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콤마 남산 걷기, 이제 폐경이 아니라 완경이라 불러요 – 전성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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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콤마 남산 걷기, 이제 폐경이 아니라 완경이라 불러요

남산걷기대회 GO MAMA WALK(고.마.워)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백범광장에서 시그나사회공헌재단이 주최한 남산걷기대회가 열렸다. 하늘은 드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청명한 가을 날씨. 걷기에 더할 나위없는 택일이었다. 식전행사로 여성그룹 ‘타우라’의 난타 공연, 여행스케치 무대, 스트레칭 체조가 이어졌다. 내빈으로 참석한 탤런트 양희경, 윤유선, 개그우먼 김지선 등이 무대에 올라 ‘완경(完經)’에 대한 자신들의 소감을 풀어냈다.

잇따른 공연의 흥, 몸 풀기 등으로 참가자들의 표정이 한결 밝았다. 이날 참가한 1000여 명의 사람들은 폐경을 맞은 갱년기 여성뿐 아니라 남편 또는 아들, 딸 등 가족들도 함께였다. 가족 단위로 나온 젊은 부부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남녀노소 모두가 완경의 의미를 음미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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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 행사 무대를 장식한 여성 난타팀 ‘타우라’의 무대. ©김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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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 대신 완경이라 말해요! ©김동철

출발점을 떠나 완만한 보도를 걷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남산의 수목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덕분에 상쾌함은 지속되었다. 근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던 백범, 안중근기념관 등은 나중에 탐방하기로 했다. “아, 이렇게 좋은 산책로가 또 있을까.”

출발에 앞서 1000여 명의 참가자가 기념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철

간간이 나타나는 도우미들과의 간단한 게임 그리고 확인 도장 확보하기, 심심찮았다. 가벼운 발걸음은 이내 N타워를 찍고 다시 계단으로 내려오는 1시간 정도의 코스였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여인들의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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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남산의 가을을 만끽하며 걷는 참가자들. ©김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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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곳곳에 숨어있는 미션을 수행 중인 참가자 모습. ©김동철

캠페인 이름이 ‘폐경(閉經) 대신 완경(完經)이라 불러요’인데 사실 ‘완경(完經)’이란 말이 생소하다. 남성에게 여성의 생리현상이 친근할 리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온 남편이라면 여성에게는 남성과 다른 생리적 현상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이날 완경의 의미를 곱씹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완경, 여성으로서 완성된 삶

여성의 초경(初經)이 대개 10대 초반부터 시작된다면, 완경(完經)의 나이는 40대 중후반으로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여성들은 불안감, 의욕상실, 패배감, 단절감, 자폐감 등 부정적인 감정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몸도 예전만 못할 텐데 자기와의 감정싸움이라니. 힘든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다. 그래서 완경을 맞이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고 앞으로 더욱 건강한 삶을 유지하자는 취지의 행사가 마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 캠페인은 사회적으로 더 널리 퍼져서 완경을 맞은 여성들에게 긍정감, 자신감, 새로운 역할 찾기 등으로 미래 정체감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폐경이란 말이 단절, 무기력감을 주는 ‘부정적인 단어’라면 완경이란 말은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가려는 긍정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폐경을 맞이하면 일단 여자로서 생명이 끊긴 것’이란 세간의 속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태(受胎)를 할 수 없다는, ‘석녀(石女)’가 되었다는 패배감에 자칫 삶의 의욕이 떨어져 모든 것에 자신을 잃는 상실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비록 육체적으로 젊은 청춘들에게 비할 바 못 된다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정신적인 성숙감과 지식, 지혜의 보고(寶庫) 주머니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사랑스런 손주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살아온 이야기나 삶의 지식, 지혜를 가르쳐주는 모습, 그 얼마나 성(聖)스럽고 아름다운가. 그래서 조물주는 인생의 주기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배분하여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것을 명하고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자연의 섭리(攝理)이듯 말이다.

젊어서 결혼하고 종족보존의 역할을 다하고 난 완경 여인들에게는 가족과 후손의 관리자, 조언자로 다시 나설 것을 주문한다. 이제 완경의 여인들은 이 자연의 섭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성심껏 후손들에게 일러주고 보여주고 가르쳐줘야 할 의무와 책임을 명받았다. 그 역할 또한 얼마나 성스럽고 아름다운 것인가!

 

완경 여인, 성숙하고 아름다운 인생 선배

희생(犧牲)이라 번역하는 영어의 단어는 ‘Sacrefice’다. 즉 ‘Sacre’는 ‘훌륭한, 성(聖)스런’이란 뜻이고 ‘Fice’는 ‘그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완경 여인들은 앞으로 그 나이에 걸맞은 성스러운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양 속담에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고 있는 도서관과 같다(Dying Old Man Sames Burning Library)’는 말이 있다. 즉 “노인은 도서관만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온 날만큼 쌓인 삶의 지식과 지혜를 동양고전에서는 ‘노마지지(老馬之智)’로 표현한다.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桓公)을 따라 고죽국을 칠 때 봄에 가서 겨울에 돌아오다가 미혹되어 길을 잃었다. 관중(管仲)이 가로되 “늙은 말의 지혜(智慧)를 이용할 만하다” 하고 곧 늙은 말을 풀어 그 말을 따라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또한 산중을 진군하고 있을 때 물이 없어 갈증이 나자 습붕(隰朋)이 “개미는 겨울이면 남쪽에 살고 여름이면 산의 북쪽에 사는 것이므로 개미집의 높이가 한 치라면 그 지하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고 말하여 파보니 과연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미물도 뛰어난 장점이 있듯이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뛰어난 점이 있어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여 할 일을 부여한다면 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빨강콤마,  마침표가 아닌 쉼표

완경을 맞이한 여성들이여, 누구의 할머니로서 또 누구의 어머니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후손에게 전수하는 ‘인생의 멘토’ 역할은 성스럽고 찬란할 것이다. 저물녘 기우는 석양(夕陽)이 더욱 찬란하게 붉은 빛을 띠는 이유는 마지막 정열을 미련 없이 불태우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주목을 받은 심볼은 빨강콤마다. 콤마는 쉼표, 마침표가 아니다. 멋진 인생 2막을 수행하기 위한 잠시 숨고르기의 시기일 뿐이다. 완경을 맞은 여성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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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 대신 완경이라 부르며, 완경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김동철