검은 전돌 바닥에 돌돌 말아온 비닐 돗자리를 깐다. 낮잠이라도 청해 시간과 싸우려나 보다. 돈대의 석축을 따라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는데 초병이 바위틈으로 주의 사항을 당부한다.

답사를 마치고 차를 세워둔 길가로 돌아오면서 이 잠재력이 무궁한 동네의 르네상스는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마음이 무거웠다. 고재형이 읊었던 조운선의 활기는 온데간데없고 남한의 끝을 접하는 군 내 버스만이 정지된 시간을 힘들게 뚫고 지나가 이곳이 겨우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연미정은 역사의 중요한 통로였지만 지금은 철책선으로 가르는 분단의 최선단에 서있다. 수도권인 이곳 물길에 다리 하나만 얹으면 북녘 땅도 수도권으로 바뀔 곳이다. 그 무한한 가능성은 아직은 미래의 일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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